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히 선천 근디스트로피, 희귀난치성 근육병입니다."
귀를 막아도 다 들렸다. 아이는 자신의 병을 알게 됐다. 엄마·아빠에게 "왜 이리 늦게 왔느냐"고 하던 의사 말도 들었다. 못 들은척 연기를 했다. 무슨 병인지도 실은 잘 몰랐다. 그저 희귀한 병인가보다, 그정도만 알았다.
두 다릴 모두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몇 달은 학교에 갈 수 없게 됐다. 어린 마음에 솔직히 말해 좋았단다. 공부를 잠시 안 해도 된단 생각에. 아이라서 아직 모르는 게 많았다. 실은 그 수술이 무척 아프고 힘들단 것도, 그걸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세 번 해야한단 것도. 그래서 공부를 하기 힘든 기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단 것까지.
그 아이가 자라 올해 대학에 간다. 23학번 새내기 신선아씨(21)다. 주위 사람의 좋은 마음 덕분에 잘 자란만큼, 오롯이 더 멋있어져서 힘든 아이를 돕겠단 꿈도 생겼다. 근육이 약하고, 그러니 무거운 걸 들기 힘들고, 걸음도 조금 느리다. 폐활량도 다른 이의 30% 정도라 호흡재활도 해야 한다. 어쩌면 남들과 조금은 다를 수 있다.
우린 실은 모두가 다 다르니까. 또 누구나 우연히 그리 될 수 있으니까. 특별한 인간승리라고 쓴 기록이 아니다. 타인의 삶에서 함부로 위로 받으라고 쓴 것도 아니다. 신씨는 평범한 대학생 새내기다. 그가 대학 입학까지 공부해온 이 과정이 더욱 평범해져야 한다고 남기는 글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 사회가 뭘 해야할지, 생각해보잔 장(場)을 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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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부터 고1까지…4년의 '공백'━
중학교 3년은 학교에 못 갔다. '꿈사랑학교'로 다녔다. 건강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화상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원격 수업이 으레 그렇듯, 신씨도 집중하기 힘들었단다. 그는 "처음엔 열심히 들어보려 하다가 점점 딴짓하고, 고1 때까진 거의 공부를 안 했다시피 했다"고 웃으며 털어놓았다. 학업 공백이 4년 정도는 생긴 셈이었다.
호흡 근육도 약해진단 걸 알아서, 2017년부터는 호흡 재활 치료도 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서 지원하는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 재활 센터서 치료를 받았다. 희귀질환자 중 아동청소년은 2942명(2020년 기준)인데, 병원·시설이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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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 때 돌아간 학교, 3개월만에 또 '수술'…"솔직히 도망치고 싶었다"━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로도 적응하기 힘든 게 있었다. 병 때문에 잘 챙기지 못했던 학업이었다. 단단히 맘 먹고 잘해보려 애썼다. 코로나19로 줌 수업을 할 땐, 다른 친구들이 화면을 끌 때도 항상 켜놓고 들었다. 수업을 잘 들으려 강제성을 부여하려던 거였다. "그렇게 하니 수업 집중도 잘 되고, 딴 짓도 안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쉽지 않았다. 뭘 복습해야 할지, 어떤 게 시험에 나올지, 어떻게 공부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단다. 첫 시험을 봤다. 예상대로 중간고사 성적은 참담했다.
"엄마가 특히 충격 받았어요. 초등학교 땐 공부가 뒤쳐지던 편이 아니었어서, 제가 공부 잘하는 줄 알고 있었거든요(웃음). 그런데 시험 보니 완전히 하위권이더라고요. 저도 충격 받았지요."
