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거대은행의 경고

머니투데이 김성재 미국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 2023.01.20 04:06
골드만삭스는 세계 최초의 투자은행이다. 1869년 설립해 인수·합병(M&A), 기업공개부터 투자자문까지 투자은행 업무의 거의 전 영역을 개척해왔다. 항상 가장 좋은 실적을 내고 가장 높은 급여를 지급해 아이비리그대학보다 들어가기 어려운 월가의 상징이었다.

2000년대에는 그리스 정부와 비밀히 부채를 숨겨주는 스와프 계약을 해 유럽 재정위기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한국계 미국인인 빌 황의 헤지펀드 아케고스가 파산위기에 빠졌을 때도 돈을 빌려준 골드만삭스는 가장 먼저 주식을 매도하고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굵직한 국제적 금융스캔들의 배후에는 늘 골드만삭스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었다. 빠르게 돈 벌 기회를 포착해 맞춤형 선진금융을 설계하고 제공하는 금융계의 만능 스텔스전투기로 통했다. 미국의 숱한 재무장관과 정관계 고위인사를 배출한 인재의 요람이기도 했다.

이처럼 전 세계 명문 MBA 출신들의 선망을 한몸에 받아온 골드만삭스가 흔들리고 있다. 줄어들 줄 모르고 증가해온 수익은 전년 대비 20% 감소했고 당기순이익도 반 토막이 났다. 지난해 4분기 주당순이익(EPS)은 시장전망치를 42% 밑돌았고 주가는 크게 하락했다.

반면 월가 투자은행 업계의 대표적 경쟁자인 모간스탠리의 주당순이익은 시장 컨센서스를 10% 상회해 골드만삭스의 추락을 더욱 의아하게 했다. 그런데 지난해 골드만삭스가 이렇게 저조한 성적을 낸 것은 모간스탠리와의 경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이 아니다.

골드만삭스는 전통적 투자은행 부문인 인수·합병 자문과 트레이딩 분야에서는 여전히 탁월한 실적을 거뒀다. 이 은행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은 카드·여신 업무와 같은 전통적 상업은행 분야였다. 무엇보다 애플과 합작한 신용카드에서 10억달러 안팎의 손실을 봤다.


골드만삭스를 포함한 미국 투자은행 업계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를 겪으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다. 업계 4위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해 글로벌 금융위기에 방아쇠를 당겼고 베어스턴스와 메릴린치는 JP모간과 뱅크오브아메리카에 각각 인수됐다.

오랜 기간 황금을 낳는 거위로 통한 월가의 투자은행 업종 자체가 사라질 위기였다. 그중 골드만삭스와 모간스탠리만 끝까지 투자은행으로 남아 고군분투하다 결국 상업은행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상업은행 전환 후 두 은행의 행보는 크게 달랐다.

김성재 美 가드너웹대 경영학 교수
모간스탠리가 투자은행 업무에 여전히 포커스를 맞추면서 수익성을 챙긴 데 반해 골드만삭스는 빠르게 자산규모를 늘리면서 카드와 여신 등 상업은행 부문을 공략했다. 미국 은행업계 수위를 다투는 JP모간과 뱅크오브아메리카를 따라잡으려는 욕심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4분기 이 두 은행 모두 예상을 상회하는 견조한 실적을 남겼다. 전통적 상업은행 분야에서 선방했기 때문이다. 결국 골드만삭스는 패배를 자인했다. 상업은행 분야를 통폐합하고 수천 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젊은 직원들이 출근길에 해고통보를 받고 직장에서 쫓겨났다. 섣부른 영역확장이 부른 화였고 위기의 불길한 전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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