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질 줄 알았다" 20년 묵은 법원 전산 마비사태…보상은 모르쇠?

머니투데이 성시호 기자, 박다영 기자, 심재현 기자, 황국상 기자 | 2023.03.08 07:00

[MT리포트]'먹통 느림보' 사법서비스(上)

편집자주 | 법원 전산망 전체가 마비되면서 재판 일부가 연기되고 전자 소송, 사건 검색 등 대국민 서비스가 전면 중단되는 초유 사태가 발생했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의 안일한 전산행정과 권위적인 서비스 인식이 빚어낸, 예고된 사고라는 지적이 나온다.



20년 묵은 법원 전산…법조계는 '차세대' 개통만 오매불망


/그래픽=김다나 디자인기자
전국 법원을 휩쓴 내·외부 전산 마비 사태가 지난 5일 밤 9시 전자소송 시스템 재개로 일단락됐지만 법조계에서는 비슷한 문제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현행 시스템이 노후할대로 노후해 내년 상반기 차세대 전자소송시스템이 개통하기까지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에서다.

판사와 법원 실무자가 이용하는 현재의 재판사무시스템은 1998년 개발됐다. 2011년부터는 변호사와 소송 당사자가 전자소송시스템을 통해 직접 소송 서류를 제출·조회할 수 있게 됐다. 민사소송 분야에서 전자소송 접수건은 2021년 기준으로 전체 소송 접수건수의 90%를 넘길 정도로 법조계에서 보편화된 상태다.

문제는 법원 전산시스템이 그동안 필요에 따라 제각각 신설, 개선되면서 표준화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법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0월 발간한 '민사전자소송 시행 10년' 보고서에 따르면 법원 내·외부인을 상대로 한 사법 업무 시스템을 유지하는 서비스 단위는 118개에 달한다. 서비스 시스템이 일원화되지 않은 채 구동되다 보니 시스템 오류나 장애 발생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지적이다.

전자소송으로 소송절차가 간편해지면서 폭증한 사건수도 법원 시스템 장애를 키우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 2일 발생한 법원 전산 장애만 해도 전날 문을 연 부산회생법원·수원회생법원에 사건 전산자료 7억7000여건을 옮기는 작업이 지연되면서 발생했다. 법원행정처는 서울회생법원 개원 당시보다 이전할 자료가 약 3배 늘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 같은 문제를 전면 해소하기 위해 일명 '스마트 법원 4.0'으로 불리는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구축 사업'을 2020년부터 진행 중이다. LG CNS 컨소시엄이 시스템 구축을 맡았다. 이 사업은 2020년부터 4개년에 걸쳐 추진되도록 구성됐다.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 관계자는 "현재 개발 단계를 진행 중"이라며 "통합 테스트와 각급 법원 시범 운영을 거쳐 내년 상반기 새로운 시스템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민 권리 위에 사법 권위…'법원 먹통' 예고된 사고


"사법시스템이 잠깐 멈췄다가 재개됐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법원의 행정편의주의를 두고 제기됐던 잠재적 우려가 확인됐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신설된 부산·수원회생법원으로 사건 전산자료를 이전하는 과정에서 전국 법원 전산망이 마비된 초유의 사태를 두고 법조계 한 인사는 6일 이렇게 말했다. 대법원은 시스템 중단이 전산자료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해명했지만 법조계에서는 "막을 수 있는 일을 막지 못한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권위주의적인 사법행정이 빚은 예고된 사고라는 지적이다.

법원 전산망은 지난달 28일 오후 8시부터 이달 2일 오후 11시까지, 4일 오전부터 5일 오후 9시까지 두차례 중단됐다. 당초 지난달 28일 오후 8시에 시작, 이달 2일 오전 4시에 끝내려던 자료 이전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자 재판 사무시스템과 전자소송시스템을 재가동하려 했지만 법원 재판 업무가 시작될 때까지 시스템 정상 운영에 실패했다.

이 사태로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에서 일부 민사재판이 미뤄졌다. 전산망을 사용하지 못한 일부 판사들은 종이에 메모하거나 개인 컴퓨터에 기록하면서 재판을 진행했다. 법원 민원실은 종이 서류를 들고 찾아온 사건 당사자들로 붐볐다. 재판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없게 된 변호사들의 의뢰인 면담도 줄줄이 연기됐다.

등기부등본 등을 열람·발급하는 대법원 인터넷 등기소에서도 전자 제출용 등기 사항 증명서 발급, 이의 신청 사건 번호 조회 등 일부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다수의 불편사항이 접수됐다.

