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사 단체들은 최근까지도 의료법 위반 행위로 기소된 한의사에게 대법원이 무죄 취지 판결을 내린 것에 반발하고 있다. 한국여자의사회는 2일 성명서를 내고 "이 판결은 고도의 의료적 전문성을 요구하는 행위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포기한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향후 국민 보건 관련 위해 발생 가능성, 의료 현장의 혼란 및 이에 따르는 국민 피해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달 22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 A씨 상고심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의 초음파 기기 사용이 면허 외적인 의료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초음파 기기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시술자 능력에 따라 극과 극을 달리는 기계"라며 "대학병원에서 갑상선만 20년을 하신 어느 교수님도 개원했다가 초음파로 환자의 갑상선 암을 놓친 사례가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초음파를 굉장히 잘 쓴다는 산부인과 의사들도 갑상선이나 심장은 잘 못 본다"며 "초음파 기기에 익숙한 사람도 파트만 바뀌면 거기서부터는 기본적인 것밖에 못 하는 사람으로 전락한다"고 말했다.
한의계는 대법원 결정이 전향적이라며 환영한다. 이제는 법적인 문제로 한의사가 초음파 기기 사용에서 위축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의료계가 지적하는 '한의사 역량'도 충분히 교육받고 숙련된 한의사들이 초음파 기기를 사용한다면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권선우 대한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초음파 기기 사용은 한의와 양의 모두 사용자의 역량이 중요한데 그것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분들이 사용하리라 보진 않는다. 그 정도의 책임감은 의료인들에게 당연히 있다"며 "한의계도 한의영상학회 등에서 교육하면서 숙련도를 올리고 있다. 역량에 대한 공격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 이사는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진료의 객관성을 높이는 건 국민에게 혜택으로 돌아간다"며 "이번 법원의 결정은 한의사가 초음파와 같은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여 국민 건강에 기여하라는 취지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법원 결정에도 한의계 진료 현장에서 당장 초음파가 널리 사용되기는 어렵다. 건강보험 급여 문제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한의사협회는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 사용도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게 후속 노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의료계와 한의계가 의료기기 사용을 두고 대립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월 대법원은 IMS(신경근육자극술) 시술이 한방의 침술 행위와 유사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의료계에서 하는 IMS는 시술용 침을 사용해 근육 통증을 완화하는 치료법인데 대법원이 한방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논란이 지속되면서 정부는 IMS 시술의 신의료기술 평가를 미루고 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우리는 우리의 근거대로 IMS 시술을 진행했지만 그걸 갖고 대법원이 한방의 침술과 유사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한의계도 침술 행위를 사실상 독점하고 이를 침해하면 격렬하게 반대하는데 이번 초음파 기기 대법원 판결에서 한의계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업무에 있어서 대법원 판단은 반영해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건강보험 급여 등 정책적인 부분이 남아있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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