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제조업·공급망 전쟁중…프렌즈 쇼어링에서 해답을

머니투데이 사회=박재범 경제부장, 정리=김훈남 기자, 최민경 기자 | 2023.03.13 05:30

[2023 상무관 좌담회]

머니투데이는 10일 오전 서울 서린동 본사에서 미국과 중국, EU(유럽연합) 상무관을 초청해 최근 통상현안에 대한 좌담회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최세나 주벨기에EU대사관 상무관, 김성열 주미국대사관 상무관, 이재근 주중국대사관 상무관.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글로벌 경기침체와 코로나19(COVID-19) 대유행을 지나오면서 자유무역주의는 더이상 세계 통상 무대의 원칙이 아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반도체법과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등을 앞세워 노골적으로 자국 내 제조업 생산을 강요하고 중국과 유럽 역시 이에 대응해 지역 기반 경제 블록화와 공급망 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가격'에 초점을 맞춘 자유무역은 설 자리를 잃고 각국의 보호 정책과 제조업 기반 공급망 자립 경쟁이 본격화됐다는 얘기다. 머니투데이는 최근 통상질서 변화 국면에서 한국 경제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10일 서울 서린동 본사 회의실에서 세계 통상 현장에서 뛰고 있는 재외공관 상무관을 초청해 좌담회를 진행했다.

[참석자]
△김성열 주미국대사관 상무관
△이재근 주중국대사관 상무관
△최세나 주벨기에유럽연합대사관 상무관

-세계적으로 자유무역주의 흐름이 사라지고 블록화 움직임이 강해졌다. 파견 국가에서 보는 통상 정책 흐름을 설명해달라.
▶김성열 주미국대사관 상무관(이하 김성열 상무관) = 미국은 먼저 조 바이든 행정부 2년 동안 추진한 반도체법과 IRA, 인프라법 등 3대 입법에서 두가지 정책기조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미국 우선주의 즉 '아메리카 퍼스트'이다. 산업정책을 통해서 미국 중심 공급망을 강화하고 '메이드 인 아메리카, 바이 아메리카'라는 보호무역주의로 이어진다. 두번째는 중국에 대한 견제다. 반도체 수출통제나 대중(對中) 투자를 포함한 해외투자 심사 강화 등이 진행되고 있다.
▶이재근 주중국대사관 상무관(이하 이재근 상무관) = 중국정부는 3가지 측면에서 대응하고 있다. 먼저 기술 자립과 자체 공급망의 확충이다. 8대 전략 산업과 10대 전략 기술을 지정하고 과학기술 자립과 미래산업을 육성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수를 강조한다. 2035년까지 완벽한 내수 체계를 만든다는 방향이다. 또 미국 중심의 질서가 구축 중인 통상이슈와 직접 관련해선 중국도 그 중심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한다. 다자분야에서도 WTO(세계무역기구)나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에 가입을 추진 중이고 양자 무역에서도 FTA(자유무역협정)를 확대하려고 한다.
▶최세나 주벨기에유럽연합대사관 상무관(이하 최세나 상무관) = 이번 EU(유럽연합) 행정부의 임기가 2024년 10월까지인데 산업정책과 에너지, 환경, 보건 등 분야로 권한을 확대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각국이 국경을 폐쇄하고 의약품 공급이 안 되는 공급망 붕괴를 경험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반도체법과 단일시장 비상조치 등으로 EU차원에서 필요한 물품을 생산하고 분배한다는 정책을 펴고 있다.
다음은 EU의 전통적인 가치 지속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CBAM(탄소국경조정제도)이다. 환경적 가치를 탄소저감이나 플라스틱, 배터리 등 산업적으로 접근한다. 이것을 확장해서 한 기업의 하청업체에서도 같은 수준의 환경, 노동, 인권 등 가치 준수여부를 보고하도록 하는 공급망 실사를 추진한다. EU의 통상정책이 관세뿐만 아니라 산업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단호함을 강조한다. 우리 통상부에 해당하는 통상총국에서 수석통상감찰관을 만들어 상대국의 통상 규범 위반시 WTO를 거치지 않고 보복조치가 가능하도록 했다. 트럼프 행정부와 마찰을 빚은 이후 생긴 강력한 통상정책 흐름이다.

김성열 주미국대사관 상무관이 10일 서울 서린동 머니투데이 본사에서 진행한 2023 상무관 좌담회에 참석해 통상현안을 설명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 결국 미국이나 중국, 유럽 등 3개 지역 모두 공급망을 독립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실현가능한 내용인가.
▶김성열 상무관 = 코로나 이후 반도체 부족으로 미국 자동차 공장이 멈춰섰다. 국민의 건강과 보건에 관련한 의료장비, 마스크, 인공호흡기 같은 기초적인 용품이나 생산장비 등이 미국에서 조달이 안 됐다. 미국은 문제가 된 생산 시설 대부분이 중국에 있었다는 것을 국가안보개념으로 보는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비용절감을 위해 세계로 나갔는데 안보적 관점을 포함 시켜 (충격에 대한) 회복력까지 감안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재근 상무관 = 그동안 세계 경제의 큰 흐름이 세계화와 경제적 효율성에 맞춰져 있었다. 이제 효율성만 아니라 신뢰성·안전성 같은 공급망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룹핑(블록화)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공급망에 대한) 다변화 노력은 필요한 시대다. 우리 정부에서 관리한 핵심품목 가운데 20여개가 특정국가에 95% 이상 의존한다.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도, 일본도, 유럽도 마찬가지다. 단기간 파격적인 의존도 감소는 쉽지 않지만 중장기적 공급망 다변화 노력으로 흘러갈 것이다.
▶최세나 상무관 = EU는 자유무역을 지향하지만 코로나 이후 공급망은 생존의 문제로 떠올랐다. 원자재에 대한 중국산 의존도가 우리나라처럼 높다. 미국처럼 곧바로 디커플링(탈동조)이 가능하진 않지만 EU가 FTA를 체결한 나라와 전략적으로 공급망을 구성하고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특정 비율 미만으로 관리할 것이다.

