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그대들의 법을 쓰시게, 나는 나의 삶을 이루려네

머니투데이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 2023.01.27 10:18

[웰빙에세이] 세상과 화합하지 못한 비운의 천재 허균을 기리며


조선 시대의 이이와 허균. 둘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하나, 천재지요. 둘 다 식견의 넓이와 깊이에 천재적인 면모가 있습니다.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비범한 경지가 느껴집니다.

둘, 강릉에 연고가 있지요. 강릉에 이이의 외가인 오죽헌만 있는 게 아니더군요. 허균 생가도 있습니다.

셋, 불교에도 심취했지요. 둘 다 유학자지만 공자 맹자만 읊지 않았습니다. 유학 지상주의, 유교 근본주의의 도그마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넷, 조선을 대표할 만한 걸출한 여류 문인이 바로 곁에 있었지요. 이이 곁에는 어머니 신사임당이, 허균 곁에는 친누이 허난설헌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더 천재일까? 제가 보기엔 허균입니다. 그가 더 원대한 혁명을 꿈꾼 시대의 이단아였습니다. 그래서 운명도 엇갈렸을까요? 허균은 반역을 꾀한 죄로 나이 50에 머리를 덜컥 잘립니다.

영화 <왕이 된 남자>에서 가짜 왕을 세우고 진짜 왕 사이에서 저울질하던 신하 류승룡이 허균이지요. 픽션이지만 허균의 마음은 아마 영화 속과 같았을 겁니다.

강릉 생가에 모신 허균의 영정! 생가 곁에 세운 기념관에서는 허균과 허난설헌의 삶을 '不與世合(불여세합)'이란 네 글자로 압축했더군요. '세상과 더불어 화합하지 못하다!' 세상은 아직 두 오누이를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거지요.

허균은 불교와 도교에도 심취하고 당대의 고승인 서산대사, 사명대사와도 막역했습니다. 이이는 불교를 믿은 것이 정치적 빌미가 되자 여러 번 반성문을 쓰면서 자리보전을 하지만 허균은 그러지도 않았습니다. 허균은 당당했습니다.


예교에 어찌 묶이고 놓임을 당하겠는가
부침을 다만 정(情)에 맡길 뿐이라네
그대들은 모름지기 그대들의 법을 쓰시게
나는 스스로 나의 삶을 이루려네

불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파직을 당했을 때 그가 한 말입니다.

허균은 명문가의 적자였지만 당시의 비주류 서얼들과 격의 없이 사귀며 차별 없는 세상을 이야기했지요.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도 그래서 나옵니다.

남존여비 숭유억불 적서차별..... 숫한 적폐와 차별로 앞뒤가 꽉 막혀 갑갑한 조선 중후기. 새로운 평등 세상을 꿈꾸며 자기만의 길을 가려 했던 비운의 천재이자 반항아이자 혁명가였던 허균. 그의 뜻과 삶을 마음속에 새기며 기립니다.

나 또한 스스로 나의 삶을 이루렵니다.
그대들은 모름지기 그대들의 법을 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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