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살만의 사우디는 미국과 영영 결별하나[PADO]

머니투데이 김수빈 PADO 매니징 에디터 | 2023.03.05 08:00

편집자주 | 2차세계대전후 전세계 신질서를 주도해온 미국은 자본주의 세계정치경제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정치군사력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그리고 영국의 소프트파워, 이 세 가지를 활용해왔습니다. 하지만 무함마드 빈살만 시대에 들어와 이 세가지 기둥 중 하나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젊은 빈살만 왕세자는 어린 시절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추종하던 야심가로서 사우디왕국을 대대적으로 현대화시키려하고 있고 더 이상 미국만 추종하는 나라로 놔두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이든 민주당 정부와는 더더욱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PADO는 미국-사우디 관계가 흔들리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인식하고 그 회복방안을 제시하는 텍사스 A&M의 저명 중동전문가인 그레고리 고즈 교수의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 1/2월호 기고문을 요약 소개하면서 세계 정치경제질서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차지하는 위치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드리고자 합니다.

(제다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 (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도착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C) AFP=뉴스1
2022년 10월 22일 사우디아라비아는 OPEC+(사우디, 베네수엘라, 쿠웨이트 등의 기존 석유수출국기구 회원 13국에 더해 러시아를 비롯한 비회원 11개국이 참여하는 산유국 회의 --편집자주)가 하루 석유 생산량을 200만 배럴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세계 최대의 석유수출국인 사우디는 늘 OPEC의 세계 석유시장 관리를 주도했다. 이 조치는 국제 유가에 즉각 (그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영향을 미쳤다. 발표 전까지 배럴당 76달러로 연중 최저 수준이던 게 11월 중순에는 82~91달러를 오가게 됐다. 미국이 받은 충격은 경제적이라기 보다는 지정학적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에 감산 조치를 늦춰 달라고 요청했는데 사우디는 이를 무시하고 감산을 강행한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과 사우디 사이에 비난이 오갔고 양국 관계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OPEC+의 결정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와의 관계를 재평가할 것이며 이번 감산 조치가 "러시아의 돈벌이를 도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대응으로 내린) 러시아 제재의 효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뉴저지주 민주당 상원의원인 로버트 메넨데즈는 미국산 무기를 사우디에 수출하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몇몇 의원은 사우디에서 미군을 철수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사우디도 물러서지 않았다. OPEC+의 결정은 만장일치로 이뤄졌으며 "순전히 경제적 이유에 따른 것"이었다고 반박했다.

이후 몇 달이 지나자 양쪽 모두 흥분이 가라앉았다. 바이든 행정부가 거론한 '사우디와의 관계 재평가'가 중대한 변화로 이어질 성싶지는 않다. 미국-사우디 관계는 더 심각한 위기도 견뎌낸 바 있다. 2022년 11월,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 요원에게 암살당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약혼녀가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흔히 'MBS'라는 약칭으로 불린다)을 미국 법원에 고소했을 때 MBS가 사우디 수상을 겸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그에게 주권면제(주권국가에 대한 타국 법원의 관할권을 배제함으로써 국제문제를 예방하는 조치 --역주)를 부여했다. 미국-사우디 관계가 파국을 향하고 있진 않다는 여러 신호중 하나다. 그러나 OPEC+ 소동과 그 이후 상황은 양국 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양국관계가 시작된 20세기 중반 이래 처음으로 사우디가 국가 대전략 차원에서 미국과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미국-사우디 관계를 분석하는 전문가는 국가를 대표하는 개인과 그들의 관심사항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MBS는 고집불통의 권위주의자로, 사우디의 경제를 혁신하고 세계 무대에서 사우디를 독립적인 플레이어로 키우려 한다. 반면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보다 조심스러운 스타일로, 민주주의를 자기 외교정책의 중심에 놓는 한편 러시아와 중국에 맞서 전 세계를 규합하려고 한다. 둘의 성격과 목표의 차이는 분명 양국 관계에 중요하다. 그러나 카를 마르크스가 명민했던 시절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인이 역사를 만들지만 꼭 그들이 선택한 방식으로 역사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OPEC+ 논란은 양국 관계에 나타난 세 가지 중요한 변화를 가리킨다. 이는 단순히 지도자의 성격 이상의 것이며 지도자의 행동이나 그에 대한 반응 같은 것보다 더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화다.

