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여기, 경기도 부천에 있는 '두루두루 식당'에서는.
식당 주인이 큰 밥솥을 열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그는 밥을 넉넉히 푸고, 제육볶음 같은 맛난 반찬도 함께 담았다. 뜨듯한 밥을 아이에게 내어주었다. 자리에 앉은 아이가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다 먹은 뒤에도 돈을 낼 필요는 없었다. 동네 아이이기에 밥은 '무료'였다. 매일 매일 그리 먹을 수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장보고 밥 짓고 반찬을 만들던 사람. 두루두루식당의 채옥희 대표(66)를 9일 만났다. 식당에 들어서니 그날 아이들이 먹을, 맛난 닭강정이 이미 준비돼 있었다. 9년째 꾸준히 해온 아이들 밥 짓는 일. 그 부지런한 노고에 대한 물음엔 대답이 짧고 덤덤했고, 아이들을 위한 답변은 유독 길고도 길던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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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0인분 준비… 다문화 맞벌이 가정 아이들 많아━
형도 : 짐작이 가지만 들어보고 싶어요. 두루두루식당은 어떻게 만드시게 된 걸까요.
옥희 : 2015년 이전부터였어요. 공원 놀이터에서 밥차로 주민 대상으로 무료 급식한 게 시작이었지요. 그러다가 여기 상설 매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계약해서 식당을 시작한 거고요. 부천 원미경찰서 외사과에서 기업인들과 같이해서, 후원으로 리모델링도 하고요.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오게 됐어요. 사례비 없이 자원활동으로요.
형도 : 식당엔 주로 어떤 아이들이 와서 밥을 먹는지요.
옥희 : 중고등학생들, 여기서 밥 먹고 큰 대학생과 사회인까지 있어요. 여긴 외국인들이 많아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한 70% 정도로 많아요. 조손 가정 아이들도 있고요. 밤늦게까지 잔업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이들 혼자 지내는 경우가 많겠지요. 점심은 학교서 먹으니까 저녁을 챙겨주는 거고요. 하루 30인분 정도, 두 솥씩 밥을 해요.
옥희 : 바우처가 있지만, 식당 갈 정도 금액은 또 안 되니까 간식을 주로 먹겠지요. 거의 다 떡볶이나 삼각김밥 이런 것 먹고, 음료수 사 먹고 그 정도잖아요.
형도 : 그런데 여기 식당에선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거잖아요.
옥희 : 매일 장 봐서 따뜻한 밥도 새로 하고, 반찬도 한 가지 하고요. 그게 제일이잖아요. 처음에 애들 왔을 땐 엄청 싸웠어요. 아이들이 채소도 안 먹고 그러니까요(웃음). 그래서 저도 웬만하면 애들 잘 먹는 걸 해주지요. 제일 좋아하는 건 제육볶음이고, 소시지나 햄, 돈가스, 부대찌개 같은 것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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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개인 후원으로만 운영…물가에 관리비 올라 '적자'━
형도 : 공간 임대료에, 관리비에, 식사 준비까지 비용이 꽤 들겠어요. 어떻게 감당하고 계신 건지요.
옥희 : 기관 도움 없이 오롯이 후원으로만 운영해요. 개인과 기업 후원이 한 달에 300만원 정도 들어오고요.
형도 : 후원이라니 다행이긴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신 걸까요.
옥희 : 예전엔 250~300만원으로 됐는데, 지금은 비용이 360~400만원씩 나가요. 물가가 많이 올랐어요. 지난해엔 5만원 전후면 장 봤는데, 지금은 하루 7~8만원씩 들고요. 전기료와 가스비가 다 올랐잖아요. 그러니 지난해 가을부터는 적자가 시작됐지요. 기존에 아껴뒀던 돈이 있어서 충당하고 있지만, 이젠 좀 부족하고요.
옥희 : 아침 10시쯤 집에서 나와서 장 보고요. 밥과 반찬 만드는 건 제가 다 하고, 설거지는 쌓아두면 오후 5시에 자원봉사자 한 분이 와서 해주세요. 저는 오후 5시에서 5시 반 사이에 퇴근하고, 자원봉사자님이 뒷마무리를 해주시는 거지요.