이번 사태를 두고 법원 내부에서도 쓴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중앙지법 한 판사는 "자료를 미리 옮기거나 예행 연습을 했으면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텐데 이런 준비를 왜 안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다른 판사는 "7억7000만건의 방대한 자료를 옮기면 프로그램 오류 가능성 등 다양한 부분을 미리 예상했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서 섬세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법원 전산시스템이 멈춰선 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법원이 좀더 자료 이전 작업을 꼼꼼하게 준비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법원 전산시스템은 2007년 6월, 2009년, 2018년 11월, 2022년 5월에도 일시 오류 등으로 먹통이 됐다. "법원의 안일한 사법행정이 이번 사태의 최대 원인"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IT(정보기술) 측면에서 법원 전산시스템이 잦은 오류와 불편 접수에 시달리는 것은 법원이 사법업무 전산화를 통해 재판 사무시스템을 완비한 2002년 이후 20여년 동안 필요에 따라 땜질식 서비스 신설과 처방을 반복하면서 일원화된 체계 없이 제각각 운영되는 탓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법원 내·외부인을 상대로 한 사법 업무 시스템은 110여개에 달하는 서비스로 구동된다.

대법원이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스마트 법원 4.0'으로 불리는 '차세대 전자소송시스템 구축 사업'을 내년 상반기 선보일 계획이지만 문제는 차세대 시스템이 구축될 때까지는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이번 사태만큼은 아니겠지만 오류 등으로 현재 시스템에 문제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해진 날짜까지 반드시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소송에선 전자소송사이트의 오류 등으로 중요한 서류가 하루만 늦게 접수돼도 사건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사이트의 주된 이용자는 법무법인·법률사무소의 직원과 변호사, 기업 법무팀 직원들이지만 최근에는 '나홀로 소송'을 하는 일반인도 적잖다. 사법부의 땜질 처방과 뒷북 개선에 국민이 볼모로 잡힌 셈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쌓였던 법원 전산시스템에 대한 불편·불만도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대법원 등기소 사이트에서 부동산 등기부 등본을 열람할 때 MS(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지난해 지원을 중단한 구식 브라우저 '인터넷 익스플로러'로만 가능하다는 점이 대표적인 불편 사례다. 법원이 선보인 스마트폰용 앱 '대한민국 법원'을 두고도 제대로 구동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이어진다.

법조계 한 인사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게 꼭 비리 사건 같은 대형 이벤트 때문만은 아니다"라며 "사법부가 다시 신뢰를 회복하려면 권위주의적이고 공급자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사법서비스의 수요자인 국민 중심의 관점에서 더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설치만 10번" "쓰라고 만들었냐"…액티브X에 묶인 법원



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직장인 A씨는 최근 부동산 등기부 등본을 열람하려고 대법원 등기소 사이트에 접속해 열람에 필요한 요금까지 지불했지만 필요한 서류를 열람할 수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MS(마이크로소프트) 엣지나 구글 크롬으로는 안 되고 옛날 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가능하다"는 글이 보였다. A씨는 "지난해 이미 MS가 익스플로러 지원을 중단했는데도 아직 법원 시스템은 익스플로러를 쓴다는 것"이라며 "후진적인 시스템이 이용되고 있다는 데 놀랐다"고 말했다.

법원의 '나의 사건검색' 서비스를 비롯해 공고·판결문 인터넷 열람 서비스 등이 지난 2~5일 두차례 먹통이 된 것을 계기로 법원 전산 시스템의 후진성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법원 시스템을 수시로 이용하는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구시대적 법원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구글플레이스토어에서 '대한민국 법원' 앱을 검색하면 이용자들의 불만이 또렷하게 확인된다. 이 앱은 사건 검색에서부터 전자소송 진행 정보, 재판 진행내역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앱이다. 이 앱의 평점은 5점 만점에 2.7점이다. 최하점인 1점을 준 이용자가 가장 많다.

한 이용자는 "로그인 하면 공인인증서 비밀번호창이 활성화돼야 하는데 (앱을) 업데이트한 뒤 창이 뜨지 않아 로그인 할 수 없다"고 적었다. 또 다른 이용자는 "설치 후 실행이 안 된다"며 "재설치만 10회가 넘었다"고 호소했다. 이밖에서도 "충돌이 나서 앱이 켜지지 않는다" "이걸 쓰라고 만든 것이냐" 등의 불만이 올라왔다.

수시로 법원 시스템을 이용하는 변호사들도 고충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다. 고윤기 대표변호사(로펌고우)는 "원래대로라면 전자소송 앱을 통해 재판 기록을 제출, 열람하고 법정에서도 원활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전자소송 앱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재판 기록을 별도로 다운로드해 태블릿에 담아간다"고 전했다. 언제 전자소송 앱에서 오류가 생길지 모르니 미리 태블릿에 별도 파일 형태로 내려받아 재판에 들어간다는 얘기다.

고 변호사는 "법원 전산 시스템을 통해 등기 업무를 하려면 컴퓨터를 몇 번이나 재부팅해야 한다"며 "아직도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등기진행이 가능한데 보안상 문제가 생길 수 있고 크롬이나 사파리 등 다른 브라우저의 경우에도 어떤 보안 설정은 기준보다 낮추고 어떤 건 추가하는 등 세세한 설정을 거쳐야 해 불편하다"고 말했다.

