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단체 소속 회원들이 여의도공원 앞에 모여 간호법 강행처리 규탄 총궐기대회를 연 지난 달 26일은 우리나라 의료 분쟁 역사상 가장 많은 직역이 참여한 날로 기록됐다.
2000년 의약분업, 2007년 의료법 개정, 2020년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등 수만명을 거리로 나서게 한 갈등이 있었지만, 갈등의 폭과 깊이는 이날에 미치지 못했다. 간호법의 무조건 통과를 주장하는 간호사단체와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 1300여개 단체까지 합하면 간호법 갈등과 연관된 인원은 500만명에 육박한다. 사실상 의료계 전체가 둘로 쪼개져 마주달린 이번 갈등은 이제 최종 충돌이 눈앞이다.
8일 의료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달 9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회부된 간호법은 국회 본회의가 예정된 오는 23일, 혹은 30일 본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장은 본회의 부의 요구를 받은 지난 달 9일부터 30일 안에 여야 대표 합의로 부의 여부를 정해야 한다. 현재로서 합의에 이를 가능성은 낮다는게 중론이다. 이렇게 되면 간호법 제정안은 이후 첫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에 부쳐지는데, 여야는 3월 국회 본회의 일정을 오는 23일과 30일로 합의한 상태다. 이르면 23일, 늦어도 30일엔 간호법 제정안이 무기명투표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투표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강대 강으로 달려온 갈등의 파국은 불가피하다. 400만명이 소속된 보건복지의료연대의 한 축인 의사단체는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총파업도 불사한다는 태세다. 반대의 결과가 나올 경우, 간호법 통과가 46년 숙원사업이던 50만명 소속 간호사단체의 거센 반발을 각오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의료체계 전반의 마비 사태가 불거질 수 있고 이는 고스란히 국민 피해로 연결된다.
간호법이 여·야 소속 의원 대표로 각기 3건 발의된 2021년만 해도 상황은 이렇지 않았다. 의사단체와 간호사단체가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1인 릴레이 시위를 이어간 정도였다. 해가 바뀌어 3개의 법안이 통합되고 보건복지위 전체회의를 통과하자 의사단체와 간호조무사단체 소속 7000여명이 거리에 나섰고 간호사단체도 집회 규모를 키우며 맞불을 놨다. 다시 해가 바뀌어 지난 달 9일 이 법안이 본회의 안건으로 직행하자 이제 13개 보건의료단체와 간호사단체 간 명확한 전선이 생겼다.
2년에 걸쳐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진 셈이다. 의료계에서는 애초에 간호법 찬반 양측이 자체적으로 이견의 폭을 줄일 여지가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양측 모두 이 법의 통과 여부를 각 직역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간호법 제정안에서 간호사 업무 범위로 '지역 사회'가 추가된 부분이다. 의사를 비롯, 임상병리사 등은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가 간호사의 독자적 의료활동을 허용할 수 있다고 본다. 간호조무사와 방사선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응급구조사 등도 지금도 일부 벌어지는 간호사의 업무영역 침해가 간호법이 통과되면 본격화될 것으로 본다. 반대로 간호사단체는 지역 사회에서도 의사 지시서가 없으면 단독 행위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70년 된 낡은 의료법에 갇혀있는 간호사들의 역할과 업무범위, 인력수급, 처우개선을 시대 변화에 맞춰 현실성 있게 간호법으로 체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강성홍 인제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보건의료 관련 입법은 전문가의 심도있는 검토를 거쳐 관련 직종의 합의를 도출해 제정돼야 하지만 의사 손보기 차원에서 졸속으로 진행됐다"며 "행정부에서는 신중검토를 주장했지만 무리하게 입법이 추진됐고 그 피해는 결국 간호사 보다 더 힘이 약한 의료기사 및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요양보호사들이 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재없이 최고조로 치닫는 양측 갈등은 이제 시급히 추진돼야 할 의료개혁 작업에도 제동을 건다.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 안건으로 직접 회부된 것에 반발한 의사단체의 불참으로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의 의료 정책 논의 창구인 의료현안협의체가 중단되면서 필수의료 개선, 의대 정원 증원, 비대면 진료 제도화 등 의료개혁과 관련된 전반적 협의가 표류중이다.
이주열 남서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차원에서 각 직역 간의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에 참여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이제 이 법이 통과되면 직역 간 갈등은 최악이 될 것"이라며 "보건복지부와 전문가 및 관련 단체가 참여하는 별도 협의체를 구성하고 국회와 조율하는 과정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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