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환승도 모르는 분들 있어"…어르신 불편한 '현금없는 버스'

머니투데이 최지은 기자, 김진석 기자, 김지성 기자 | 2023.03.06 05:30
서울의 한 시내버스 안에는 ‘현금 없는 버스’ 요금납부 안내서가 비치돼 있다. /사진=김진석 기자
3일 오전 11시 서울역 버스종합환승센터 앞. '현금 없는 버스'라는 안내 현수막이 붙은 시내버스가 줄지어 도착했다. 버스들에는 현금을 받는 요금함이 없다.

서울시는 2021년 10월 18개 노선, 436대 버스에 현금 없는 버스를 도입했다. 지난 1일부터 108개 노선·1876대로 확대했다.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고 현금 지불로 인한 지연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한 해 20억원에 이르는 현금통 유지·관리비를 절감하려는 목적도 있다.

현금 없는 버스에서는 현금 대신 교통카드나 모바일 교통카드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요금을 내야 한다. 교통카드가 없거나 카드에 충전된 요금이 부족할 경우 운수회사 계좌번호가 적힌 요금납부안내서를 기사에게 받아 나중에 이체해도 된다.

현재 서울 시내버스 4대 중 1대꼴로 현금 없는 버스가 운행된다. 시민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종로5가역 부근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이모씨(77)는 "현금을 찾느라 미적거리는 일이 없으니 승객들이 승차하는 시간이 빨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시내버스 현금 수입은 2012년 521억1800만원에서 지난해 81억9800만원으로 10년만에 84% 넘게 줄었다. 서울 시내버스 현금 이용자 비율은 지난해 기준 전체 탑승객의 0.6% 정도다.

하지만 노인 등 교통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종로구 한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김모씨(60대)는 "충전식 교통카드를 사용하고 있어 요금이 부족할 때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 넣지만 앞으로는 계좌이체를 해야 한다"며 "나이가 들다 보니 은행 앱을 사용하면 시간이 오래 걸려 불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청소년들도 걱정이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정모양(15)은 "교통카드로 버스만 타는 게 아니라 편의점에서 물건도 사는데 그러다 보면 잔액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급할 때는 현금으로 버스에 탈 수 있었는데 이제 안 된다니 걱정"이라고 말했다.


일부 버스 기사들은 불편함을 호소했다. 서울 시내버스 기사 김모씨(60대)는 "현금만 있는 승객에게는 요금납부안내서를 전달하고 기사는 계좌이체 승객 명단에 시간, 정류장, 성별, 연령대를 모두 기록해야 한다"며 "운행 중 하려니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 한 시내버스 차고지에서 만난 기사 황종문씨(53)도 "노인 중에는 아직 대중교통 환승 제도조차 모르는 분들이 있고 현금으로만 탑승하는 분들이 있다"며 "일부 젊은 사람 중에는 계좌이체 승객 명단에 거짓 인적사항을 적는 식으로 제도를 악용해 무임승차 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이달 1일부터 계좌이체를 받아야 할 승객의 인적사항을 적게 하지 않고 탑승시간, 정류장, 성별, 연령대 등의 정보를 기입하는 것으로 제도를 바꿔서 시행 중이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는 "현금 없는 버스의 확대는 방향적으로 봤을 때 맞게 흘러가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어르신 이용이 적은 노선을 중심으로 확대하는 등 점진적으로 늘리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이어 "편의점 등 카드 구매처에 대한 홍보를 활성화하는 등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교통카드 구매처를 늘리는 등 제도 안착을 위해 노력할 방침이다. 현재로서는 모든 버스를 현금 없는 버스로 대체할 계획은 아니다. 시 관계자는 "소외되는 이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포함한 제도 개선에 대해 지속해서 모니터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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