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황금알 낳아 중국에 주는 거위

머니투데이 김진형 산업2부장 | 2023.02.20 04:00
# 1962년 김포공항 통관비행장에 '특정외래상품판매소'가 설치됐다. 우리나라 면세점 역사의 시작이다. 부침이 있기는 했지만 이후 50여년간 한국 면세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2019년 세계 면세점 시장에서 한국의 시장점유율은 25.6%였다. 2위(중국)부터 5위( UAE)까지의 점유율을 다 합한 것보다 큰 압도적 1위였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내 면세점은 드라마틱하게 고꾸라졌다. 국내 입국 여행객은 2021년 224만명으로 코로나 이전이던 2019년 대비 95% 급감했고 면세점 매출은 25조원에서 18조원으로 29%, 주요 5개사의 영업이익은 6638억원에서 830억원으로 83% 줄었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따냈던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스스로 반납하는 곳들이 잇따랐고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은 유찰을 거듭하며 공실로 남았다. 롤렉스, 샤넬, 루이뷔통 등 해외 유명브랜드들은 시내면세점에서 철수했다.

한국 면세점이 죽쑤는 사이 중국은 자국 면세시장 육성정책으로 글로벌 1위로 올라섰다. 2020년부터 글로벌 1위 면세점 타이틀은 '중국국영면세품그룹'(CDFG)이 갖고 있다.

# 전세계가 엔데믹 수순에 들어서면서 면세점의 암흑기는 끝나가고 있다. 면세점은 올해가 작년보다 좋을 것이 확실한 업종 중 하나다. 면세산업에 봄이 오고 있지만 혹독했던 겨울은 우리 면세산업의 허약한 속살을 그대로 드러냈다.

우리 면세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친 중국 의존이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도 유커(중국 관광객)와 다이궁(중국 보따리상)으로 대표되는 중국은 국내 면세점 총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했지만 코로나는 중국 의존을 더 심화시켰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외국인도, 외국으로 나가는 한국인도 없는 면세점에 '다이궁'은 거의 유일한 손님이었다. 국내 면세점 매출에서 다이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44%에서 2021년 82.6%로 배가 됐다.

다이궁은 '보따리상'이란 표현이 무색한 국내 면세시장의 수요독점세력이다. 국내 면세시장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과점하고 있지만 다이궁은 이들 대기업보다 협상력에서 우위에 있다. 다이궁은 리베이트를 받거나 상품할인 등을 통해 수익을 낸다. 이런 방식으로 면세업계가 다이궁에게 뜯기는(?) 돈이 면세 매출액의 최대 40%에 달한다.


# 다이궁에게 주는 과도한 송객수수료(현금 리베이트, 상품할인 등)는 십여년 전부터 국정감사의 단골손님이었다. 송객수수료를 제한하기 위한 법안도 수차례 발의됐다. 하지만 통과된 법률은 없다.

치솟은 송객수수료는 대기업들이 제살 파먹는 것을 알면서도 벌인 가격경쟁의 결과이기도 하다. 대기업들이 그렇게라도 장사하겠다는데 일반 국민들이 걱정해 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국부유출이란 관점에서 보면 그냥 방치할 일은 아니다. 다이궁에게 단물을 빼주느라 국내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혜택이 줄어든다는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

다행히 면세업을 대기업이 독점한 시장으로 보고 규제 중심으로 접근하던 정부가 지난해부터 관점을 전환하고 지원에 나서고 있다. 윤태식 관세청장은 "면세산업에 대한 인식을 높은 수준의 규제가 필요한 산업에서 적극적 육성이 필요한 세계적 경쟁 산업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인천공항도 면세점에서 받는 임대료를 정액에서 여행객수에 따라 변동되도록 바꾸기로 했다.

면세점은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다. 하지만 어렵게 낳은 황금알로 남 좋은 일 시키고 있는게 K-면세시장의 현실이다. 게다가 중국 CDFG는 이제 인천공항 면세점에 입점해 스스로 거위가 되려 하고 있다. 추락한 K-면세시장의 진정한 봄을 위해선 해야 할 숙제가 많다. 올해가 그 원년이다. 제대로 풀지 못한다면 면세업은 중국의 추격에 1위를 내준 또 하나의 산업으로 남을지 모른다.

김진형 산업2부장 /사진=인트라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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