첫째, 글로벌 세력균형 판도가 바뀌었다. 국제질서가 다극화되면서 미국의 상대적 영향력은 약해졌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견국이 단 하나의 강대국에 '올인'할 가능성은 낮아졌고 여러 강대국에 '분산투자'를 시도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둘째, 기후변화가 전 세계의 화석연료 탈피를 재촉하는 상황에서 사우디는 더 늦기 전에 자국의 원유 매장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사우디의 석유 생산과 가격 책정에서 이런 압박감의 영향을 볼 수 있다. 셋째, 미국 정치에서 중요한 사안이 으레 그렇듯 미국-사우디 관계 역시 미국의 양대 정당 사이에서 정당의 노선에 따라 양극화가 심각해졌다. 여기에는 사우디 스스로가 공화당 선호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미국의 외교정책이 인권을 중시하고 화석연료를 기피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미국-사우디 관계의 퇴조는 전혀 문제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출범 시작때는 기꺼이 사우디와 거리를 두었던 바이든 행정부라 해도 세계 최대 석유수출국과 협력관계를 설정할 필요성을 곧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아무리 청정에너지에 열의가 있더라도, 석유는 그 방향으로 가는 전환과정 동안에는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미국이 아무리 중동에서 발을 빼고 싶더라도, 미국 정부로서는 발길을 붙드는 지정학적 할 일들을 이 지역에 가지고 있다. 즉 이란의 핵무장을 막고, 성전을 표방한 테러 활동이 다시 득세하지 못하게 하며, 유럽에 대한 난민 압박을 줄이기 위해 이 지역의 안정을 유지하며,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일 등등이다. 석유와 중동지역이 미국 국익에 조금이라도 중요성을 띠는 한, 사우디와의 협력관계 유지는 필수적이다.


그런 관계 유지의 첫걸음은 그 관계의 변화를 인식하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대전략 사안마다 자동으로 미국 편에 섰던 시절은 지났다. 지금 사우디에게 중국과 러시아는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그것은 사우디가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과 적대하리라는 뜻은 아니다. 단지 사우디가 사안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접근하리라는 뜻이다. 그것은 미국이 개방적이고 조언자 같은 태도를 취하며, 글로벌 사안에서 양국이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설득할 대화채널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우디를 멀리하는 것은 사우디를 미국 편으로 이끄는 방법이 못 된다.

중동지역의 중요한 사안들에서 미국과 사우디는 이해관계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종래 양국관계의 걸림돌이던 미국-이스라엘 관계는 더 이상 방해물이 되지 않고 있는데, 사우디-이스라엘이 서로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아직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2020년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가 맺은 협정. 시아파-이란의 압박을 우려한 아랍에미리트가 전통적으로 아랍의 적인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결정한 산물로, 비슷한 처지인 바레인도 뒤따라 가입했다. 유대인과 아랍인의 공동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의 이름을 땄다 --역주)'을 맺고 바레인, 모로코, 수단, 아랍에미리트의 뒤를 따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할 준비는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협력하려는 뜻은 점점 키워가고 있다.

사우디와의 긴장을 조성하는 또 다른 이슈는 지금은 갑자기 수그러든 모습인데, 미국이 외교적 교섭을 통해 이란의 핵개발을 억제하려 했을 때 불거진 문제이다. 당시 사우디는 미국이 이란에 여러가지를 양보하고 이것이 이란의 역내 영향력을 굳힐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2018년에 트럼프가 전격 탈퇴한 이란 핵합의를 되살리려는 그 어떤 노력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에 미국은 이란의 핵보유를 억제 또는 예방하면서 그 지역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을 제한 또는 봉쇄할 새로운 정책을 모색해야만 하게 되었다. 사우디의 이해관계도 이와 일치한다.


비록 오늘날은 테러 문제가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꼽히지 않지만, 미국은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IS) 등의 집단에서 나타나는 폭력적인 이슬람 극단주의 혁명 사상 살라피 지하디즘(Salafi jihadism)의 재부상을 예방해야 한다는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MBS 치하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지역의 그런 집단에 맞서왔을 뿐만 아니라 자국 내 살라피 교단의 영향력을 감소시켰다. 사우디가 보다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이슬람 해석을 후원할 때, 살라피 지하디즘의 매력은 반감될 것이다.

