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월급 비슷" 행시 1등의 파격 지원…'철밥통' 공식이 깨진다

머니투데이 세종=김훈남 기자 | 2023.02.14 16:00

[MT리포트]철밥통 공직사회, 성과주의로 깬다①

편집자주 | 윤석열 대통령이 꺼낸 우주항공청의 '연봉 10억 공무원' 이슈가 경직된 현재의 공직사회에 자극을 주고 있다. '철밥통'과 '노후보장' 같은 공식은 옛말이 되고 이제 공직사회는 민간과 인재잡기 경쟁, 서비스 경쟁을 해야할 상황에 직면했다.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공직사회를 진단하고 과거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능동적 공직사회로 변모할 방안을 찾아본다.

7일 세종 밀마루 전망대에서 바라본 정부세종청시를 비롯한 주변이 뿌옇게 보이고 있다. /사진=뉴스1

# SK그룹의 신에너지 솔루션 계열사 SK에코플랜트는 지난해 환경부 소속 과장급 직원 2명을 임원급으로 영입했다. 정책을 구상하고 만드는 중앙부처 과장급 공무원의 민간기업 이직을 두고 세종 관가는 술렁였다. 중앙부처의 한 국장급 인사는 "공무원은 평생 직업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라고 평했다. 과장급 인사는 "예전엔 공직생활 막바지에 다다른 국·실장급 인사가 민간으로 갔다면 이제 과장 전후부터 적극적으로 이직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공직사회의 '철밥통'에 구멍이 난다. 10년전 금이 가기 시작했다면 이젠 곳곳이 깨진다. '평생 직장' 개념도 흔들린다. 'MZ세대' 공무원을 중심으로 좋은 처우와 '워라밸'(일과 일상 생활의 균형), 전문성을 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더이상 '연금'이나 '안정성'만 바라보고 공직을 꿈꾸지 않는다. 정부가 최근 '연봉 10억원 공무원'을 앞세워 공직문화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이같은 공직사회 과도기에 '성과주의'를 이식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요직보다 워라밸·정책보다 전문성…'MZ' 공무원은요


지난해 5급 일반행정직 공채(행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한 사무관이 해양수산부를 지원해 화제가 됐다. 과거에는 '부처의 맏형' 기획재정부를 지원하거나 산업통상자원부 등 주요 경제 부처로 직행하는 게 행시 '수석'의 길이었다. 정부 청사의 세종 이전 후 서울에 근무지를 둔 감사원, 금융위원회, 여성가족부 등을 선호하는 흐름이 강해졌지만 행시 수석의 해수부 선택은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주요 중앙부처 대신 공정거래위원회나 국세청, 관세청, 통계청 같은 외청을 선호하는 행시 고득점자도 적잖다. 2021년에는 재경직 행시 수석과 차석이 동시에 공정위행을 택해 화제가 됐다. 2018년~2019년에는 재경직 행시 수석이 국세청에 자리를 잡았다. 공식처럼 행시 수석을 영입해온 기재부는 오히려 정원미달을 걱정해야할 정도로 위상이 하락했다고 한다.

단순히 '편한 근무처를 찾는다'는 이유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현상 이면에는 '전(全) 부처 동일임금 구조'의 성과 보상 체계가 자리잡고 있다.

예산이나 정책입안 과정에서 권한이 강하고 부처 위상이 높을수록 업무량이 많고 업무 강도도 강하다. 여기에 예전과 달리 부처가 정치권력에 휘둘리는데다 기재부 같은 곳은 승진적체 현상까지 있다. 업무 강도가 강하다고 받는 돈이 다른 것은 아니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월급은 비슷하다. '장관이 될 가능성'은 커녕 국·과장 승진마저 적체되는 지금의 공직사회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게 '행시 수석의 기재부 기피' 현상이란 얘기다.

또 거시적인 정책을 다루는 중앙부처와 달리 공정위나 국세청, 관세청 등은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 이들 조직에서 경쟁분야와 세무 등 업무 전문성을 익힌다면 민간에서 '제2의 직업'을 구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최근 몇년간 자본시장과 기업의 최우선 과제로 급부상한 탄소중립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분야에서도 환경부 등 담당분야의 정책을 다뤄본 공직자에 대한 인력 수요가 늘고 있다.

세종청사에서 근무 중인 국장급 공무원 A씨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를 설계한 환경부나 기업의 독과점과 결합 등 경쟁분야를 다루는 공정위 공무원에 대한 외부의 선호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민간에서 억대 연봉과 임원급 대우 등을 제시하면 지금의 공무원 처우로는 남으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폐쇄적인 공직사회의 '철밥통'이 깨져간다는 소리다.




때마침 '연봉 10억 공무원' 기대감…'성과 중시' 공직사회 첫발될까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공직자들과 대화하고 있다./사진제공=대통령실


공직사회의 '철밥통'이 깨지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한 '우주항공청' 설립에 관심이 쏠린다. 대통령실은 우주항공청에 공직자 신분으로 민간전문가를 채용하고 기존 공무원과 다른 보상체계를 적용할 예정이다. 해외 석학급 특급인재의 경우 연봉 10억원 이상으로 대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기존의 공직사회에서 볼 수 없는 성과주의 조직이 탄생하는 셈이다.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 연봉(2억4455만원)이 2억원대인 상황에서 연봉 10억원 공무원은 우주항공청 같은 특수한 경우에나 나올 수 있다.

다만 우주항공청을 시작으로 부처에 관계없이 직급과 호봉에 따라 보수를 받는 기존 공직사회의 보상체계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공직사회에 성과주의 보상 체계를 도입하면서 '박봉'이라는 오명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유연한 조직 운용이 가능하다는 것. 민간과의 인재잡기 경쟁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공직사회가 공직자의 민간 유출을 막고 민간에서 인재를 영입하려면 보수를 민간 수준에 맞춰야 한다"며 "전 부처 동일 임금체계를 깨고 부처별로 차등보수와 정원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부처별 총액 인건비를 정하고 조직운영은 부처마다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민간과 접촉이 많아 고연봉 인재가 필요한 부처는 정원을 줄여 직원의 인건비 수준을 올릴 수 있고 다양한 현장에서 많은 인력으로 승부해야하는 부처는 인당 보수를 줄이는 대신 채용을 늘릴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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