엎친데 덮치는 일까지 생겼다. 학교에 다닌지 3개월, 막 적응할 무렵에 다리가 아파왔다. 뼈가 부러지는 게 아닌가 싶은 통증이었다. 병원에서 수술을 또 해야된단 말을 들었다. 신씨는 "솔직히 시험도 그렇고, 학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어 도망치고 싶었다"며 "다리 수술이란 핑계가 생겨서, 그런 마음도 좀 있었다"고 했다. 한쪽 다리 수술을 그리 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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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돕고 싶단 '꿈' 생겨…함께해준 고마운 선생님과 친구들━
"뭘 해도 안 돼, 할 줄 아는 게 없어. 그렇게 엄청 부정적으로 파고들게 되더라고요. 대학 어디를 지원해도 못 붙는단 게 확실히 보이기도 했고요. 재수하겠다고 선생님께 얘기한 것도, 그래서였고요. 두려웠어요."
고3을 앞두고 신씨는 자존감이 이리 낮아져 있었다. 그때 도움을 준 게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었다. 학교 다니기 힘들다, 투정부리던 날이었다. 선생님이 신씨에게 말했다. "선아야, 너 4년 동안 학교 안 다녔잖아. 되게 잘하고 있는 거야, 지금 그 정도만 해도." 그 진심의 말은 좋은 기운을 가득 품고 있었다. 다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었단다.
좋은 친구들도 곁에 있었다. 2학년 2학기 때 수술한 뒤 시험보러 학교에 왔을 때였다. 친구들이 말했다.
"네가 있었던 3개월 덕분에, 우리 반 분위기 엄청 좋았었어. 내년에 꼭 만나자."
고3이 된 뒤 친한 친구들과 다른 반이 되었다. 그래도 초반엔 계속 신씨가 있는 교실로 찾아와 불렀단다. 그러니 친구였다.
그 무렵엔 달라진 게 하나 있었다. 꿈이 생긴 거였다. 신씨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힘들 때마다 그랬다"며 "나도 저런 분들처럼 남들에게 도움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사회복지사, 특히 아이들을 돕는 이가 되고 싶었단다. 특히 아동학대로 피해가 큰 아이들을 집에서 빼내고, 행복하게 만드는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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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잠 깨우며 새벽까지 공부해 '합격'…"희귀병 가진 친구들 위한 입시정보 많아졌으면"━
생각부터 바꿨다. "목표하는 게 있잖아요. 그럴 거면 실패해도 나중에 생각하자, 뭐라도 되자, 그렇게 맘 먹었어요. 차근차근 쌓아보기로요. 오늘은 이만큼만 하자, 다음엔 이정도 시험을 보고, 그 다음엔 이정도 발표하고, 목표를 정하니 그만큼은 되더라고요."
공부 시간도 늘렸다. 실은 신씨에겐 쉽지 않았다. 근육병 때문에 오래 앉아 있으면 온몸이 엄청 아파서였다. 체력도 부쳤다. 진짜 심할 땐 학교를 몇 번 빠지기도 했다.
담임 선생님은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봐줬다. '장애인 입학전형'을 보는 대학을 찾아봐주고, 입학처에서 상담 받을 수 있게 도와줬다. 그는 수업시간에 신씨에게 매번 "선아, 이거 뭐야?"하며 이해했는지 물어봐주기도 했다.
신씨는 그처럼 희귀병을 가진 이들이, 공부를 꾸준히 할 수 있었음 좋겠다고 했다. "저처럼 근육병이 있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좀 더 많은 정보를 얻었음 싶고, 기회가 있단 걸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특히 수시 전형 등에서 정보가 많이 부족했다고. 그는 "카페에도 몇년 전 얘기만 있고, 선생님도 장애인 전형을 잘 모르셨다"며 "이미 있는 건 홍보하고 없는 건 보완해서, 좀 더 편하게 입시에 도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희귀질환을 가진 이들이 겪는 심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남들과 다른 길을 한단 불안감이 있으니, 상담을 해줘서 자신감을 갖고 공부할 수 있게 해줬으면 싶다"고 했다. 그가 힘들 때 지탱해주었던 많은 사람들처럼.
그런 이들에게, 끝으로 고마움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좋은 사람들의 좋은 점이 모이고 모여서, 그게 지금의 저를 이룬 게 아닐까 싶어요. 곁에 있던 선생님들, 친구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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