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보조원이 전세사기 원흉?" 채용상한제 24년 만에 부활한다

머니투데이 이소은 기자, 배규민 기자 | 2023.02.28 05:00
(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사진은 이날 서울시내 부동산 중개업소 밀집지역의 모습. 2019.7.29/뉴스1

#안산에 사는 70대 A씨는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목돈으로 오피스텔을 분양 받았다. 이후 자신을 B실장이라고 소개하는 중개사를 통해 세입자를 들였다. 그러나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려던 그의 꿈은 산산히 부서졌다. B씨가 A씨에게는 월세계약을, 세입자에게는 전세계약을 맺는 '이중계약' 방식으로 보증금 차액을 가로챘기 때문. 심지어 B씨는 공인중개 자격증도 없는 '중개보조원'이었다.

부동산 중개보조원 채용상한제가 1999년 폐지 이후 24년 만에 부활한다. 중개보조원 수를 중개사 1인당 최대 5인까지로 제한한다. '빌라왕 사태' 등 최근 불거진 전세사기 피해에 중개보조원이 적극 가담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마련된 조치다.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공인중개사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에는 그간 제한없이 채용하던 중개보조원을 개업공인중개사와 소속공인중개사를 합한 수의 5배 이하로 고용토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중개보조원 채용상한제는 1984년 부동산중개업법과 함께 시행이 됐다가 1999년 부동산 규제 완화를 이유로 폐지됐다. 24년이 지나 최근 빌라왕 등 전세사기 사례에 일부 중개보조원이 적극 가담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재조명 받는다.

중개보조원은 일정시간의 교육 이수 외에 특별한 자격 요건이 없고 공인중개사와 달리 중개사고 등을 일으켰을때 책임 부담이 약하다. 일부 중개사들은 이를 악용해 다수의 중개보조원을 고용하고 소비자를 대상으로 영업을 벌이도록 한다. 중개사 1인당 수십명, 많게는 수백명씩 중개보조원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곳들은 대부분 보조원이 데려온 고객이 계약서를 쓰면 중개수수료의 일부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협회 관계자는 "보조원들끼리 경쟁 체제에 내몰릴 수 밖에 없는 구조인데다, 단순히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접근하다보니 소비자 재산보호·양질의 중개서비스 등은 당연히 뒷전이 된다"며 "이런 문제 때문에 과실로 인한 거래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며 그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사례에 나온 B씨는 2019년 경기도 안산시에서 6년간 120여명의 세입자들과 전세계약을 맺고 집주인에게는 월세로 계약했다고 속이는 이중계약 수법을 통해 전세보증금 총 65억원을 횡령해 구속됐다. 중개보조원으로 근무한 그는 위조한 위임장을 통해 허위계약서로 임차인과 전세계약을 체결한 뒤 집주인에게 월세계약을 맺었다고 속여 보증금을 가로챘다. 임차인 대부분이 위조한 위임장을 믿고 집주인의 계좌가 아닌 중개사 계좌로 보증금을 이체하며 B씨의 먹잇감이 됐다.

이밖에도 피해 사례는 다양하다. 1500여명의 피해자와 1600여억원의 추산 피해액을 남긴 '빌라왕' 사건의 주범도 과거 여러 중개사무소를 통해 중개보조원으로 일하며 전세사기 수법을 준비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에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임차인을 상대로 자산가치를 속이는 방법으로 전세보증금 9억7000만원 등 총 20억5000만원을 편취한 중개보조원이 기소됐다.

공인중개사 1인당 중개보조원수를 제한하는 법이 통과되면 이같은 문제를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게 정부의 기대다. 공인중개사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중개보조원을 채용하도록 하면 감시망이 촘촘히 보강돼 관리·감독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도 지금보다 명확해질 수 있다.

이번 개정안에는 중개보조원이 현장안내 등 중개업무를 보조하는 경우 중개의뢰인에게 본인이 중개보조원이라는 사실을 알리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A씨의 사례처럼 지금까지는 중개보조원들이 '실장'이나 '이사' 등 고객이 오해할 만한 직함을 명함에 찍어 혼선을 부추겨왔다. 법이 통과되면 중개의뢰인이 상대가 중개보조인임을 인식하고 계약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 관련 피해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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