- 반도체만 예를 들어봐도 결국 미국은 국내에서 생산부터 소비까지 전(全) 과정을 하겠다는 것 아닌가?
▶김성열 상무관 = 완벽한 디커플링이 가능하진 않다. 다만 실제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반도체 생산·공급 등 제조 능력이 취약해졌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약화된 제조능력을 복원한다는 의미로 봐야한다.


이재근 주중국대사관 상무관이 10일 서울 서린동 머니투데이 본사에서 진행한 2023 상무관 좌담회에 참석해 통상현안을 설명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 미중 갈등의 연장선에서 보면 결국 미국을 선택하라는 강요일 수 있는데.
▶이재근 상무관 = 기업은 확실히 난감해 하고 있다. 현지 기업들은 생산공정을 업그레이드해서 몇 년 뒤 시장에 대비해야 하는데 예측이 어려우니까 의사결정을 보류하고 있다.


▶김성열 상무관 = 미국의 수출통제 부분은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협의로 최근 수출통제 1년 유예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고 미국 상무부와 협의체를 가동하면서 중국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 최소화와 기업의 투자 계획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하고 있다.

- EU 입장에서도 미국의 움직임에 대한 반발이 있을 듯하다.
▶최세나 상무관 = 바이든 행정부 이후 동맹이 강화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유럽은 예상하지 못했던 IRA로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현재 핵심원자재법과 함께 도입을 논의하는 제도가 넷제로 인더스트리 액트, 녹색 산업에 대한 보조금 유연화 정책인데 IRA로 인해 녹색산업이 미국으로 가는 것에 대한 대응이다. 보조금에 대해 엄격한 EU가 한시적으로 보조금 지원 여지를 둔 것이다.
▶김성열·최세나 상무관 = 유럽판 IRA라고 봐야한다. 산업정책의 레이스가 시작된 셈이다.

- 중국에 대한 우리나라 수출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로 미국 정책 동조에 대한 보복 영향이라는 진단도 있다.

▶이재근 상무관 = 보복이라는 시각은 너무 확대한 해석이다. 수출이 줄어든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 유행이었고 반도체 업황이 4분기부터 둔화되면서다. 중국도 그렇고 현지 수요가 줄었다.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대한 기대는
▶이재근 상무관 = 리오프닝이 막 시작됐지만 완벽한 회복을 보이고 있지 않다. 상반기 회복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동 문제도 있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1주일에 1300편 하던 항공편이 최근 62편에 불과하다. 항공편을 늘린다고 하지만 공항인력 확보 등을 고려하면 서서히 늘어날 것이다. 생산과 소비 모두 점진적 회복 추세를 가져갈 것이다. 최근 중국 모든 지역의 코로나19 감염률이 80%를 넘어선 것을 보면 어느정도 자연면역을 형성한 것으로 봐도 좋다.

-주요국들은 결국 다시 제조업에 무게를 두는 것이냐
▶김성열 상무관 =경제강국이었던 미국이 스스로 취약한 고리가 제조업이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IRA, 반도체법 등 최첨단 미래 산업 분야 제조업을 중심으로 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전략으로 봐야한다. 이는 민주당이나 공화당 미국 양당 모두 공감하고 있는 사안이다.
▶이재근 상무관 = 사실 제조업은 그전부터 중요했다. 중국도 서비스업을 강조했지만 제조업 중심의 전략을 유지해오고 있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고급 기술 중간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생산을 어디에서 하든 기술 초격차 유지가 핵심이다.
▶최세나 상무관 = 공급망의 부활이나 공급망 안정 측면이 강해보인다. 유럽은 자유무역을 표방하지만 결국 역내에서 공급망을 완성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모든 정책에 환경, 기후변화, 노동권 등으로 명분을 만들어 핵심원자재까지 역내외 파트너국가와 공급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최세나 주벨기에유럽연합대사관 상무관이 10일 서울 서린동 머니투데이 본사에서 진행한 2023 상무관 좌담회에 참석해 통상현안을 설명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우리 기업과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김성열 상무관 = 한국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질서를 충실히 이행해온 국가다. 자유무역과 세계화 기치를 주창을 해야한다. 미국이든 유럽이든 자국 중심으로 공급망이 형성돼 단절돼선 안 된다. 리쇼어링(해외 기업의 국내복귀)이 아닌 우방국 국가와의 협조를 통한 '프렌즈 쇼어링'(동행 국간 공급망 공유)이 돼야한다. 그 프렌즈 쇼어링 가운데 한국이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이재근 상무관 = 미국 시장에 대한 진출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중국 시장 역시 놓아선 안 된다. 중국 시장은 판매 시장으로서의 가치가 있고 공급망 관점에서 부품의 조달지다. 공급망이나 소재부품 공급선도 급격하게 만들기 어렵다. 현명한 접근이 필요하다. 안보적 관점에서 중시하는 품목도 있지만 녹색 산업 같은 예외도 있다.
▶최세나 상무관 = EU 같은 경우 공급망 구축을 하려고 하지만 미국처럼 세게 드라이브 걸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보완적인 산업을 찾아서 공급망에 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면 재생에너지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해상풍력이나 태양광 패널 기술력이 강점이다. 유럽은 신약개발에 독보적인 강국이지만 우리나라는 임상과 생산능력이 뛰어나다. 프렌즈 쇼어링 측면에서 EU의 중요성을 인정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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