여전히 액티브X와 같은 장치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조윤상 대표변호사(법률사무소 인평)는 "현재 사용하는 업무용 컴퓨터에는 전자소송 시스템을 아예 설치하지도 않았다"며 "전자소송 시스템에서 요구하는 각종 액티브엑스 프로그램들을 설치하다보면 컴퓨터 전체가 먹통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현재의 전자소송 시스템은 2010년대 만들어진 시스템을 액티브엑스로 덕지덕지 덮어야만 겨우 돌아간다"며 "보안에도 큰 문제가 있을텐데도 이같은 구닥다리 시스템을 고수하는 이유가 뭔지 법원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변호사 A씨는 과거 사내 변호사로 근무하던 시절 재판기록을 사무실에서 종이로 인쇄할 수 없어 낭패를 봤다고 밝혔다. 법원 시스템에서 조회한 기록을 인쇄하려고 했지만 '해당 시스템이 지원하지 않는 프린터'라는 이유로 출력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A 변호사는 "법원에서 '프린터 기종을 추가하려면 모델 등록을 신청하라'고 안내해주기는 했지만 등록신청을 했는데 그 회사를 퇴사할 때까지 프린터 등록이 안되더라"고 말했다.

법원 전산 시스템이 최근의 미디어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일례로 재판기록을 첨부할 때 문서파일의 크기는 20MB(메가바이트) 이하, 영상파일의 크기는 100MB 이하여야 한다. 그나마 예전 문서 제한 10MB에 비해서는 나아졌지만 문서파일에 사진 등 파일을 첨부할 경우 20MB라는 기준을 맞추는 것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특히 교통사고 사건처럼 동영상 증거의 정밀성이 요구되는 사건에서 '동영상 파일 크기 100MB' 제한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

심지어 정부에서도 점차 활용이 늘고 있는 'hwpx 확장자' 파일도 업로드(등록)가 불가능하다. hwpx는 한글과컴퓨터가 개발한 신규 문서 포맷으로 정부부처 자료 등에도 쓰인다. 법원 재판시스템에 업로드할 수 있는 파일 확장자는 한컴의 hwp를 비롯해 doc, docx, pdf, txt 등 5개 문서파일 포맷과 bmp, jpg, jpeg, gif, tif, tiff, png 등 7종의 이미지 파일 포맷밖에 없다. hwpx 파일을 입력하려고 하면 '확장자 .hwpx 첨부할 수 없습니다'라는 팝업창이 뜬다.

법원 시스템의 낙후 문제는 입법부나 행정부에 비해서도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입법부에서는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등을 통해 법안 발의부터 심의, 의결 등 과정이 세세하게 소개한다. 행정부에서도 전자정부 시스템을 통해 민원인들이 각종 서류를 간편하게 내려받아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법조계 한 인사는 "사법 시스템은 수요자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많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5577억 보상, 법원은 먹통돼도 '모르쇠'?


최근 법원의 전산 시스템 마비로 대법원이 대국민 사과까지 했지만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은 여전하다. 그동안 법원의 고압적인 전산 시스템에 불편을 호소했던 국민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법원 시스템이 언제든 중단될 수 있다는 잠재적 우려까지 확인하면서다.

지난해 카카오가 데이터센터 화재로 수일간 주요 서비스가 먹통된 뒤 5000억원이 넘는 대규모 보상안을 실시했던 것과 맞물려 법원에는 시스템 중단에도 불구하고 보상을 요구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단순 비교해도 법원 시스템의 마비는 카카오톡 이용자와 소상공인, 스타트업 등의 피해에 국한되는 카카오 서비스 중단에 비해 사안의 중대성이 훨씬 크다. 당사자간 합의로 해결되지 않는 치열한 갈등을 해결하는 최후의 수단이 재판이라는 점에서 사법 시스템에서 기한 준수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칫 기한을 지키지 못해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입을 가능성도 있다.

고윤기 변호사(로펌고우)는 "각종 판결·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이나 상소제기를 할 수 있는 기한은 소위 불변기간으로 규정돼 있어서 기한을 지키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한다"며 "민사소송법은 '당사자가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불변기간을 지키지 못한 경우 2주 내 소송행위를 보완할 수 있다'고 해서 구제책을 마련했지만 기간 자체를 연장해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재판 기일이 미뤄진 것도 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 사법 시스템은 사건이 수년간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사건 적체가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코로나19 사태로 사건 처리 기간은 더욱 길어졌다. 이번 전산망 마비 사태로 열리지 못한 재판들은 다시 최소 몇 주에서 몇 달간 미뤄질 수밖에 없다. 법적 분쟁 당사자들은 그만큼 불확실한 상황을 감내해야만 한다.

카카오 중단 사태와 달리 이번 사태에서는 각종 불편은 물론이고 실제 손해가 발생했다더라도 국민들이 피해를 보전받을 방법이 사실상 없다. 고 변호사는 "법원 등으로부터 손해를 보전받기 위해서는 (법원의) 고의·과실이 전제돼야 하는데 이를 입증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추후보완 상소 등 방법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 배상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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