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지배구조 개선Ⅰ- 회장을 없애라

머니투데이 박재범 증권부장 | 2022.12.30 04:25
# "은행장이 자신을 총재로 부르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 같다".

2008년 3월 금융위원회 대통령 업무보고 때 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꼬집는다. "산업은행이 일반은행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여전히 은행장 명칭을 총재로 쓰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다.

곧 산업은행 '총재' 호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대신 산은 지주회사를 만들며 '회장' 직함이 등장한다. 이후 지주회사가 없어지고 은행만 남았지만 호칭은 그대로 '회장'을 쓰기로 했다. 산업은행법에 명시했다.

산업은행 CEO의 국내 금융시장에서의 위상이나 역할이 은행장 이상이라는 명분을 댔다. 다른 금융지주회사 CEO 호칭이 회장인 것도 고려했다.

금융지주회사 CEO가 회장인 것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 금융지주회사법에 담긴 내용도 아니다. 그저 자회사에 '사장'이 있으니 그보다 높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는 수직적 사고도 깔려 있다. 그렇게 금융지주회사 '회장님'의 역사는 20년이 넘어간다.

# 사실 회장은 '오너(Owner·주인)'의 의미를 내포한다. 주인 있는 대기업집단에서 '회장' 직함은 오너의 몫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22년 11월 회장에 오른다. 2014년 부회장 직함을 단 지 8년만이다. 최태원 SK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구광모 LG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등 회장은 주인의 타이틀이다.

간혹 전문경영인을 '회장'으로 발탁하는 사례가 있지만 이 역시 주인의 선택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주인 없는 기업의 회장 직함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주인 없는 곳에서 스스로 주인을 자임하는 듯 한 느낌만 든다. 일부 금융지주회사를 비롯 소유 분산 기업(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가 불거지는 게 단적인 예다.


'재벌집 막내 아들'도 오르지 못한 회장에 올라 연임, 3연임을 한다. 경영을 책임지는 전문경영인보다 회사의 주인으로 비쳐진다.

성을 쌓고 왕국을 건설한다. 이사회, 회장추천위원회 등은 형식적으로만 작동한다. 회장이 된 주인이 아닌, 주인이 된 회장을 거역하긴 쉽지 않다.

# 회장 선임 과정을 보면 흥미롭다. 현직 프리미엄이라지만 추대에 가깝다. 경쟁자들은 비전과 각오를 적당히 밝힌다. 전력을 다하는 것은 회장님에 대한 역린이다.

경쟁 자체가 없는 곳도 존재한다. 그런데 아무도 말 하지 않는다. 재벌 지배구조 개선만 중요할 뿐 주인없는 기업의 지배구조는 관심 밖이다. 민간 기업에 대한 '개입' '외압' 등의 프레임도 제법 강하다.

결국 나선 게 국민연금이다. "소유 분산 기업의 합리적 지배구조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논의가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았다"(12월8일,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는 발언은 허언(虛言)이 아니다. 원론적 언급을 넘어선다.

"CEO 선임을 할 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따라야 불공정 경쟁, 셀프 연임, 황제 연임 같은 우려들이 해소될 수 있다"(12월 27일,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이사 선임 기자간담회) "'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 한다"(12월 28일, 국민연금 보도자료) 등 이후 행보도 거침없다.

입장은 간단하다. CEO 선임 때 과정이 공정한지, 기회가 균등한지 따져 보라는 '상식적' 제언이다. 더 쉽게 말해 '회장 계급장 떼고 붙을 자신감이 있는지, 회장님들은 자문해 보라'는 충고다.

기업은 누구의 왕국이 아닌 기업으로 존재해야 한다. 이참에 회장 직함부터 없애보자. 형식이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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