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만큼은 평등하길 바랐는데…"
육군 현역으로 복무 중인 정모씨(23)는 18일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수천만원을 내고 허위 뇌전증 진단서를 발급받는 수법으로 대규모 병역면탈을 알선한 병역브로커 수사를 두고서다. 정씨는 "돈 없는 게 잘못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며 "군 복무하는 동안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부터 이어진 프로 운동선수, 연예인, 대형로펌 변호사 등 사회지도층 자녀의 병역 비리 소식에 청년들이 허탈감을 쏟아내고 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병역 비리 사건이 또 한 번 병역 대상 청년들을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
병역 비리에 대한 비판과 함께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이들은 군필과 미필을 가리지 않는다. 3년 전 전역한 직장인 김민영씨(27)는 "군대에 가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국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에 가는 것인데 병역 비리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인천에 거주하는 예비역 소령 정영일씨(47)는 "군대 가는 친구들은 바보가 아니다"라며 "돈을 받아 알선하는 브로커도 나쁘고 수법을 가리지 않는 청년들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유명인과 고위층의 병역 비리 사건이 '진짜 병역면제자'들에게 멍에와 주홍글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병역 미필자 정보공유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하는 한 누리꾼은 "우울증을 오래 앓았고 재검을 준비하고 있는데 병역 비리 사건 때문에 진짜 환자들까지 문제가 되는 상황이 생길까 걱정"이라고 밝혔다.
군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병역 비리가 반복되는 이유로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입대를 앞둔 대학생 김준휘씨(22)는 "부조리 근절에 앞장서야 할 고위 공직자와 유명인들이 비리 의혹에 연루된 현실이 안타깝다"며 "법의 허점을 악용하는 브로커와 비리 당사자 모두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역법 86조에서 정한 '병역 의무를 기피하거나 감면받을 목적으로 속임수를 쓴 행위'로 병역 면탈 혐의가 인정되면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서울남부지검과 병무청은 지난달 초부터 병역 면탈 합동 수사팀을 운영해 병역 비리 의심자 70~100명을 수사 중이다. 검찰은 특히 고위 공직자와 법조인 자녀, 운동선수와 연예인 등이 연루됐을 가능성을 두고 수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28일 프로배구 선수 조재성이 병역 면탈 시도를 시인한 데 이어 래퍼 라비가 뇌전증을 앓고 있다며 재검을 신청하는 방식으로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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