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12층서 떨어질 뻔한 여성…'수갑' 채워 살린 경찰관[인류애 충전소]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23.01.03 08:00

울산북부경찰서 농소1파출소 고경호 순경(35), 12층 아파트 난간에 매달린 50대 여성 손목에 '수갑' 채우고, 자신의 손목에도 채워 구조…"그 당시엔 위험한 것도 잊고, 구해야겠단 생각만 했지요"

편집자주 | 세상과 사람이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 날은 반대로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숨어 있던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도, 선한 이들도 많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지난해 9월 17일 밤이었다. 울산북부경찰서 농소1파출소에 112 출동 신고가 들어왔다. '코드 0(제로)', 최단 시간 내에 출동해야 하는 긴급 신고였다. 촌음을 다투는 상황이었다.

12층 아파트 난간에 50대 여성이 매달려 있다고 했다. 술에 취해 스스로 삶을 놓아버리려 했단다.

고경호 순경(35)은 동료 경찰과 황급히 출동했다. 도착해서 보니, 투신 시도한 여성의 몸이 거의 다 창밖으로 나가 있었다. 그를 남편과 아들이 겨우 붙잡고 있었다. 손을 놓으면 바로 떨어지는 거였다.

출동한 경찰과 가족이 힘을 합쳐 끌어올려야 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 과정에서 추락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고 순경은 여성의 손목에 수갑을 꽉 채웠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자신의 손목에 채웠다. 이로써 구조자와 순경이 한 몸처럼 연결되었다. 작은 실수로라도 떨어지게 하지 않겠다고, 어떻게든 반드시 살리겠다고, 그 신념 하나로 나온 의로운 행동이었다. 그 덕분에 여성은 무사히 끌어 올려졌고 구조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다행스레 결론이 좋았다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여성의 떨어지려는 무게가 더 강했다면. 그로 인해 연결된 경찰까지 아래로 떨어졌다면…. 고 순경과 인터뷰를 하기 전 그런 아찔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단 한 번뿐인 귀한 삶 아닌가. 이것저것 재지 않고 함부로 수갑을 연결하는 맘이란 어떤 걸까. 그와 대화를 나눠 그런 의문을 풀어야만 했다.



팔다리 겨우 붙잡고 있던 가족…힘이 점점 빠지고 있었다



형도 : 그 당시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경호 : 야간 근무 중에 긴급 출동을 했어요. 빠르게 현장에 갔고, 소방도 아직 안 왔을 때고요. 12층 난간에 여성분이 매달려 계셨어요. 아파트 비밀번호를 몰라 못 들어가고 있는데, 위층 주민분이 그 집의 다른 가족(남편, 아들)에게 전달받아 열어주시더라고요.

형도 : 들어가 보니 아마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을 테고요.
경호 : 안방 쪽 작은 베란다가 있는데, 추락 직전의 상황이었어요. 한쪽 다리는 남편분이, 한쪽 팔은 아드님이 잡고 계셨고요. 잡은 지 시간이 좀 됐는지, 엄청 힘들어하셨지요. 두 분 다 힘이 점점 빠져서 위험했지요.

형도 : 정말…바로 가서 잡으실 수밖에 없었겠어요.
경호 : 일단 같이 잡았지요. "다리 힘을 좀 주시면 당기기 수월할 것 같아요"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아주머니께서 술을 좀 드신 데다 힘도 빠지셔서, 전혀 힘을 못 주시더라고요. 아직 소방도 오지 않았을 때고, 자칫 잘못하면 끌어올리다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수갑 채워 떨어지지 않게 구조… 고참에게 너무 위험하게 했다며 혼났다


형도 : 그래서, 혹시 구조 중에 떨어질까 봐 수갑을 채우신 건지요. 안전장치로요.
경호 : 맞아요. 방법이 안 떠오르다가, 문득 수갑 있는 게 생각나더라고요. 아주머니 오른쪽 손목에 한쪽 수갑을 채우고, 제 손목에 다른쪽 수갑을 채웠지요. 그래서 동료와, 남편과 아드님과 같이 끌어올려 구조했습니다.

