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한다고 지구 망하나…'車 없는 도시' 70년간 해보자"

머니투데이 파리=최경민 기자 | 2023.01.09 06:01

[파리 다이어리] 6. 지속가능한 도시로-①'15분 도시' 창시자 카를로스 모레노 인터뷰

편집자주 | 2022년 10월부터 12월까지 파리에서 생활하며 느낀 점과 전문가를 취재한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그래픽=최헌정 디자인기자
도시의 속도. 더 빠르게 더 멀리. 우리의 도시는 그렇게 발전해왔습니다. 그렇게 집밖을 나와 수십 킬로미터를 달려 강남으로, 서울로, 광역권 중심지로 이동해 생활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습니다.

발상의 전환을 하고 있는 도시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입니다.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15분' 거리 안에서 모든 생활을 할 수 있는 도시. '15분 도시'로의 변화입니다. 서울시의 20% 면적에 230만명이 살고, 광역권인 일드프랑스에 1200만명이 살고 있는 거인같은 도시가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15분 도시'의 콘셉트를 처음 만들었고, 과거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시장의 스마트시티 특보로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카를로스 모레노(Carlos Moreno) 소르본대 교수를 지난달 2일 파리 말라케(Malaquai)가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인터뷰했습니다. 미래에 지속가능한 도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도시의 스피드? 인식 변화해야"


"도시의 성공 여부는 '속도'에 달렸다(A city made for speed is made for success)."

모레노 교수는 인터뷰에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했다는 이 말을 거론하며 "이런 기존의 건축 콘셉트를 전환해야 한다"고 힘을 줬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가입니다. 자동차를 통한 속도감있는 이동을 강조하며 한 세기 동안 한국과 같은 '아파트' 위주 도시계획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합니다.

'자동차'를 앞세웠던 르 코르뷔지에와 달리 모레노 교수는 '도보'와 '자전거'를 앞세웁니다. 그리고 한 개인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15분 거리 내에 삶에 필수적인 △거주(Living) △업무(Working) △생활서비스공급(Supplying) △건강(Caring) △학습(Learning) △여가(Enjoying) 6가지 요소를 갖추게 도시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모레노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굉장히 많은 콘크리트 소재 건물들이 건축됐다. 굉장히 큰 도로들이 많이 만들어졌다"며 "그러면서 정말 바쁘고 정신없는 그런 삶의 패턴이 이제 시작된 것이다. 미세먼지, 스모그 현상 등 환경오염 문제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속도감있는 삶을 위해 달려온 결과, 이런 것들을 대가로 지불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지적했습니다.
파리 중심부 루브르박물관 뒤편 히볼리(Rivoli)가의 모습. 전체 4차선 중 자동차 도로는 한 차로에 불과하다./사진=최경민 기자
그러면서 "우리는 70년 동안 자동차 위주의 삶을 살았다. 이 익숙해진 삶을 벗어나 '자동차 없는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 최소한 7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것은 리틀 바이 리틀(little by little)로, 조금씩 바꿔가야 한다. 시민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그 인식의 변화가 행동의 변화로 연결이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동차가 불필요해지는 콘셉트"


'15분 도시'는 단순 이론이 아닙니다. 이미 파리시가 힘있게 추진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변화'입니다. 이달고 시장이 2020년 재선에 성공할 때 가장 앞세웠던 정책이 이 '15분 도시'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파리 시내에는 자전거 도로만 1200㎞가 깔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2026년까지 모든 골목길까지 차도와 구분된 자전거 도로가 마련될 예정입니다. 실제 파리의 거의 모든 도로들의 경우 '차도' 보다 '자전거 도로' 및 '인도'가 더 넓습니다.

점점 줄어드는 차선에 대한 불만도 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차 몰려면 파리 밖으로 나가란 말이냐"는 볼멘소리를 내놓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한 질문을 모레노 교수에게 해봤습니다.

- '자동차 소유'도 인간의 욕망인데, 시민들이 그런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것으로 보시나요.
▶"'15분 도시'의 콘셉트는 우리가 자동차를 보유해야 한다, 혹은 안 가져야 한다, 이런 게 아닙니다. 내가 위치한 곳에서 근접한 공간에 다양하고 높은 질의 서비스가 지원이 된다는 것을 좀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 구체적으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일을 하고, 학교를 가고, 의사를 만나고, 운동을 하고, 시장을 가고, 이런 우리가 원하는 모든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자동차가 불필요한 상황이 만들지는 것입니다. 자동차가 불필요해지는 콘셉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픽=최헌정 디자인기자
모레노 교수는 현재 파리시에서 내년까지 정비를 완료하려고 하는 17구의 신도시 클리시-바티뇰(Clichy-Batignolles) 지구 등을 예시로 들었습니다. 기자가 직접 방문해본 이곳은 철도로 단절된 두 동네를 인도와 자전거 도로 위주로 연결하고 △공유오피스 △탁아소 △학교 △체육관 등에 대한 접근성을 끌어올린 곳이었습니다.

