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양극화의 주범 '포퓰리즘', 국민 위한다며 국민 이용"

머니투데이 조철희 기자, 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 2023.02.22 10:52

[자유란 무엇인가] 글로벌 석학 인터뷰④ - 나디아 어비네이티 美 컬럼비아대 교수

편집자주 | 윤석열 정부가 국정철학으로 '자유'를 제시했지만 사회 저변에선 진지한 고민과 토론이 드물다. 반면 자유 사상의 발상지인 서구에선 자유에 대한 현재적 검토와 새로운 모색이 끊이질 않는다. 머니투데이는 자유주의에 대한 글로벌 석학들과의 심층 인터뷰 기사를 지난해 11월부터 연재했다. 자유의 본질을 보라고 한 엘리자베스 앵커 조지워싱턴대 교수, '팬덤 정치'를 비판한 미국 진보 활동가 스코티 헨드릭스, '공화주의'의 세계적 연구자 모리치오 비롤리 프린스턴대 명예교수에 이어 포퓰리즘이 자유민주주의에 미치는 악영향을 지적한 나디아 어비네이티 컬럼비아대 교수를 끝으로 연재를 마친다. (①美 진보지식인의 일침 "이태원 명단 공개, 정의롭지 않아" ②"폭군될 위험"…고대민주주의 땐 추방됐던 '팬덤 정치인' ③'공화주의' 석학 비롤리 교수 "법 위의 특권에 시민의 자유는 종말" ④"정치 양극화의 주범 '포퓰리즘', 국민 위한다며 국민 이용")




포퓰리즘(populism)은 '타협'의 정치를 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선택한 전략입니다. 포퓰리즘 정치인은 기득권층이 사회 분열을 일으킨다고 주장하며 '국민통합'을 외칩니다. 그러나 이 국민통합이라는 미명 아래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원주의'(pluralism)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저작 <Me The People: How Populism Transforms Democracy> 등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포퓰리즘 문제에 대해 깊이 연구해 온 이탈리아 출신 정치학자 나디아 어비네이티(Nadia Urbinati)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교수(사진)의 포퓰리즘 정치에 대한 일갈이다.

근래의 한국 정치 역시 포퓰리즘 현상을 빼놓고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2016~2017년 촛불운동과 대통령 탄핵은 한국 정치가 기존의 극우 포퓰리즘을 극복한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얻었지만 이후 곧바로 다시 포퓰리즘의 멍에에 메였다. 극단적 '정치 팬덤'에 정권이 끌려다녔고, 그 결과 자유민주주의의 규범은 침식되고 정치 양극화가 정점으로 치달았다.

전세계적인 현상인 포퓰리즘 정치가 자유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정당, 의회, 언론과 같은 대의적 제도를 무시하는 포퓰리즘은 자유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한국의 경우에도 그랬지만 제왕적 대통령제가 포퓰리즘과 만나면 '전체주의적 민주주의'의 위험을 양산한다.

어비네이티 교수는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포퓰리즘 정치인은 정당, 의회, 언론 같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매개체와 같은 제도들을 국민과 자신 사이를 떨어뜨려 놓는 장애물로 여기고 오히려 장악하려 한다"며 "국민을 대신하는 정당이나 제도를 무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대의제, 입헌정치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포퓰리즘 정치는 정치 지도자와 이른바 '참국민'(올바른 국민, good·right people)으로 정의된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기초로 한 새로운 형태의 대의정치다. 포퓰리즘 정치는 이 참국민이 아닌 사람들의 이익은 배제하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 입헌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권위주의의 길로 간다.

어비네이티 교수는 "포퓰리즘 정치인은 자신은 기득권층이 되지 않을 것이며 언제나 국민의 한 사람이 될 것임을 늘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정권을 잡더라도 계속해서 선동적"이라며 "그러면 정치는 악화되고, 선동이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식이 돼 정당한 정치적 경쟁이나 숙의(熟議)는 격하된다"고 지적했다.

포퓰리즘은 어비네이티 교수의 말대로 '파괴적인 정치 현상'(disruptive political phenomenon)이다. 한국 정치도 이 파괴적 현상을 고스란히 겪고 있지만 그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는 못한 듯하다. 자유민주주의의 실현과 발전을 위해서도 포퓰리즘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다. 이 분야 연구 권위자인 어비네이티 교수와 함께 포퓰리즘이 자유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봤다.




