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절반의 통쾌함만 안기는 예측불가 첩보액션물

머니투데이 정유미(칼럼니스트) ize 기자 | 2023.01.16 12:30

반전이 이어질 때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유령', 사진제공=CJ 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둘러싼 유령이 너무 많다.’


올해 포문을 여는 한국 영화 기대작이자 설 연휴 개봉작 ‘유령’을 보고 든 생각이다. 일제강점기 배경의 캐릭터 무비라는 공통점에선 ‘암살’이, 같은 원작인 첩보소설을 각색한 중국 영화 ‘바람의 소리’(2009)가,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여성 캐릭터를 내세운 ‘아가씨’(2016)와 이해영 감독의 전작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5)가 떠오른다. 배경만 사실일 뿐 허구적 상상력으로 창조한 시대극 ‘바스터즈: 거친녀석들’(2009)까지 어른거린다. 비교군이 워낙 뚜렷해 작품 본연의 매력에 빠져들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유령’은 유령처럼 맴도는 영화들을 물리치고 차별화에 성공했을까.


1933년 경성, 항일 무장단체 ‘흑색단’의 스파이 ‘유령’에게 신임 총독 암살 지령이 내려진다. 새로 부임한 총독부 경호대장 다카하라 카이토(박해수)는 총독부 내에 침투한 ‘유령’을 잡기 위해 덫을 놓고 용의자 다섯 명을 외딴 호텔로 불러들인다. 경무국에서 통신과 관리감독관으로 좌천된 무라야마 쥰지(설경구), 통신과 암호문 기록 담당 박차경(이하늬)과 암호 해독 담당 천계장(서현우), 통신과 직원 백호(김동희), 총독부 요직인 정무총감의 비서 유리코(박소담)는 이틀 안에 자백이나 고발을 택해야 한다는 카이토의 말에 각자 살아남을 방법을 궁리한다.


'유령',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도입부는 이해영 감독 특유의 장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본에서 보내온 암호화된 공문을 통신과 직원들이 해독하는 장면의 감각적인 화면 구성과 흑색단이 유령에게 암호 지령을 내리는 방식은 ‘영화적’ 재미를 한껏 돋운다. 유령이 접선하는 장면의 클로즈업 촬영이나 짧고 굵은 추격 액션 신도 기대감을 높인다. 캐릭터 소개와 더불어 영화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효과가 제대로 발동한다.


‘유령’은 중국 소설가 겸 드라마작가 마이지아의 첩보 소설 ‘풍성’을 원작으로 한다. 동명 소설을 먼저 영화로 옮긴 리빙빙, 저우쉰 주연의 중국 영화 ‘바람의 소리’(2013)는 194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친일 괴뢰정부 왕징웨이정부 내부에 침투한 반일조직 단원 ‘유령’을 색출하는 첩보 스릴러다. 2009년 중국 개봉 당시 첩보극 열풍을 일으키며 흥행했고, 원작은 이후 드라마와 게임으로 제작되었고 해외 판권 판매 등으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유령',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유령’과 원작의 가장 큰 차이라면 유령의 존재를 밝히고 시작한다는 점이다. 원작과 중국 영화가 ‘누가 유령인가’를 밝히는 추리극 성격이 강했다면, ‘유령’은 신임 총독 암살 작전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유령을 알려주고 네 명의 용의자와 함께 호텔에 갇힌 그가 진범임을 숨기는 긴박한 상황을 다룬 첩보 액션에 가깝다. 주요 캐릭터 중 일부와 인물들 간 관계를 변형하고 후반부 전개가 다르기 때문에 ‘바람의 소리’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유령’만이 보여주는 다른 면에서 오랜 경력을 지닌 시나리오 작가로 이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해영 감독의 고심이 느껴진다. 추리극과 첩보 액션의 조합은 그의 흥행작 ‘독전’에 이은 장르적 도전으로 다가온다.



홍콩 영화를 리메이크한 ‘독전’에서 독특한 캐릭터 향연을 보여준 이해영 감독은 ‘유령’에서도 캐릭터 입체화를 시도한다. 설경구가 연기한 일본인 쥰지의 출신 배경과 용의자지만 카이토보다 먼저 유령을 잡으려는 그의 목적을 드러내면서 교란 작전을 펼치는데, 영화 마지막까지 강력한 긴장감으로 작용한다. 박차경과 유리코 캐릭터는 ‘바람의 소리’에서 미묘하게 다룬 두 인물의 유대관계를 확장해 유감없이 표현했다. 천계장과 백호도 중국 버전보다 캐릭터 성격이 두드러진다. 캐릭터들의 반전과 갈등이 중반부를 힘 있게 지탱하며 폭발력을 극대화한다.


'유령',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아쉬운 점은 영화가 전환을 꾀할 때마다 보는 이의 끓는점 차이가 생긴다는 거다. 원작 설정에서 용의자들을 외딴 장소에 불러 모은 동기와 이들을 심문하는 방법인 고문을 약화하다 보니 호텔이 단순히 ‘마피아 게임’을 벌이기 위한 장소, 미장센을 위해 기능하는 공간 이상의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호텔 내외부를 적절히 활용해 연출의 기지를 발휘하는 순간들이 있지만, 이들을 곧바로 총독부 고문실로 데려가지 않고 굳이 이곳에 모이게 했나 하는 의문을 말끔하게 해소하지 못한다.


고도의 심리전이 끝나고 본격적인 액션으로 장르를 전환할 때도 온도 차가 벌어진다. 주도권을 쥔 인물(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 영화를 보는 감상이 현격히 달라진다. 호텔을 벗어나는 중요 장면에서 좀 더 세밀해야 할 설계가 허술해지면서 개연성이 급격하게 약해지고, 본색을 드러내고 새로운 변화구를 던져야 하는 캐릭터에게 타격을 입힌다. 이런 탓에 액션과 함께 후반부에 숨겨둔 예측 불가능한 장르가 절반의 통쾌함만을 안기는, 기대와 동떨어진 결과를 빚는다. 치밀한 기동력보다 스타일 넘치는 화력을 선택한 영화는 마지막까지 열띤 분위기를 이어가며 관객의 예상을 깨는 데는 성공하지만, 열렬한 환호를 보내게 만드는 데는 실패한다.


'유령',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액션에 방점을 둔다면 설경구와 이하늬의 묵직한 격투 액션을 비롯해 후반부에 포진한 총격 액션을 기대할 만하다. 캐릭터 무비에 자신만의 색을 입힌 배우들의 연기와 개성도 다채롭다. 이렇듯 여러 장점이 눈에 띔에도 불구하고 ‘유령’은 아슬아슬하게 일군 복합장르의 짜릿한 재미에 스스로 치명타를 입히고 말았다. 장르 전복으로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들과 차별화를 시도한 도전적인 작품이고, 1930년대 실제로 활동했던 항일 조직 ‘흑색공포단’을 소재로 불러들여 대담한 영화를 완성했다 정도에 만족해야 할 듯싶다가도 “살아. 죽는 건 죽어야 할 때, 그때 죽어”라는 박차경의 대사를 자꾸 되뇌게 된다. 영화의 결함을 떠나서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수많은 무명의 독립투사들, 아픈 시대를 떠돌던 그들을 끝내 ‘유령’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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