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6월30일 산케이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주요 일본 언론은 일제히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를 보도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공정에 들어가는 핵심소재인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에 대한 수출 허가를 강화하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관리 우대대상국)에서 제외하는 조치였다. 2018년 기준 포토레지스트의 일본산 의존도는 93.2%. 우리 주력 산업 반도체를 노린 명백한 기습이었다.
일본의 기습적 수출규제 이후 4년. 우리 반도체 산업은 지난해 역대 최고액 수출이라는 기록을 써냈다. 불시의 기습에도 실제 반도체 공정이 멈추는 최악의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산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미-중 패권경쟁, 코로나19(COVID-19) 대유행 이후 전면으로 떠오른 공급망 리스크의 예방주사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이 수출규제 품목으로 내걸었던 3대 품목을 살펴보면 포토레지스트의 일본산 의존도는 2018년 93.2%에서 지난해 77.4%로 15.8%p 하락했다.
같은 기간 불화수소는 41.9%에서 7.7%로, 불화폴리이미드는 44.7%에서 33.3%로 떨어졌다.
지난해까지 반도체 수출액이 증가함에 따라 수입액은 늘었지만 일본산 필수소재에 대한 의존도가 약화된 것으로 파악됐다.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에 대한 일본의 공격은 역설적으로 우리나라 제조업의 공급망에 대한 접근 방식을 '생산성'에서 '안보' 개념으로 바꾸는데 기여했다. 품질이 보장되고 가격이 적절했던 일본 제품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약점으로 드러났고 우리 주력 제조설비가 멈추지 않는 것도 고려하게 됐다.
정부와 산업계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나온 한달뒤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강화대책을 마련하고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R&D(연구개발) 예산 2485억원을 투입했다. 2021년 일몰예정이었던 소부장 특별법은 상시법으로 전환하는 한편 특별법 지원 대상을 소재와 부품에서 소재·부품·장비로 확대하는 등 공급망 안정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 역시 불화수소와 불화폴리이미드 국산화에 성공했고 일본 의존도가 가장 높았던 포토레지스트는 유럽으로의 공급망을 확대했다. 제도적 기반을 바탕으로한 국산화와 수입선 다변화 노력을 병행한 결과가 핵심소재 일본 의존도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특히 세계경제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거세지고 2020년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세계 물류에 차질이 발생하면서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 필요성이 커졌다. 코로나보다 반년가량 앞선 일본의 기습에 대응한 경험이 공급망 안정화 필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게 한 셈이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1년이 지난 2020년 7월 대일 전략품목으로 설정했던 소부장 정책 대상을 글로벌 차원의 338개 이상 품목으로 확대했다. 코로나19 이후 예상되는 공급망 재편에 대비하는 한편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한 공격적인 육성 정책을 내놓은 셈이다. 반도체 뿐만 아니라 바이오와 미래차 등 소부장 공급망 확보가 필수적인 산업에 대한 R&D 투자를 확대하고 중소·벤처기업 경영자금 지원 정책이 따라왔다.
이같은 소부장 강화 정책은 윤석열정부에서도 이어졌다. 산업부는 2030년까지 핵심 소부장 품목에 대한 국내 생산 비중을 50%이 상으로 올리고 특정국 의존도를 50%이하로 낮추기 위한 '산업공급망 3050' 전략을 올해 업무계획에 담았다. 바이오와 우주, 방산 등 첨단산업 중심의 소부장 핵심전략기술을 150개에서 200개로 확대하는 한편 2030년 200개 소부장 으뜸기업을 육성한다는 목표를 담았다. 2020년 개정한 소부장 특별법도 상반기 중 개정, 대체수입선 발굴 등 공급망 다변화 체계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본 수출규제 이후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국내 소부장 기업의 지원을 통한 공급망 안정화를 꾀하는 계기가 됐다"며 "경제적 이해 관계가 비슷한 우리와 일본 정부가 얽혔던 실타래를 풀면서 국제사회 공조를 추구하는 한편 국내에서도 공급망을 강화할 수 있는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분위기 등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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