이곳 외에도 3구의 모흘랑(Morland), 7구의 구(舊) 국방부 건물, 19구의 호자 파흑스(Rosa Parks)와 같은 공공 기능을 강화한 일종의 멀티플렉스 확보를 통해 파리시는 6가지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건물은 새로 짓는 게 아니라 관청이나 대형 창고를 개조해 확보하는 방향입니다. 동네에 위치한 초중등학교의 경우 방과 후에 시민들을 위한 평생교육의 장소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파리라는 도시는 재택근무 혹은 집 근처 공유오피스 근무를 할 경우 우리 동네에서 식사를 하고, 시장을 보며, 교육도 받고, 운동을 하는 게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재택근무 추세 속 시간과 공간의 재분배


인터뷰 중 중요한 포인트는 '출퇴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주로 외곽에 위치한 주택에서 시내의 회사로 이동하게 됩니다. 아무리 시청에서 내가 거주하는 곳 주변에 질 좋은 서비스를 공급해도, 매일 출근을 해야 한다면 무용지물입니다. 수시간씩 걸려 매일 출퇴근하는 것은 '15분 도시' 개념과 완전히 다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 '15분 도시'에서 '출퇴근'이 아니라 '재택근무'가 뉴노멀이 되는 게 필수적인 요소일까요?
▶"그렇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출퇴근'이 아니라 '재택근무'가 활성화됐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해도 되는구나'라고 깨닫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시간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1시간 넘게 걸려 함께 힘들게 사무실로 출근해서 일하는 게 불필요해졌죠. 그렇게 일하는 방식이 바뀌었지만 지구는 멸망하지 않지 않았습니까? 재택근무를 해도 성과가 유지가 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죠."
카를로스 모레노 소르본대 교수/사진=최경민 기자
- 꼭 재택근무가 아니더라도, 거주지 인근의 공유 오피스 등을 활용하는 것을 확대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게 추세입니다. 나의 거주지가 파리 동부 외곽도시 만라발레(Marne-la-Vallee)고, 회사는 파리 서쪽의 라데팡스(La Defense)에 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기업들도 집에서 근접한 만라발레에 스몰 오피스를 열어서 근무를 볼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노동자들이 그런 것들을 이제 요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그렇게 거주지 인근에서 주로 일을 하고, 하루나 이틀 정도는 사무실에 가고. 이런 형태의 모델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모레노 교수는 시간과 공간의 '재분산' 혹은 '재분배'라는 말을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미래의 지속 가능한 도시는 모두가 같은 시간대에 출퇴근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하고, 또 도시에 넘치는 잉여공간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겠습니다.

"모두가 아침 9시에 출근하고, 저녁 6시에 퇴근을 하면 동시간대에 이동 인구가 밀집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시간대를 조금 더 재분배를 해서 밀집현상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오피스들도 분산을 해서 공간적인 부분에서 도시의 균형이 잡히게 해야겠지요. 저녁 이후 불이 꺼지면 쓸모가 없어지는 건물들이 많은데, 이 건물들을 비워둘 게 아닙니다. 문화활동, 스포츠센터 등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그런 솔루션을 찾아볼 수 있도록 상상력을 발휘해 재조명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파리 7구에 위치한 과거 국방부 건물. 파리 시내 알토란 같은 곳에 있다. 공동주택, 탁아소, 체육관, 공원 등을 갖춘 복합 건물로 리모델링 중이다./사진=최경민 기자


개인이 삶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 받도록


모레노 교수가 기자의 질문을 받고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라고 강조한 대목이 3개가 있습니다. '15분 도시'는 새로운 토목·인프라 건설과 관련한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점, 개인을 특정 도시 지점까지 15분 만에 데려다주는 모빌리티(mobility)적 접근 방식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파리의 사례를 마치 레시피처럼 그대로 모든 도시에 적용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파리의 사례를 모방하는 게 아니라, 콘셉트의 본 뜻을 왜곡없이 이해하고 적용하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15분 도시'가 보여주는 지속가능한 도시의 요소는 분명합니다. 도시의 특정 지점이 아니라 한 개인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 개인의 도보 혹은 자전거로 닿을 수 있는 거리, 즉 동네 안에서 업무부터 생활·여가까지 모두 할 수 있는 도시. 개인이 중심이기 때문에 동네와 동네가 단절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도시. 아무리 낙후된 지역에서도 개인이 삶에 필요한 서비스를 근거리 내에서 모두 누릴 수 있는 도시.

모레노 교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환경을 조금 더 좋게, 평화롭게 만들기 위한 비전"이라며 "녹지대를 훨씬 많이 확보해 언제든 산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공기순환도 더욱 잘 되게 해야 한다. 이런 도시를 이제 우리가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힘을 줬습니다.

우리 도시들은 파리의 '15분 도시'가 보여준 비전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까요? '15분'은 서울과 부산 등에 적당한 시간일까요? 산과 언덕이 많은 국내 도시 특성에 '자전거'는 자동차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국내에서 방과 후 초중등학교 건물을 각종 사회 서비스에 활용하는 게 가능할까요? 국내 기업들은 출퇴근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버리는 게 가능할까요? 여러가지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수원=뉴스1) 김영운 기자 = 지난 2일 오전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이 출근길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3.1.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완전히 다른 도시의 속도 제안"


'15분 도시'가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파리는 이미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내에서 자동차를 마음대로 못쓰는 것 등에 대한 불만섞인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한 도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상기후 현상,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변화된 사회구조는 기존 도시가 '스피드 패러다임'에 머물게 만들지 않습니다.

도시의 미래를 위해 변화해야 하는 때이고,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때입니다. 아래는 모레노 교수의 지난해 TED 강연 일부 내용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시간관념이 뒤틀려있다는 점을 받아들여 왔습니다. 먼 통근거리에 적응하는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해왔습니다. 많은 현대 도시가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는 목표를 기준으로 설계되지만, 사실 사람들은 도시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가속의 허황된 거품 속에서 말이죠.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라볼 수 있고, 다른 삶의 속도를 누릴 수 있는 '15분의 속도'를 제안합니다."
15분 도시 개념도 /사진=파리시청 홈페이지 캡처 후 한글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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