국제 유가에 대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아직 중요한 쪽에서 일치하고 있다. 그들 모두 미국 달러화의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게 이익인 것이다. 사우디는 석유를 달러로 판매하고 있고, 따라서 석유 소비국들이 필요한 에너지를 구입하려면 달러를 보유하고 있어야 하므로 달러의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을 뒷받침해준다. 이란, 베네수엘라, 러시아 같은 미국에 비우호적인 산유국들은 가끔 다른 통화로 석유 거래를 추진한다. 사우디는 매번 그런 거래 제안을 거부했는데, 달러 중심체제에 금이 가는 만큼 사우디가 보유하고 있는 달러 표시 자산들의 가치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 시장의 사우디 금융자산(대량의 미국 국채와 미국 기업들에 투입한 투자 등)의 막대한 규모를 생각할 때, 심각한 문제다.

마지막으로, 미국과 사우디는 군사 및 정보 사안에 대해 계속해서 협력해 나갈 공동 이해관계가 있다. 사우디의 경우, 중국도 러시아도 미국이 제공할 만한 수준의 안보 협력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1990~91년의 걸프전에서 나타난 것처럼, 오직 미국만이 페르시아만 지역에 막강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 역시 그런 협력에서 이익을 볼 수 있다. 사우디의 무기 구입은 미국 무기 생산의 단위당 비용을 줄여주며, 두 나라의 군대를 연계시킨다. 그리하여 장기적 협력관계를 양성한다. 이란과의 핵협상이 실패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미국과 이란의 대립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군사적 우발사태에 있어서 사우디와의 협력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효율성을 높일 것이며, 따라서 그 자체가 이란에 대한 억제력이 된다.

글로벌 세력균형 판도를 뒤집거나, 사우디가 석유에서 빨리 자금을 뽑아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그러나 미국과 사우디 양국은 각자가 상대방의 국내정치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꾼다면 양국 관계를 다시 강화시킬 수 있다. 사우디는 미국의 양당 중 하나는 자국을 적대하며 다른 하나는 자국과 한 편이라는 스스로에 해가 되는 생각을 버려야만 한다. 한쪽 당을 돕기 위해 미국 정치에 영향을 주려는 노력은 양당체제라는 구도가 있는 한 장기적으론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야당이 언젠가는 여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미국 민주당 수뇌부에게 사우디 정부가 공화당만이 아니라 미국 자체와 좋은 관계를 추구하려 한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그것은 일단 2024년의 정권복귀를 도와달라는(간접적인 자금지원이나 바이든 행정부를 약화시키는 정책적 행보를 통해서) 트럼프측의 요청을 외면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는 또한 사우디가 자국을 비판하는 워싱턴의 민주당 사람들과 대화할 필요성도 제기한다. 이 민주당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우디가 미국 국내정치에 개입할지 모른다는 그들의 우려는 불식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경우, 민주당은 MBS가 십중팔구 사우디의 다음 왕이 될 것이며 앞으로 오래 통치하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를 고립시키거나 그를 제거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이는 인권옹호자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 외교관들과 관리들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주석,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대표나 그 밖에 자국민이나 여타 사람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정부들의 대표들과 교섭할 수 있다면, MBS를 상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사실 새로운 글로벌 구도에서 미국은 사우디와 더 많이 만나야 하며, 이 왕국이 여러 사안에서 미국의 시각에 동조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앤터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사우디를 단 한 번, 2022년 7월 바이든의 사우디 순방 수행차 방문했을 뿐이다. 미국-사우디의 전략 회담은 2년 동안 열리지 못하고 있다. 사우디는 이런 일들을 지켜보고 있다.

미국과 사우디 사이의 지속적 협력을 이루는 요소들은 아직 건재하다. 그러나 두 나라는 각자의 비현실적인 꿈, 즉 상대방의 국내정치 판도를 뒤바꾸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망상을 접어야만 한다. 양측 모두 서로를 있는 그대로, 즉 각자의 바람대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거래에 나서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이 글은 국제시사·문예 버티컬 PADO의 '위기의 사우디-미국 관계, 어떻게 살릴까'를 요약한 것입니다. PADO는 통찰과 깊이가 담긴 롱리드(long read) 스토리와 문예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창조적 기풍을 자극하고, 급변하는 세상의 조망을 돕는 작은 선물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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