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가 결선투표까지 마친 결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이 상원 의석 과반(51석)을 차지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화당 레드 웨이브(Red Wave)는 실패했고, 합리적인 유권자들이 트럼프의 '정치 팬덤'을 이겼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미국이 이번 선거에서 포퓰리즘과 팬덤 정치에 흔들리지 않고 자유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다시금 제대로 증명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극단적인 정치 팬덤과 포퓰리즘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문제로 계속 지적되고 있다. 소수 극성 지지층이 SNS 여론을 장악하고, 마치 다수의 의견을 대변하는 듯한 과잉 대표성으로 토론과 타협이라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을 무너뜨리며 현실 정치를 뒤흔들고, 일반 대중에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특정 정치인을 광적으로 지지하는 팬덤은 그 정치인과 자신들을 비판하는 이들을 타도 대상으로 보고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그 광기에 정당 내에선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유, 토론할 수 있는 자유가 실종되고, 오히려 팬덤 정치를 이용하는 포퓰리즘 정치인의 목소리가 힘을 더 얻는다. 극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패거리 정치'는 자유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
미국의 자유주의 정치철학 연구자 스코티 헨드릭스(Scotty Hendricks)는 한국의 팬덤 정치 현상에 대해 "고대 아테네 때부터 있었던 문제인데 당시엔 지나치게 인기가 많은 정치인은 잠재적 폭군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10년 동안 추방했다"며 "공직 수행 능력 때문이 아니라 인기만으로 당선되는 팬덤 정치의 문제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기만 좋은 사람이 중요한 공직을 맡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잘 모르기 때문에 팬덤이 큰 정치인에 일반 유권자들도 투표를 하게 되는 것"이라며 "정책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유권자들이 깨닫도록 체험적인 민주주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유권자들이 인기만 많은 정치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알고 난 후엔 누구도 그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며 "민주주의 시스템 작동 방식을 잘 이해하고 자신의 투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코티 헨드릭스는 최근 미국에서 정치, 사회, 국제 이슈에 대한 날카롭고 깊이 있는 논평으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석학이다. 철학, 공공정책, 도시개발·계획을 전공했고, 미국 시카고 드폴대학교 공공서비스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자유민주주의 등 정치철학에 대한 연구와 기고, 강연을 활발히 하고 있다. 디지털 자산 신용평가 플랫폼 MetaVisa(메타비자)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도 지내는 등 학문 외적으로도 다재다능하다.
또 그 자신이 젊은 정치 활동가다. 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DSA·민주사회당)의 시카고시 전력망 자치화를 위한 연구위원회 공동의장과 Green Party of the United States(녹색당)의 아이오와주 전당대회 조직위원을 지냈고, 시카고시 선거관리위원회에도 참여했다.
그와 함께 자유민주주의, 팬덤정치, 대의제 등 정치철학과 현실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이태원 희생자 명단 공개, 더탐사 한동훈 법무부 장관 주거침입 논란 등에 대해서도 자유민주주의 관점에서 견해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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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지나친 정치인, 10년간 추방…'잠재적 폭군 될 위험'━
▶그런 문제는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 때부터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지나치게 인기가 많은 사람이 권력을 얻어 잠재적 폭군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10년 동안 추방했습니다. 물론 요즘엔 이런 방법을 쓰는 나라는 없죠. 하지만 공직 수행 능력 때문이 아니라 인기만으로 선거에서 당선되는 문제는 여전히 심각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에 대한 체험적인 '민주주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인기만 좋은 사람이 중요한 공직을 맡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일반 유권자들도 팬클럽이 큰 정치인에게 투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책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유권자들이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민주주의 시스템 작동 방식을 잘 이해하고 자신이 거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를 알게 해야 합니다. 유권자들이 인기만 많은 정치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알고 난 후에는 어느 누구도 그런 정치인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입니다.
