미국 무인기(드론)이 흑해 상공에서 러시아 전투기와 충돌해 추락하는 사건을 두고 양국이 날 선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군 당국은 '핫라인'을 가동해 사건의 원인을 두고 의견을 교환했다. 양국은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면서도 확전 가능성은 차단하고 나섰다.
러시아 국방부도 쇼이구 장관이 미국 측의 요청으로 오스틴 장관과 통화했다고 발표했다.
양국 국방장관이 통화한 건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세 번째다. 미러 관계가 냉전 이후 최악 수준이란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양국 고위 관리 간 접촉이 이뤄진 것은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가늠하게 한다.
AP통신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러시아 군 지도자 간의 접촉이 제한돼왔다. 러시아 측은 전쟁 초기 몇 달간 미국 측 전화 요청을 거부하기도 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양국 국방장관이 사건 직후 대화를 나눴다는 것은 양측 모두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했고, 긴장 고조를 억제할 필요성을 인식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러시아를 향해 강도 높은 경고도 내놨다. 오스틴 장관은 "실수하지 말라"며 "미국은 국제법이 허용하는 곳이면 어디든 비행하고 작전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미국이 의도적으로 러시아를 도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쇼이구 장관은 "러시아는 흑해 특정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와의) 분쟁 기간 어떠한 항공기 운항도 금지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며 "미국은 러시아가 설정한 비행 제한구역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양국 관계가 최악의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드론 추락 사건의 원인을 두고 공방을 벌이면서도 양측은 이번 사태가 군사적 갈등으로 확대하는 것은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스틴 장관은 "현재 우리는 잠재적 긴장 고조 가능성을 매우 심각히 받아들이고 있다. 소통 채널을 열어놓는 것이 중요한 이유"라며 "즉시 통화해 서로에게 관여하는 것이 오판을 하지 않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페스코프 대변인도 "각국은 대화를 통해 이익을 수호할 것"이라며 "러시아는 건설적 대화를 피하지 않아 왔으며 앞으로도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러시아 전투기 두 대가 드론에 접근해 수차례 연료를 뿌리는 등 위협 비행을 했고, 이어 전투기 한 대가 드론의 후방 프로펠러를 강타했다는 게 미국 측 주장이다. 러시아는 미국의 드론이 크름반도 인근 흑해 상공에서 러시아 국경 방향으로 비행하고 있었으며, 러시아가 특별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해 임시로 설정한 공역의 경계를 침범했다고 맞받아쳤다. 그러면서 전투기와 드론의 접촉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갈등의 불씨는 더 남아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드론 잔해 회수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어서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어느 측으로부터의 회수도 매우 어렵다"면서도 "미국은 흑해에 어떤 함정도 갖고 있지 않지만 우방을 통해 회수 작전을 진행할 방침이다. 이것(드론)은 미국의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해군은 드론 회수를 위해 추락 지점에 이미 도착한 상태라고 CNN은 전했다.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국가안보보좌관은 전날 러시아 국영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회수해야 한다"며 "우리는 (드론 잔해를 수거해) 확실히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러시아가 드론 잔해에서 유용한 정보를 취하지 못하도록 조처한 상태"라며 "그들은 아무것도 복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