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희열 되새겨준 반백 살 아재들 , '뭉뜬 리턴즈'

머니투데이 이현주(칼럼니스트) ize 기자 | 2023.03.15 12:00
'뭉뜬 리턴즈', 사진제공=JTBC


평균 나이 50에, 그것도 남자들끼리 배낭여행이라…. 흔한 일은 아니다. 덕분에 일단 호기심을 끄는 데 성공한 듯싶다. 게다가 멤버를 보라. 김용만, 김성주, 안정환, 정형돈. 특히나 배낭여행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 않나.


이른바 하이퍼 리얼리즘 여행 콘텐츠가 대세란다. 완벽하게 짜인 일정과 깔끔한 편집의 여행 예능이 자취를 감춘 요즘. 익숙한 출연자들이 흔한 여행지를 찾아가는 장면을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는 없을 것이다. JTBC ‘뭉뜬리턴즈’는 익숙한 출연자에 의외성을 더해 재미를 추구한다.


여행이란 익숙한 것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그것을 즐겨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뭉뜬리턴즈’ 첫 회는 멤버들의 출발 전 모습부터 보여줬다. 그들은 (물론, 이미 알고 모였을 테지만) ‘배낭여행’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뜨악'해한다. 더욱이 ‘뭉쳐야 뜬다’를 통해 패키지여행의 장점을 제대로 체험한 이들이니 제 발로 훤히 보이는 고생길을 자처할 이유가 있을까. 물론 그 점이 시청자들에게는 기대되는 부분이다. 좌충우돌,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가 대거 등장할 수밖에 없을 테니.


목적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장소는 신선하지 않다. ‘서진이네’가 식당을 오픈한 멕시코 바칼라르 정도면 모를까. 반면 장점도 없지 않긴 하다. 다녀온 사람들이 많으니 그만큼 소환할 추억도 많고, 그들은 방송을 통해 언제인가 가봤던 곳이 선사하는 새로운 감상을 느껴보고 싶지 않을까.


배낭여행이 한창 유행할 때 이미 20대를 훌쩍 넘었던 나는 서른이 넘어 뒤늦게 배낭여행을 했다. 심지어 결혼해서, 첫 아이까지 있을 때. 무슨 배짱이었던지 당시 잡지사를 옮기며 해외여행을 떠나겠다고 적금을 들기 시작했고, 마침 딱 유럽 배낭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 모였을 때, 잡지가 폐간되어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결국 그 기회를 핑계 삼아 남편과 친정(아이를 맡긴다고)에 허락을 구하는 대신 통보했고 우연히 구성된 멤버들과 약 20일의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뭉뜬 리턴즈', 사진제공=JTBC


‘뭉뜬리턴즈’처럼 여행 멤버는 나를 포함한 후배, 네 명.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 정확히는 런던, 파리, 바르셀로나, 로마, 피렌체, 베니스, 밀라노 등 도시를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배낭여행을 경험한 이라면 대충 짐작하듯, 여정은 빡빡했고(적은 경비에 한 군데라도 더 돌아봐야 하므로), 식사는 맥도날드에서 때운 날이 많았다. 택시는 구경한 적이 없으며 낯설던 각국의 지하철이 익숙해질 즈음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여정 중에 바르셀로나가 끼어 있었기에, 나는 ‘뭉뜬리턴즈’ 방송을 기다리고, 찾아보았다. 언젠가 이미 다른 칼럼에 썼던 것 같지만 이제 더는 여행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걸어서 세계여행’이나 전 세계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여행 유튜브를 구독하며 여행에 대한 미련이 없음에도 보게 됐다



역시나 배낭여행의 공식은 평균 50대 아재들도 비켜 갈 수 없었다. 누군가는 경비를 책임져야 하고, 누군가는 일정을 챙겨야 한다. 오래 산 부부라 해도 여행 취향은 다르게 마련인데, 네 명이나 되는 멤버의 취향이 같을 리 없다. 누군가에게는 200년 된 초콜릿이 꼭 사야 할 기념품이고, 다른 이에게는 초콜릿 맛이야 별다를 게 없으니 부질없다.


그 와중에도 멤버 모두가 한마음으로 감동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바르셀로나의 상징, 성 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이었다. 여전히 공사 중이지만 내가 갔을 때에 비하면 거의 완성이라 볼 수 있는 성 가족 성당을 화면으로 보는 느낌은 사뭇 신선하고 다른 의미로 감동적이었다.


'뭉뜬 리턴즈', 사진제공=JTBC


늘 하는 말이지만 여행은 공감각 체험이다. TV 화면에 등장한 성 가족 성당의 모습은 충분히 멋있었지만, 실제 그 앞에 섰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마치 책의 표지만 보고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달까. 화면 속 성 가족 성당을 보며 나는 순식간에 당시로 되돌아갔다. 그 위용스러운 규모와 비현실적인 조각 앞에서 느꼈던 전율. 첨탑 위에 올라 맞았던 그날의 바람. 피부 가장 바깥쪽에서부터 배꼽 안까지 간질간질하게 전해오던 생경한 희열.


‘뭉뜬리턴즈’를 보며 새삼 깨달았다. 여행 프로그램을 보는 것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것. 결코 갈 일이 없다고 화면 여행으로 만족해선 안 된다는 것. 게으른 대리 여행이 허락하는 감동은 참으로 미미하다는 참으로 당연한 진리를. 사실 나는 제법 많은 여행을 했다. 그럼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때 했던 배낭여행이다. 그 어떤 여행보다 근천맞았지만 이후 여행은 당시만큼의 감동을 주지 않았다. 어느 하나 낯설지 않은 것이 없었고, 매끄럽지 않았고 돌발투성이여서, 그만큼 많은 추억이 머리에, 피부에, 가슴에 촘촘하게 각인되어서가 아닐까.


파리에서 바르셀로나에 막 도착했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햇빛이 환하던 바르셀로나는 냄새가, 공기의 촉감이 달랐다. 낯선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그 도시만이 주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 온몸의 세포를 깨운다. 비로소 살아있는 느낌. 아, 나는 그렇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평균 나이 반백 살 아재들이 그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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