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아이돌' 송골매의 마지막 비행

머니투데이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 2023.01.27 12:35
사진제공=KBS


지난 1월 21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KBS 설 대기획 콘서트'의 주인공은 록 밴드 송골매였다. 이 무대는 나훈아, 심수봉, 임영웅이 출연한 자리로 모두가 인정하는 거장이나 모두가 아는 '핫'한 아티스트만이 설 수 있다. 송골매는 저 두 가지 기준에 모두 부합했다. 다양한 장르가 고루 사랑받았던 80년대에 그들은 누구보다 '핫'했고 40여 년 뒤 그들은 평가, 재평가를 거쳐 거장으로 우뚝 섰다.


항공대학교 캠퍼스 밴드 활주로에 이어 보컬과 드럼을 맡았던 배철수는 대학교 4학년 때 이응수(베이스), 지덕엽(기타), 이봉환(키보드)과 송골매 데뷔 앨범을 발매할 때까지만 해도 음악을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음악을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한 건 송골매 2집부터로, 2집은 당시 밴드의 생업이었던 나이트 클럽에서 충분한 숙성을 거쳐 7시간 만에 녹음해 내놓은 밴드의 야심작이었다. 그리고 이 콘서트의 부제는 '40년 만의 비행'이다. 송골매가 해체한 건 1990년 9집을 발표하고였는데, 40년을 적시한 건 아마도 전성기 핵심 멤버였던 구창모가 몸담기 시작한 2집부터 헤아린 세월로 보인다. 실제 이날 대중 앞에 선 송골매도 배철수, 구창모로 요약된 송골매였다. 비록 팬들이 아는 완전체, 즉 이봉환과 김정선, 김상복과 오승동, 이건태와 이종욱이 포함된 송골매는 아니지만 두 사람이 무대에 선 이상 그것이 송골매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없다는 건 거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공연 시작을 연 움직이는 조형물 마냥 둘은 명실상부 음악이라는 하늘을 날기 위해 송골매가 반드시 지녀야 했던 한 쌍의 날개였다.


사실 저들의 전성기 때 필자는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필자가 초등학생 때 송골매는 TV만 틀면 나오던 존재였다. '모여라'는 필자가 대중음악이라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할 무렵 가수와 노래를 매치시킨 첫 송골매 노래였다. 1978년 제1회 TBC 해변가요제 2차 예선 때 각각 활주로, 블랙 테트라의 멤버로 만난 배철수와 구창모. 그들이 의기투합해 정상으로 이끈 송골매의 가치란 기를 쓰고 음악으로 성공하려 한 태도 대신 하고 싶은 음악을 자신들이 재미를 느껴 했다는 것에 둘 수 있다. 예술을 향한 그런 진정성은 대중에게도 자연스레 통하는 법이라 이들 음악은 끝내 배우 유해진의 말처럼 "야생의 날것"과 최정훈(잔나비)이 표현한 "기분좋은 헐렁함"을 머금어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킨텍스 콘서트는 송골매 하면 2초 안에 떠오르는 메가 히트곡 '어쩌다 마주친 그대'로 시작했다. 장혁(드럼), 함춘호와 전달현(기타)에 송골매 3기 베이시스트로 활약한 이태윤 등 업계 베테랑들이 가세한 4기 송골매에는 백업 보컬리스트 두 명(이서종, 김지숙)과 키보디스트 세 명(최태완, 박만희, 안기호)까지 배치해 이 공연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환기시켰다. 노래는 구창모와 배철수가 한 곡씩 주고 받는 모양새로 진행됐는데 거기엔 44년 전 해변가요제에 블랙 테트라가 가져온 '구름과 나', 같은 대회에서 인기상을 받은 활주로의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도 포함됐다. 노브레인과 장기하가 함께 들리는 두 곡의 특징, 그러니까 창 한 소절이나 시 한 줄 같은 가사(이후 '하늘나라 우리님'에서 절정에 이른다)와 한국인만이 직감할 수 있을 '가요 멜로디'가 70년대 영국식 하드록과 만난 성향은 이후 송골매의 음악적 정체성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그날 무대는 분명 송골매의 무대였지만 한편으론 송골매 출신 솔로 가수로 큰 성공을 거둔 구창모의 무대이기도 했다. '방황', '문을 열어', '희나리' 등 한국에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멜로디가 장내를 연거푸 적신 이유다. 이 공연엔 사회자도 필요 없었다. 송골매의 반쪽인 배철수가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라디오 DJ이기 때문이다. 입담은 구창모도 배철수 못지않아 공연은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도 보고 듣는 맛이 배가됐다. 사람들은 둘의 한담 같은 만담에서 배철수가 생방송에서 당한 마이크 감전 사고 등 옛 에피소드를 들었는가 하면, 이들과 연예계 인연이 있던 배우 임예진이 80년대 초에 갓 태어난 자신의 조카를 보고 쓴 가사에 구창모가 곡을 붙인 '아가에게'의 창작 비화도 알게 된다. 여기에 환갑을 앞둔 40년 '찐팬'들, 무대에서 어쿠스틱 기타로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펑키 그루브를 재현한 중학교 1학년생 팬의 사연은 덤으로 관중을 즐겁게 했다.



