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중앙은행의 또 다른 시간

머니투데이 장보형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2023.03.14 02:05
장보형 연구위원
중앙은행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된다. 연초만 해도 글로벌 차원의 통화긴축이 완화되리라는 기대가 컸지만 새해 경제지표들이 생각보다 탄탄하고, 특히 물가안정이 더딘 것으로 나오면서 다시 고강도 통화긴축이 장기화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크다. 중앙은행의 관심사가 경기부양이나 금융안정보다 물가안정에 맞춰진 결과다.

물가 불안기에 이러한 태도는 온당한 처사겠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니다. 물가안정만 중시하는 태도는 비교적 오래전 일이다. 1970년대 말 이후 유가폭등에 따른 물가앙등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할 무렵 말이다. 현대 중앙은행의 교리인 '물가안정목표제'는 그 교훈에 기반한 것이다. 또 1980년대 이후 금융자유화와 함께 물가안정목표제는 1990년대부터 금융안정을 부수목표로 포괄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우리에게는 외환위기 악몽을 비롯해 닷컴버블 붕괴, 카드사태 등 안 좋은 기억이 많지만 사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물가안정목표제하의 중앙은행은 세계적으로 경제안정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사회주의 몰락과 세계화의 확산으로 중국 등 신흥시장이 세계 경제에 대거 편입되면서 공급 측면에서 세계 경제를 뒷받침하기도 했지만 이른바 '현대경제의 감독'으로서 중앙은행의 기량이 확인된 시절이다.

물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외견상 물가안정의 배후에 자리잡은 금융불균형에 대한 경각심이 확산하며 중앙은행도 호된 시련을 겪어야 했다. 부수업무로 금융안정을 끌어들이긴 했지만 정작 시스템 차원에 누적된 금융불균형을 방기했다는 지적이 컸던 것이다. 그러나 위기가 터지자 중앙은행은 비전통적 통화정책까지 동원하며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위기관리자'로 전면에 나섰다. 아울러 단순한 금융안정을 넘어 정부와 함께 거시건전성 전반을 규제하는 역할로 나아갔다.


경제안정에 있어 중앙은행의 역할확대에 대한 고민이 폭발한 시점이었는데 이후 계속되는 디플레이션 압력 등 소위 '장기정체' 위험으로 중앙은행의 책임은 커져만 갔다. 나아가 코로나 위기를 거치면서는 기후변화와 불평등, 디지털머니 등에까지 중앙은행의 후광이 요구되는 상황으로 진화해나갔다. 통화정책을 관장하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일반화한 '모험적 중앙은행', 혹은 '통화지배'의 시대였던 셈이다.

다다익선이랄까. 중앙은행의 책임이 확대될수록 권한의 범위나 적법성, 실효성 등에 대한 긴장도 커져갔다.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따른 정부 부채에 발목이 잡힐지 모른다는 '재정지배'의 위험은 물론 민간부문의 중앙은행에 대한 과도한 유동성 의존에 따른 '금융지배'의 위험이 자라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인플레이션 급등은 전통적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중앙은행 본연의 역할을 환기하고 있다.

하지만 물가안정에는 대가도 수반된다.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에서 보듯 고강도 통화긴축으로 누적된 금융취약성이 폭발할 위험을 간과할 수 없다. 대신 1980년대 이후 물가안정목표제가 득세한 시기의 금융자유화나 세계화의 지원도 바라기 힘들다. 중앙은행의 또 다른 시간이 도래하지만 그 정체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베스트 클릭

  1. 1 유명 여성골퍼, 코치와 불륜…"침대 위 뽀뽀 영상도" 아내의 폭로
  2. 2 선우은숙 친언니 앞에서…"유영재, 속옷만 입고 다녔다" 왜?
  3. 3 '이혼' 최동석, 박지윤 저격?… "月 카드값 4500, 과소비 아니냐" 의미심장
  4. 4 60살에 관둬도 "먹고 살 걱정 없어요"…10년 더 일하는 일본, 비결은
  5. 5 "참담하고 부끄러워" 강형욱, 훈련사 복귀 소식…갑질 논란 한 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