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수익성 세계 1위 로펌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23.02.22 02:36
김화진 /사진=김화진
뉴욕의 CBS 빌딩에 자리잡고 있는 로펌 왁텔(Wachtell, Lipton, Rosen & Katz)의 마틴 립턴(Martin Lipton, 91) 변호사는 별명이 '경영권 방어의 학장'(Dean of Takeover Defense)이다. 전성기에 미국 대기업 경영자들은 회사가 공격을 받으면 가장 먼저 립턴 변호사에게 전화를 연결했다.

1979년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아멕스)가 사업다각화를 위해 유서 깊은 출판사 맥그로-힐(McGraw-Hill)을 적대적으로 인수하려 했다. 8억3000만달러로 당시 가장 큰 딜 중 하나였다. 그러자 맥그로 회장은 약속도 없이 왁텔로 달려가 립턴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당시 립턴은 일이 너무 많아 수임할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맥그로 회장은 립턴이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우리 집안에서 4대째 회사를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내가 회사를 맡아 있을 때 회사가 남의 손에 넘어간다는 생각은 견디기 힘듭니다." 립턴은 사건을 맡았고 아멕스로부터 맥그로-힐의 경영권을 방어해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82년에 립턴은 신탁과 함께 20세기 2대 법률 발명품이라 불리는 포이즌 필을 고안해 냈다.

립턴의 도움으로 부친과 함께 경영권을 방어할 때 30세였던 맥그로-힐의 5대 오너는 2015년까지 22년 동안 회사를 맡아 경영했는데 가족경영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끝났다. 2015년에 회사의 신용평가 자회사 S&P가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허위로 MBS와 CDO 신용평가를 했다는 혐의로 법무부의 제소를 당했고 약 14억달러에 화해했다. 이사회에 남았던 마지막 가족 구성원도 회사를 떠났고 맥그로-힐 파이낸셜이던 회사 이름도 S&P 글로벌로 바뀌면서 가족 이름도 지워졌다.

왁텔은 1965년에 폴란드-헝가리계 유대인 송무변호사 허버트 왁텔(90) 주도로 뉴욕대 로스쿨 동창들이 설립한 펌이다. 사무실 건물을 마련하기 위해 둘러본 빌딩의 자판기 앞에서 4명의 파트너가 신뢰의 악수만으로 펌을 출범했다. 지금도 왁텔에는 파트너십 계약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변호사 수 300명이 채 안 되는 소형 펌인데 회사법과 M&A 분야에서는 최상위로 평가된다. 요즘 화제인 챗GPT도 최고 로펌 중 하나로 꼽았다.


왁텔은 고객을 찾아다니는 마케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맥그로-힐처럼 명성과 실력으로 자신들을 찾는 고객에게 최선을 다한다. 2020년에 85명 파트너당 순익 750만달러를 기록해 1위에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법률회사다. 수많은 대형 M&A에 참여했고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에서 트위터를 자문한 건을 포함해 2022년 자문 M&A는 64건에 총액 3340억달러로 심슨태처에 이은 2위였다.

왁텔은 윌리엄 앨런, 리오 스트라인 같은 델라웨어주 법원의 전설적인 법관들을 은퇴 후 고문으로 영입한 펌이기도 하다. 립턴, 앨런, 스트라인 세 사람은 실무가지만 미국에서는 1급 회사법 이론가들로 인정받는다. 유수의 로 레뷰에 학술 논문을 다수 발표했고 영향력이 크다. 립턴은 17년 동안 뉴욕대학교 이사회 의장도 지냈고 미국학술원 정회원이기도 하다.

변호사는 남의 인생을 산다는 말이 있다. 폴란드계 유대인인 립턴은 회고록을 여러 차례 권유받았는데 쓰려고 보면 자신의 이야기는 없고 고객들의 이야기만 떠올라서 그만 접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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