사진제공=KBS


그러는 사이 배철수는 어느새 자기 음악 경력의 시발점인 활주로 시절 명곡과 송골매 시절 만든 노래로 앞선 구창모의 솔로 곡들에 맞불을 놓으며 공연을 절정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특히 함춘호의 슬라이드 기타 연주가 부드럽게 작렬하는 '이 빠진 동그라미'에선 작곡가 겸 작사가인 라원주의 탁월함도 엿볼 수 있었는데 그것도 잠시, 다시 구창모가 '외로워 외로워'를 부르니 배철수는 최태완의 멜로디언, 함춘호의 우쿨렐레가 눈이 되어 내리는 '사랑 그 아름답고 소중한 얘기들'로 균형을 이루며 송골매의 마지막 공연(배철수는 이 공연을 끝으로 음악을 완전히 접겠다고 밝혔다)을 다정하게 추스렸다.


무엇보다 이 공연에선 송골매와 어울려 무대를 빛내준 게스트들이 제 역할을 다했다. 과거 김수철이 송골매에게 준 '모두 다 사랑하리'를 지난해 7월 리메이크 한 수호(EXO)는 모친이 송골매의 팬이라며 대선배들 앞에서 그 노래를 다시 불렀다(구창모는 까마득한 후배가 부른 그 곡을 공연 엔딩곡으로 선택해 한 번 더 부른다). 이건 시작이었다. 다음 무대는 배우 이선균의 몫. 인기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 부장 역을 맡았던 그는 극에서 부른 구창모의 노래 '아득히 먼 곳'을 노래해 장내 차분한 열기를 아득히 이어갔다. 마지막은 장기하였는데, 목소리로 멀뚱한 포커페이스를 짓는 데서 자타공인 송골매(또는 배철수)의 직계인 그가 '산꼭대기 올라가'를 무대 위로 올라가 혼자 부르고 곧이어 배철수와 활주로의 명곡 '탈춤'까지 함께 하는 사이 세대가 뚜렷한 송골매 팬들도 흥에 겨워 조금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쯤에서 나는 두 번째로 흐른 곡 '모여라'의 후렴 가사가 바로 저 팬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은 정해져있고 / 우리도 언젠가는 늙어가겠지 / 흐르는 세월은 잡을 수 없네 / 너는 바보 나는 바보 / 모인 사람 모두 / 모두 바보"


활주로 멤버로 해변가요제에 나갈 때까진 프로 뮤지션이 될 생각이 없었던 배철수는 음악이란 건 늘 선택받은 사람들만 하는 것인 줄 알았다고 한다. 구창모, 배철수 나이도 이제 곧 칠순. 이날 두 사람은 한 가지 사실을 증명했다. 그건 자신들 역시 선택받은 사람들이었다는 것. 물론 그날 킨텍스에 모인 사람들은 그런 송골매만 바라보고 바라온 '바보'들이었다.

베스트 클릭

  1. 1 "지하철서 지갑 도난" 한국 온 중국인들 당황…CCTV 100대에 찍힌 수법
  2. 2 김호중, 뺑소니 피해자와 합의했다…"한달 만에 연락 닿아"
  3. 3 "1.1조에 이자도 줘" 러시아 생떼…"삼성重, 큰 타격 없다" 왜?
  4. 4 빵 11개나 담았는데 1만원…"왜 싸요?" 의심했다 단골 된 손님들
  5. 5 한국 연봉이 더 높은데…일 잘하는 베트남인들 "일본 갈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