끌어 올려진 뒤 여성을 살펴보니 거의 탈진 상태였다. 안전하게 집안에 들어왔단 생각에, 고경호 순경은 긴장감이 확 풀리면서 몸에 힘이 쭉 빠졌단다. 구했단 마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고. 5분 뒤 소방차가 도착해 병원으로 무사히 이송되었다.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리 한 사람을 살렸다. 궁금했다. 수갑을 그 순간 어떻게 생각했을지.

형도 : 혹시 투신 시도자를 구조할 때 수갑 채우는 게 매뉴얼이었던 건가요?
경호 : 그런 건 아니에요. 단지 이런 일이 종종 있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안전하게 구할 수 있을까 평소에 많이 생각했었어요. 주변에 동료도 있었으니 믿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형도 : 그래도 채운 상태에서 떨어질 수도 있고, 고층(12층)이라 위험하잖아요. 무사히 구조해 다행이긴 하지만요.

경호 : 그 당시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그냥 구해야겠다고만 생각이 들었지요. 제가 몸무게가 90kg이라 좀 나가기도 하고요. 밤이고, 밖이 잘 보이지 않아 좀 더 과감하게 했었어요.

형도 : 선배 경찰분들이나, 가족들은 뭐라고 하셨을지요.
경호 : 팀장님께 어떻게 구했는지 설명했다가 혼났지요. "너무 위험하게 그렇게 한 거 아니냐"고 나무라시더라고요. 제 걱정을 해주셔서 그렇게 말씀하신 거지요. 가족들도 걱정했어요. 그러다 혹시 다치거나 그럴 수 있다고, 몸 사리면서 하는 게 좋지 않으냐고요.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셨어요.



차마 못 막은 여학생의 죽음 이후…하나라도 더 구하겠다고



대부분은 아마 그렇게까진 안 하지 않았을까. 너무 위험하니까. 그게 비겁한 게 아니라, 고 순경이 외려 다른 거라고 여겼다. 뭐가 그를 이렇게까지 용감하게, 아니 어쩌면 무모하게 만든 걸까. 무언가 그만의 동기가 있는 걸지 궁금했다.

형도 : 살리는 일에 몰입하고, 더 적극적으로 하시는 데에 이유가 있으신 걸까요.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
경호 : 경찰이 되고 1년 차에 한 여학생이 중학교서 투신하려 한단 신고를 받고 갔었어요. 난간에 있는 걸 보고 설득했지요. 제발 들어오라고, 힘든 일 있으면 아저씨가 얼마든 들어주겠다고요. 한 번만 얘기해보자고 설득했지요.

형도 : 학교에서 그런 일이라니요.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경호 : 1시간 정도 그 학생을 설득했거든요. 다행히 그땐 설득이 되어서, 학생을 구했었어요. 그런데….

형도 : 그런데 또 어떻게 된 걸까요?
경호 : 며칠 뒤 그 여학생이 아파트에서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어요. 그때 제 순찰차 시간에, 배정된 장소에서 그런 일이 있어서 직접 봤고요.

형도 : 아…마음이 너무 힘드셨겠어요.
경호 : 트라우마처럼 남았지요. 그게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요. 좀 더 적극적으로 관련 기관에서 치료할 수 있게 도와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그럼 그런 결과까진 안 왔을까,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형도 : 그 일 때문에 비슷한 사건을 보셨을 때 더 적극적으로 뛰어드셨을 거고요.
경호 : 맞아요, 앞으로 한 명이라도…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겠단 다짐을 했었지요.
에필로그(epilogue).

출동할 때 빨리 가려고 순찰차도 빠르게 모는 사람. 그래서 고참들이 "그렇게 하다 사고 나면 더 일찍 못 간다"며 걱정하는 사람. 다른 사람 도와주는 걸 좋아해 경찰과 정말 잘 어울린단 말을 듣는 사람. 동네가 버스 종점 근방에서 더 들어가야 하는데, 동네 어르신 등이 보일 때면 꼭 태워서 바래다주는 좋은 사람. 좌우명이 '쓰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인 심지가 굳고 단단한 사람. 하고 싶은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하는 그런 경찰이 되고 싶다는, 진정한 경찰관.

그런 고경호 순경에게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형도 :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도, 수갑을 채워 구하실 건가요?
경호 : 음,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긴 한데요. 주변 분들이 그러시더라고요. "니는 돌아가도 또 그렇게 할 것 같다"고요. 저도 모르게 구하려고 또 모든 방법을 쓰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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