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억 내고도 금지 됐던 '월급통장'…증권사, 17년 묵은 한 푸나

머니투데이 정혜윤 기자 | 2023.03.06 15:05
금융당국이 증권사의 법인대상 지급결제 허용 논의를 구체화하기 시작하면서 증권업계의 기대감이 높아졌다. 당장 은행의 철옹성을 무너뜨리기 쉽지는 않겠지만 법인지급결제가 허용되면 증권사의 법인 사업 등 IB(기업금융) 기능이 확대되는 등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은 최근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과제 중 하나로 증권사의 법인결제 업무 허용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전과 다른 당국의 적극적인 분위기에 대형 증권사들은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한 증권사 대표는 "증권업의 새로운 업무영역을 열어주려고 하고 있어 매우 긍정적"이라며 "반대 진영의 목소리가 워낙 강했던 이슈였는데 (당국에선) 예전처럼 그냥 덮자가 아니라 전향적으로 증권업계 의견을 들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의 법인지급결제 논의는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2006년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안(현 자본시장법)을 만들면서 증권사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당시 증권사들은 개인·법인 지급결제 허용을 전제로 산정한 결제망 특별참가금으로 3375억원을 지불했다. 여기에 추가 납부액까지 포함하면 약 4000억원 가까이 된다.

하지만 지급결제의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금융권 반대로 증권사는 법인 결제시스템은 이용할 수 없게 했다.


기업, 조달-투자-결제 등 원스톱 이용 가능


[서울=뉴시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 회의'에서 은행권 경쟁촉진 및 구조개선 관련 사항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2023.03.03. *재판매 및 DB 금지
증권업계는 그간 금융회사간 경쟁 촉진과 업무 형평성 차원에서도 다른 기관과 동일하게 법인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증권사는 새마을금고(368억원), 신용협동조합(187억원), 저축은행(154억원) 등보다 많은 참가금을 납부하고도 유일하게 대상이 '개인'으로 제한됐다.

이에 당국은 은행권 경쟁 촉진 방안을 마련하면서 금융결제원 규약 개정(이사회 의결사항)을 통한 증권사의 법인 지급 결제 허용도 검토하고 있다.

기업들이 증권사를 통해 단순 송금 이외에도 CMS(급여 등 소액 대량 자금 이체)·PG(기업·고객간 전자상거래 대금 이체) 등 다양한 지급결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는 내용이다.


기업은 조달-투자-결제 등 자금흐름 일련의 단계에서 증권사의 금융서비스를 원스톱으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특히 증권사를 이용하는 기업의 금융비용도 절감된다. 현재 은행연계망은 건당 200~500원 수수료가 드는데 증권사가 직접 지급결제망을 이용하면 건당 10~14원까지 줄어든다.

증권사의 IB기능은 강화된다. 기업이 임직원급여 '지급'계좌로 증권사 계좌를 이용하고, 세금 등 공과금 납부계좌로도 사용할 수 있다. 홈쇼핑이나 인터넷쇼핑 기업의 물품대금 수령계좌로도 활용 가능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장기채권이나 주식으로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하려는 기업들은 급여통장을 만들수도 있고 증권사 여러 상품을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증권사 결제리스크 우려... 시스템 정비도 시간 걸릴 것"


물론 증권사가 은행 대비 수신 기능이 취약하고 금융시장 상황에 민감한 자금조달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 등은 부담으로 꼽힌다. 금융위기 발생시 증권사의 결제리스크가 기타 금융산업의 시스템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도 있다.

이뿐 아니라 대기업과 협력업체들이 대기업 계열 증권사로 결제계좌를 집중할 경우 해당 증권사로 대규모 자금이 집중돼 금산분리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단 우려도 제기됐다. 해당 증권사가 재벌의 사금고화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이와관련 금융위는 "증권사 대상 수요조사가 선행될 필요가 있고 정부, 한국은행, 업권간 심도있는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증권사의 법인지급결제가 허용되더라도 은행의 철옹성을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을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어느 정도 파급력은 있겠지만 (기업들의) 대출 의존도도 높은 상황이라 은행을 이기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시스템 정비에도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행이 지급결제망을 열어주고 시스템을 정비하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또 지급결제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증권사에 더 강한 안전 관리장치를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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