음모론과 결부될 수밖에 없는 포퓰리즘, 자유민주주의에 악영향


-포퓰리즘은 자유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포퓰리즘은 '타협'의 정치를 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선택한 전략입니다. 포퓰리즘 정치인은 기득권층이 사회 분열을 일으킨다고 주장하며 '국민통합'을 외칩니다. 그러면서 이 국민통합이라는 미명 아래 자유민주주의 제도의 근간인 '정당 다원주의'(party pluralism)를 비판하고 훼손합니다. 포퓰리즘 정치인은 기득권층을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말하며 국민통합을 민주주의를 재정복하는 전략으로 삼습니다.

포퓰리즘 정치인의 레토릭은 예컨대 '참국민 vs 기득권층'처럼 이분법적입니다.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포퓰리즘 정치인은 '국민'을 자기 멋대로 정의합니다. 전체 국민이 아니라 자칭 '참국민'으로서 기득권층을 미워하는 사람들만 해당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 태도는 매우 편협한 것이며 다원주의를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거대 기득권층이 언론 등 제도를 조작하고 있다는 등 이분법적 정치의 포퓰리즘은 음모론과 결부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또 포퓰리즘 정치인은 정권을 잡더라도 갈등·위기 상태를 유지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해 포퓰리즘 정권의 통치는 영구적으로 선거운동 형태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포퓰리즘 정치인은 자신은 기득권층이 되지 않을 것이며 언제나 국민의 한 사람이 될 것임을 늘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정권을 잡더라도 계속 선동적이어야 합니다. 영구적 선거운동인 것이죠. 그러면 정치는 악화되고, 선동이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식이 됩니다. 정당한 정치적 경쟁이나 숙의(熟議)는 격하됩니다.

포퓰리즘 정치인은 '참국민'의 세상을 만들겠다면서 자신이 하는 일은 언제나 옳다고 말합니다. 만약 일이 잘못되면 그건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기득권층이 결집해 방해한 탓이라고 합니다. 아주 손쉬운 선동이죠. 하지만 이것은 결국 자유민주주의를 악화시키는 급진적 다수결주의입니다.

-포퓰리즘 정치는 전세계적인 현상인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때 포퓰리즘 정치인이 이끄는 나라들에서 포퓰리즘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만났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지요?

▶팬데믹 때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나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 브라질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헝가리 총리 오르반 빅토르, 이탈리아 부총리 마테오 살비니와 같은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팬데믹은 국가가 개입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국가는 개인의 삶을 통제하거나 개입하지 않겠다", "개인이 원하는대로 하라", "국가 봉쇄조치를 하지 않겠다"라며 신자유주의적인 노선을 택했습니다.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일이라도 국가에 개입을 요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트럼프나 보우소나루는 팬데믹에 대한 국가 개입을 '권위주의'(authoritarian)로 규정했습니다. 그러면서 백신 접종 등 사회적인 대응에 개입한 유럽 국가들을 '사회주의'(socialism)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런 게 바로 신자유주의입니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다른 사람은 신경쓰지 않고 하고 싶은대로 하는, 급진적인 개인주의적 자유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익을 위해선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생각이신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공익이 달성된다는 생각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공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우선 개인의 자유란 무엇인지, 자유의 제한은 어떤 것인지, 국가는 언제 어떤 경우에 개인의 자유에 간섭할 수 있는지를 잘 정의해야 합니다. 개인의 자유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조건이지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도 코로나19 팬데믹 때 정부의 개입 정책에 대해 항상 찬반 양론이 팽팽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한국은 진영 갈등, 정치 양극화가 심각해 공익과 개인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라든가 숙의 과정 없이 각 진영의 이해에 따라 정책에 대한 판단이 갈립니다. 의회는 합의를 잘 이루지 못하고, 거리로 뛰쳐나가는 국민들이 적지 않습니다.

▶의회 안팎에서 합의가 꼭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민들도 침묵할 의무는 없죠. 실망한 사람들의 거리시위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일부이니까요. 또 사람들이 의회정치에 실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선출된 의원들이 권력과 특혜를 축적하며 오랫동안 자리를 누린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포퓰리즘 정치가 이런 실망감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논쟁적인 특정 정책에 대해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등 국민과 직접 얘기해 해결하겠다는 식으로 문제를 빨리 처리하려 드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자유주의와 다원주의를 포기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매우 나쁜 것입니다.

