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노동시장 이대론 안된다"...절박함이 만든 권고문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 김주현 기자 | 2022.12.12 11:10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권순원 교수 등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2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안을 논의해 온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현행 1주 외에 '월 단위 이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2022.12.12.

"대한민국 노동시장, 지금 이대로는 절대 안됩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안을 마련하기 위해 출범한 '미래노동시장 연구회'(연구회)가 12일 발표한 권고문은 이런 위기의식 속에서 나왔다. 연구회에 참여한 노동분야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으로 권고문을 만들었다. 이들은 노동시장의 주체로서 노사 모두 개혁 과정에 적극 동참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연구회는 지난 6월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 따라 7월18일 발족 이후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과거를 면밀히 되짚어봤다. 또 현재를 냉철하게 진단해 미래 노동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 지난 5개월간 연구회는 전체회의 20회, 워크숍, 외부 전문가 발제, 수차례의 간사단 회의 등 집중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또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폭넓게 듣기 위해 업종·규모·직종·연령별 노·사 심층 인터뷰, 현장 방문 및 간담회, 온라인 소통회를 수십 차례 진행했다. 합리적이고 균형있는 정책대안 마련을 위해 노사단체와 전문가 토론회 등도 실시했다. 이번 권고문이 나온 과정이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연구회) 좌장을 맡고 있는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경제의 글로벌화, 일의 다양화 등에 따라 일하는 방법과 시간 활용의 방식이 변화하고 있지만 우리 노동법의 시간 규율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일하는 집합 노동을 전제한 획일적인 규제다"며 "임금체계 또한 시급한 개혁이 필요하다. 대기업과 공공기관 대부분이 활용하는 연공형 호봉제는 여러 계층 노동력의 필요와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고 동일노동과 동일임금의 가치를 구현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권순원 교수 등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2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안을 논의해 온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현행 1주 외에 '월 단위 이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2022.12.12.

우리 노동시장을 규율하는 법과 제도는 1953년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을 토대로 한다. 세상은 걷잡을 수 없이 빨리 바뀌고 있는데 법체계는 70년전 과거에 머물고 있단 얘기다. 무엇보다 노사관계는 대립과 갈등의 '1987년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현재의 제도로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기업의 성장과혁신을 뒷받침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연구회는 권고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노동시장 혁신'에 방점을 두고 세 가지 변화를 염두에 뒀다. 먼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기업규모, 고용형태, 성, 노조 유무 등에 따라 임금 및 근로조건 차이가 크다. 선택받은 소수 근로자는 내부노동시장과 노동조합에 의해 두텁게 보호받지만, 배제된 다수는 불안한 고용지위와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노동시장 분단은 점점 더 고착화되고 있다. 이중구조는 우리 노동시장의 역량 동원과 활약을 제약해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현행 법·제도 가운데 노동시장 분단과 격차의 확대·재생산을 촉진하는 핵심 원인을 찾아내 시급히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연구회의 생각이다.


연구회는 또 인구구조 변화와 저성장이 초래하는 노동시장의 활력 감소에 주목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2.6%를 차지하는 1680만명의 베이비붐 세대가 직장에서 은퇴하거나 불완전 고용상태로 진입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을 배경으로 지속되는 저성장 균형은 청년세대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기성세대가 노동시장에 진출하던 당시 10%를 웃돌던 경제성장률은 현재 2~3% 수준에 불과하다. 고령 근로자는 고용 불안을, 청년 구직자는 취업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모든 세대에게 양질의 일자리가 제공될 수 있으려면 기회를 제약하는 제도와 관행의 장애가 없어져야 한다.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권순원 교수 등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2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안을 논의해 온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현행 1주 외에 '월 단위 이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2022.12.12.

연구회는 끝으로 기술혁명과 경제구조 변화에 집중했다. 디지털 기술 혁신과 탈탄소친환경 경제로의 전환 등 산업구조 대변화는 노동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초래한 공정혁신, 노동과정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 근로시간 및 장소 관리의 자유화, 플랫폼을 매개로 한 새로운 일자리 확산 등은 노동시장의 다층적 변화를 초래하는 복합요인이다. 이런 변화와 함께 MZ세대의 노동시장 진입이 본격화하면서 일하는 방법과 문화, 생활세계의 가치 등이 다양화하고 있다.

이번 권고문의 주요 내용은 사실 고용노동부가 업무계획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안이다. 앞으로 권고문은 정부안으로 대폭 수용될 예정이다. 이날 발표 내용이 사실상 윤석열 정부가 3대 개혁과제 중 하나로 내세운 '노동개혁'의 큰 틀이 될 전망이다.

문제는 근로기준법 등 국회에서 법을 바꿔야 시행이 가능한 정책들이 많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더불어민주당)은 이번 권고안에 대해 이미 '장시간 근로' 정책이라며 반대 입장을 나타냈었다. 고용부로선 여당인 국민의힘과 함께 민주당을 설득해야 이번 권고안을 실제 정책으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회 관계자는 "우리 노동시장에 오랫동안 누적돼 온 문제들인 만큼 단번에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며 "근로시간, 임금체계 개혁과제에 대해선 입법적·행정적 조치에 조속히 착수해 주길 정부에 권고하고 추가 주요과제는 전문가 및 노사 등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에 착수해 구체적인 추진 방안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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