형도 : 아이들이 밥 먹은 다음엔 집에 가는 걸까요.
옥희 :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달라졌어요. 코로나 이전엔 문만 열면 왔지요. 밤늦게 9시까지도 열어뒀었어요. 아이들이 안에 앉아서 스마트폰하고 게임하고요. 문 닫을 준비하면 툴툴거리고, 닫은 다음에도 테라스 앞에 쭉 앉아서 와이파이 잡고 진을 치고 있었지요(웃음). 코로나 지난 뒤로는 근처 놀이터도 새로 싹 해줘서, 거기 가서 놀고, 학교 운동장 가서 축구하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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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매개고, 이야기 털어놓게 해 돌보고 보살펴━
형도 : 사실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코로나 때까지 빠짐없이 한다는 게요.
옥희 :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같이하는 분들에게 그렇게 얘기하곤 했어요. "여러분이 약속한 날에 안 오면 아이들이 밥을 굶는다고 생각하라"고요. 그거라면 안 올 수 없잖아요 최근엔 대학생이 토요일에 애들 공부 가르친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다음주에 못 온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가 계속 그러더라고요. 왜 안 오시느냐고요.
형도 : 그러게요, 아이들과의 약속이니 책임감이 크시겠어요. 아프시기도 힘들겠고요.
옥희 : 그래서 재밌는 것도 있지요. 한 번 되게 아팠을 땐 피자 한 10판 사다가 콜라랑 먹였어요. 오늘은 아파서 일찍 간다고요. 그때 독감이었나 봐요. 감사하지요. 저는 좋아요. 나이 먹고 집에 있어 봐야 누워서 버둥거리기나 하지요. 여기 나와서 오히려 제가 애들 정기 빼먹고 있는 걸요(웃음).
옥희 : 사실 밥 먹고 그런 건 아이들을 만나기 위한 매개일 뿐이에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돌볼 수 있잖아요. 처음 만났던 아이는 아버지가 정신질환에, 할머니가 주 양육자였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애를 때려서 경찰에 신고가 됐지요. 복지관과 연계해 몇 년 돌보고, 사례 관리하고요. 지금 중학생인데 아직도 와요. 조금씩 달라지는 게 보이지요.
형도 : 그러네요. 밥은 아이들을 보기 위한 거고, 이 공간이 열려 있단 게 의미가 있는 거지요. 이야기도 할 수 있고요.
옥희 : 알콜 중독인 아버지에게 맞아 트라우마가 생긴 아이도 있었어요. 두루두루에서 바이올린을 배우며 많이 안정되어 갔지요. 그러면서 얘기도 하나씩 하게 되고요. 직장에 간 애는 지금도 오는데, 겨울에 샌들 신고 미니스커트 입고 오면 "너 미쳤구나, 정신차려" 그래요(웃음). 그런 관계가 설정되면 서운해하지 않고, "아, 왜 그래요, 선생님" 그러지요.
"아이들이 가끔 종이 봉투에 담긴 붕어빵을 건네기도 한다. 급식하고 남은 빵과 음료를, 제주서 사온 초콜릿을 서로 나누기도 한다. 8년째 아이들과 밥과 음료를 나누었는데, 이젠 아이들도 옆을 돌아봐주고 있다. 이 자리를 지켜온 보람에 모락모락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런 이야기를 다 듣고 바깥에 나와 가게 간판을 다시 봤다. '두루두루 식당'이라 쓰여 있었으나, 이미 단순한 식당처럼 보이지 않았다. 졸업하고 다시 찾아온 아이들도, 채옥희 대표에게 그리 말했단다. 고마웠다고. 이곳에 있을 수 있어서, 자기들이 밤에 갈 데 없을 때 두루두루식당이 늦게까지 지켜줘서.
채 대표에게도 인터뷰 내내 줄기차게 그의 보람이 뭐냐고 물었다. 대답은 짧고 담백했다. 그러나 진심이었고 깊었다.
"그냥 저희는 뭘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이 자리를 지키는 거예요. 오늘 여기를 지키는 거고요. 이 공간이 열려 있어야 하는 시간에 열고요. 아이들이 필요로 할 때 들어와 쉬었다 갈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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