(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워싱턴 의사당을 점거하고 있다. (C) AFP=뉴스1



정당, 의회, 언론 '민주주의 제도'를 기득권이라 비판하고 장악하려는 포퓰리즘 정치


-한국의 포퓰리즘 정치가 국민들의 실망감을 이용하는 것은 명백해 보입니다.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정당, 의회, 언론과 같은 제도가 문제여서 국민들이 실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정치나 제도의 문제를 국민들이 기득권층의 문제로 오인하도록 만든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즉, 제도와 기득권을 하나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그것은 정말 위험한 것입니다. 트럼프나 과거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치인이었던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페론을 떠올려 보십쇼.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제도가 국민의 힘을 제한하고 기득권층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형식이나 수단이라고 주장합니다. 권력분산이나 여러 절차적 제도로 국민의 힘을 약화시키려 한다는 것입니다. 포퓰리즘 정치인은 국민들이 제도와 기득권을 동일시하게 만들면서 제도를 비판·공격하는 동시에 기득권에 대항하기 위해 제도를 적합하게 만들겠다고 외칩니다.

포퓰리즘 권력은 국민이 민주주의를 통해 갖게 된 것을 빼앗습니다. 그러고 보면 포퓰리즘 정치인들의 '국민에게 권력을'(Power to the people)이란 말도 원칙이 아닌 레토릭일 뿐입니다. 포퓰리즘 정치인은 정당, 의회, 언론 등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매개체와 같은 제도들을 국민과 자신 사이를 떨어뜨려 놓는 장애물로 여깁니다. 오히려 제도를 장악하려 합니다. 그러나 국민을 대신하는 정당이나 제도를 무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대의제, 입헌정치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사실 포퓰리즘은 대의제를 제대로 구현해야 하는 것인데, 현실의 포퓰리즘 정치는 대의민주주의와 심각한 모순을 보입니다. 포퓰리즘이 제도를 장악하면 위험합니다. 국민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국민과 같은 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어느 누군가에 의해서 국가 제도가 전유되는 것은 위험합니다.

포퓰리즘 정치인은 말로는 자신은 국민의 소유라면서 실제로는 제도를 전유하려 합니다. 자신도 평범한 국민이라고, 항상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면서 국민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도는 국민의 것이니까, 국민을 대변하는 자신이 제도를 소유할 수 있다 여기고, 국민에 반하는 기득권층을 상대로 사용하겠다며 제도를 전용합니다.

'나는 당신과 같다', '국민과 하나가 되겠다'는 레토릭은 대의제와 같은 제도를 위협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국민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특정 지도자에 의해 정치가 수직계열화 될 수 있는데 이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악화시키는 지름길입니다.

-최근 한국 포퓰리즘 정치의 상징적 사례는 '팬덤 정치'입니다. 극단적 정치 팬덤에 의해 자유민주주의의 규범이 침식되고, 정치 양극화가 정점에 치달았다는 지적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포퓰리즘에 매우 쉽게 노출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기보다 정치인의 주장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청중 민주주의'(audience democracy)에선, 정치인들은 항상 팬을 찾습니다. 단순 유권자가 아닌 추종자를 원하죠. 이런 정치인들은 미디어를 통해 추종자들과의 정서적 동일시를 추구합니다. 현대 민주주의에 광범위하게 퍼진 현상입니다.

대중적인 여론 형성에 있어서 이미 전통적 정당은 소셜미디어로 대체됐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에 포퓰리즘이 출현하기가 쉬운 한 이유입니다. 사실 대의민주주의는 조직화된 정당이 선거를 이끌고 정견(政見)을 만드는데 참여하면서 탄생했지만 요즘 대중들은 미디어에 의해 생각이 좌지우지됩니다.

현재의 대의제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역기능의 문제가 많습니다. 책임은 없고 특권만 가득 쥔, 일반 국민과는 다른 권력층만 양산해 국민들은 매우 불만스럽습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이 정당정치와 의회정치의 작동 방식에 불만을 갖고, 포퓰리즘 정치와 심지어 '미친'(crazy) 정치인까지도 추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포퓰리즘은 손쉽게 선과 악의 대결로 치환될 수 있는 이슈만 부각시키고 복잡다단한 구조적 문제들은 논의에서 배제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정치적 상대를 악마화하며 진영논리만 증폭시켜 정치적 갈등과 양극화를 극단까지 몰고 갑니다.

▶그렇다고 포퓰리즘이 파시즘은 아닙니다. 포퓰리즘은 그러나 헌법과 체제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2021년 1월 16일 미국 의회 점거 폭동을 떠올려 보십쇼. 트럼프 이전에는 포퓰리즘이 헌법의 틀 안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됐지만 이 사태는 포퓰리즘이 헌법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입헌민주정체(立憲民主政體)를 훼손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에 내재된 리스크, 그것도 영구적인 리스크입니다.

사실 민주주의는 지금 모든 곳에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싶지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진 않을 것입니다. 학자들도 민주주의의 가치를 깎아내리는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고 지지하기 위해 민주주의의 원리와 문제, 사회적 조건 등을 연구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영원할 것입니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입헌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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