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전도연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 2023.03.08 10:07
/사진=매니지먼트 숲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 (극본 양희승, 연출 유제원)의 주인공 남행선은 국가대표로까지 활약했던 핸드볼 선수 커리어를 포기하고 가족을 부양한다. 해이는 사실 딸이 아닌 조카다. 동생 재우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 누구라도 포기할 상황이지만 행선은 그럴 시간도 아까워한다. 그렇다고 삶이 빡빡하지만은 않다. 자신의 주관대로 선택하고 그 선택을 변명하지 않고 달려간다. '일타 스캔들' 종영 이후 만난 전도연도 마찬가지였다.


'일타 스캔들'이 방송되기 전까지만 해도 전도연과 로맨틱 코미디는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전도연의 로맨틱 코미디는 2005년 방송된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이 마지막이었다. 15세 이상 시청가인 '일타 스캔들' 시청자 중에는 전도연의 '로코'를 처음 보는 시청자도 있는 셈이다.


"17년이라니 저도 놀랍네요. 밝은 작품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작품이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일타 스캔들'이 들어왔어요. 처음부터 잘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감사해요. 전도연이라는 배우에 대한 인식이 무겁고 장르물에 치우쳤다고 생각하는데 지인들도 안타까워하더라고요. 행선이만큼은 아니지만 밝고 경쾌한데 그런 모습을 알아줬으면 하길 바랐던 것 같아요. 주변 반응을 보면 저보다도 훨씬 기뻐하고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시청률이 잘 나와서 기쁜 것도 있지만 그런 반응을 보면 '이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안타까워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천명의 나이에도 전도연이 연기한 남행선은 사랑스러웠다. 또한 거슬리지 않는 자연스러운 연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어찌보면 억척스러운 남행선을 밉지 않게 표현했다.


"사실 대본상에는 훨씬 더 텐션이 높았어요. 그런데 제가 좀 많이 부담스러웠어요. 제가 가진 것 안에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다른 누군가를 연기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리딩을 할 때 못하겠다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바꿔 달라고 요구했어요. 작가님은 더 억척스러운 인물을 생각했는데 저로 인해 많이 희석되기는 했어요. 그래도 작가님의 의도를 계속 생각하면서 연기했어요. 사실 이 작품을 하면서 행선 캐릭터가 '어떻게 보면 민폐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행선이라는 캐릭터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포기하고 차선의 삶을 최선처럼 살아가는 게 멋있고 응원해주고 싶었어요. 보시는 분들도 그런 모습을 발견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분들이 그렇게 봐주신 것 같아요"


/사진=매니지먼트 숲


전도연의 필모그래피 역시 로맨틱 코미디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에 기여했다. 2007년 영화 '밀양'을 기점으로 '너는 내 운명' '하녀' '집으로 가는 길' '굿와이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등 깊은 연기력을 요구하는 작품을 소화했기 때문이다. 또한 오는 31일 공개를 앞둔 넷플릭스 오리지널 '길복순' 역시 '일타 스캔들'과는 전혀 다른 색깔의 작품이다.


"그동안 작품을 선택할 때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에서 답답함과 갈증을 느끼긴 했어요. 그게 꼭 로맨틱 코미디는 아니더라도 밝은 작품을 하고 싶었거든요. 사실 여러가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은 어떤 배우에게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제 생각보다 무겁고 진지한 작품에 오랫동안 갇혀있던 것 같아요. 제가 제작을 하거나 감독, 작가는 아니라 오랜 시간 기다렸어요. 물론 제 커리어에는 만족해요. 제 의도대로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에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일타 스캔들'이 방송되기 전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전도연은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 했다"고 말했다. 작품이 끝난 후 이 말에 대한 의미를 묻자 다시금 영화 '밀양'이 등장했다.


"저는 '밀양' 전과 후로 나뉘는 것 같아요. '밀양' 전에는 외부적으로 감독님과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 감정을 위해 연기를 했어요. 감독님은 답을 가지고 있고 감독님이 오케이라 하시면 정답이라고 생각했어요. '밀양' 촬영 때 이창동 감독님이 '네가 느끼는 만큼만 연기하라'고 가르쳐주셨어요. 그 순간 깨닫지는 못했지만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됐어요. 제가 느끼는 만큼이라면 온전히 제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면 계속 의심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 감정이 그 인물이 느끼는 건지 제가 느끼는 건지 말이죠. 또 내 감정이 이런데 시청자들에게는 느껴질까 두려움과 느껴질 것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사진=매니지먼트 숲


극 중 행선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가족이다. 딸 해이, 동생 재우 등 행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행선은 항상 쉴새 없이 움직인다. 그렇다면 배우 전도연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저의 원동력은) 저예요. 제가 있어야 가족도 챙기고 연기도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긴 한데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모호하고 어려워요. 그냥 저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고 싶어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생각했을 때 솔직히 창피하고 싶지는 않아요"


많은 사람들은 '일타 스캔들' 이후 '전도연의 재발견이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전도연은 이러한 평가를 부정했다.


"로맨틱 코미디를 통해 배우 전도연의 새로운 영역이나 활동 영역을 넓혔다기보다는 오랬동안 잊힌 것에 대해 환기하게 만든 것 같아요. 나이든 성별이든 작품이든, 주변의 시선이 저를 가뒀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제 성격상 그런 것을 깨거나 증명하겠다고 나서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새로운 건 두려워하고 익숙한 걸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앞으로 사람들이 저에게 어떤 기대를 할 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그런 것에 부딪힐 것 같아요. 저는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전도연인데 이번 기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와 작품들이 많이 들어오지 않을까 싶어요"


/사진=매니지먼트 숲


이렇게 인간 전도연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고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현재에 안주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서야 할 때는 피하지 않고 부딪힌다. 배우 전도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변의 시선이 전도연을 틀에 가뒀지만 애써 나서서 그 틀을 깨려하지 않았다. 다만 틀을 깰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과감하게 틀을 깼다. 그런 전도연은 점차 변화하고 있었다. 이제는 스스로 나서서 틀을 깨려고 한다.


"저는 수동적인 배우였던 것 같아요. 사적인 자리에서 '해보고 싶어요'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그러다 바뀌고 싶고 달라지고 싶다면 '할 수 있는 노력을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은 감독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들에게 저는 어려운 선배라 '내가 다가가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다가올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양한 작품을 했다고는 하지만 스스로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그들에게 매력적인 배우일까라는 생각도 했고요. (젊은 감독만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너무나도 그런 에너지에 영향을 받고 싶어요. '길복순'의 변성현 감독에게도 '당신 능력만큼 나를 소모시켜라. 나는 소모될 각오가 되어있다'고 말했어요. 사실 '길복순'은 한계에 부딪힐 수 있는 작품인데 무리해서라도 극복하고 싶었어요."


누군가에게는 재발견, 스스로에게는 환기로 다가온 전도연의 연기는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러한 기대가 부담으로 돌아올 법도 하지만 오히려 전도연은 이러한 기대감을 즐겼다.


"기대감이 없는 것보다 기대감이 있는 게 좋은 거죠. 물론 그만큼 부담이 되지만 스스로 저를 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해요. 내가 불편한 게 뭐가 있나 생각하고 불편하지 않게끔 해요. 그래야 뭐를 하더라도 해야 할 것에 집중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생각이 많아지는 것도 있지만 더 많이 기대해 주셔도 되고 그런 기대도 감당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예요. 오히려 기대감이 없으면 좌절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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