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혁신의 적

머니투데이 강기택 산업2부장 | 2022.12.27 04:09
대구시가 전국 7개 특별·광역시 중 처음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에서 평일로 바꿨다. 의미 있는 것은 규제론자들이 '대형마트와 경쟁관계에 있다'고 주장했던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이 먼저 변경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점이다.

월 2회 휴업, 자정~오전 10시 영업규제, 전통시장 인근 신규 출점 제한 등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대한 영업규제는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을 개정할 당시에도 논란이 격렬했다. 그렇지만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정치적 '선의'(?)가 관철됐다.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유통업의 지형은 급변했다. 1~2인 가구가 늘어나고 극심한 소비양극화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편의점 매출은 대형마트를 넘어섰다. 쿠팡과 컬리 같은 e커머스가 유통시장을 잠식했다. 지난해 전체 소매판매액 중 온라인쇼핑 거래액 비중은 28.7%로 역대 최고수준이었다.

전통시장은 규제의 반사이익을 얻지 못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설문조사 결과 대형마트 휴무일에 전통시장을 찾은 이는 8.3%였다. 대형마트 휴무일에 주변 점포의 신용카드 결제액이 8~15%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소상공인의 매출과 점유율은 규제 전보다 감소했다.
대형마트와 SSM은 정체가 아니라 퇴조일로를 걸었다. 수년 전부터 점포와 인력을 구조조정중이다. 고용이 줄고 협력업체의 살길도 막막해졌다. 소비자의 편익도 높아지지 않았다. 인근 대형 마트를 두고 의무휴업일에 다른 도시로 이동하거나 다음 영업일까지 불편함을 감수하고 기다려야 했다.

지역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한국유통학회의 '유통규제 10년 평가 및 상생방안'에 따르면 대형마트 1개 점포가 문을 닫으면 총 1374명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이마트 노조가 자영업자와 유통기업 노동자가 공존할 수 있는 규제 완화를 요구한 이유다.

이렇듯 시장의 구도가 바뀌면서 대형마트·SSM과 전통시장 모두 패배자가 됐다. 소비자들의 선택권도 줄었다. 소비자의 편익은 경쟁촉진을 통해 이뤄지나 대형마트는 e커머스업체와 같은 조건에서 온라인 경쟁을 할 수 없다. 규제가 소비자를 안중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구시의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협약식 명분이 '대·중소 유통업계와 지역유통업 발전, 소비자 편익 향상'인 것은 이런 문제의식의 반영으로 풀이할 수 있다. 대형마트의 집객효과로 대·중소 유통업계가 보완관계에 있으며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돌리면 소비자에게도 이롭다는 것을 집약한 표현인 것이다.

반복하자면 규제는 낡은 프레임에 갇혀 그대로 있는 사이, 규제하려던 시장은 달라졌다. e커머스는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으며 유통의 흐름을 바꾸었다. '새벽배송'은 어느덧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를 가르는 또 다른 기준이 됐다.

이미 많은 국가가 한국이 규제를 하기 전에 규제를 거둬 들였다. 대규모 점포 출점 규제를 했던 프랑스는 2008년에 소매점포 출점 허가 기준을 완화했다. 일본은 점포 면적, 폐점 시간, 휴업일 수 등을 정해놓았다가 2000년에 풀었다. 한국만 뒤늦게 역주행했던 것이다.

규제는 '시장의 약자'를 돕겠다며 코스프레를 한 정치인들이 표를 얻고 소수의 이익집단이 수혜를 입을지는 모르나 대형마트와 주변 상권의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소비자 그 어느 누구에게도 혜택이 되는 제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제도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정부가 할 일은 경쟁 봉쇄가 아니라 약자에 대한 인프라투자와 지원 등이다.

더 이상 대형마트나 SSM이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의 적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특정 정치세력의 의도와 복선을 배제하고 유통산업발전을 저해하는 발전법이 아니라 이름에 걸맞는 법의 내용을 갖추는 것이다. 혁신은 거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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