- 한국 정치권에선 팬덤 정치를 옹호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직접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지지자들의 직접적인 참여가 더 민주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직접민주주의는 과연 국민 전체에 이로운 것입니까? 제도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유명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든 재미있는 예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직접민주주의 거버넌스를 채택한 도시에서 주민들이 참여해야 할 위원회 같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얘기하면서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수도사업 위원회나 회의를 예로 들었는데, 대부분의 주민들은 단지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 깨끗한 물이 나오길 바랄 뿐이지 그 위원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할 의향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유에 대한 열망', '민주주의의 유익함', '직접민주주의의 힘'을 모든 사람들이 하루 종일 회의에 참석하고 싶어하고, 모든 이슈를 투표로 결정하고 싶어할 것이라는 생각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저 같아도 매주 수도사업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할 것입니다.
- 미국 중간선거 결과 당초 예상을 깨고 민주당이 상원에서 과반을 확보하면서 이번 선거에선 트럼프식 팬덤 정치가 통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하지만 의회 구성은 상원과 하원이 각각 민주당, 공화당이 과반으로 양당이 향후 2년 간 권력을 분점하는 구조로 운영됩니다.
한국도 의회 구성이 복잡한 상황이 많습니다. 특히 5년 단임의 대통령 임기와 4년의 국회의원 임기가 엇갈리고,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을 책임 있게 추진하려고 해도 중간에 의회 구성이 바뀌어 입법 난항으로 정책 추진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대통령의 정책으로 여러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음에도 그러지 못한다면 제도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미국도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최근 중간선거 결과로 의회 구성이 사실 더 복잡해졌죠. 많은 이들이 앞으로 2년 동안 법안 처리가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정부나 의회가 아무 일도 하지 못하면 국민만 피해를 볼텐데요. 그래서 집권 정부·여당으로선 의원 선거 때 국민들로부터 표를 더 받아 과반 의석을 만들 수 있는 정책을 잘 입안하는 것이 관건이겠습니다.
다만 이런 문제는 대의제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대통령 집중제와 같은 특정 모델의 문제입니다. 영국식 의원내각제인 웨스트민스터 모델(Westminster model)의 경우엔 정부가 정책 결정 능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처럼 의회 구성 문제가 빈번한 경우엔 정책 입안이 효과적으로 보장될 수 있게 하는 제도 개선, 모델 개선을 고려해 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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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명단 공개, 유족 동의 구하지 않은 매체의 명백한 잘못" ━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공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수준의 사생활을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보편적이고도 오래 지속돼 왔습니다. 저로서는 사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직업에 따라 제한되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기본 인권과 사생활이 존중되는 사회라면 공직자의 기본 인권과 사생활도 마찬가지로 존중돼야 합니다. 저도 제가 살고 있는 시카고의 시장을 비판하자고 들면 할 이야기가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사안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나 해결책 마련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면 일방적인 비난은 무의미할 것입니다.
- '더탐사'는 또 얼마 전 '민들레'와 함께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전체 유가족의 동의 없이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최근 언론중재위원회는 해당 기사에 대해 "개인의 성명은 헌법상 인격권과 사생활 보호의 중요한 내용으로서 당사자(망인의 경우에는 유족)의 동의 없는 공표는 공중의 정당한 관심과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한 기본권 침해"라며 "명단에서 유족의 동의를 얻지 않은 희생자의 성명을 식별되지 않도록 하거나 수정·삭제"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이 문제는 사생활 이슈일 수도 있지만, 개인의 요구와 사회적 효용의 균형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사회적으로 어떤 행동을 촉발하기 위한 명단 공개였다고 하더라도, 명단 공개를 동의하지 않은 유족은 이미 비통함에 빠져 있던 차에 세상을 떠난 가족의 이름을 공개적인 명단에서 다시 보게 되고, 뭇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지 않도록 그 이름을 지우기 위해 고통을 더 겪어야 했을 것입니다.
제가 본 보도들에 따르면 해당 매체는 명단 공개 이전에 유족 전체의 동의를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여건이었습니다. 따라서 동의를 다 구하지 않은 것은 명백히 해당 매체의 잘못입니다.
- 급속한 사회적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개인의 요구도 보다 다양해지고 복잡해졌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이 그래서 더 어려워진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더욱 절실하게 자유가 확대될 필요성이 느껴집니다. 현대사회에서 보다 포괄적으로 개인의 자유가 확대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선 과거의 관점이 아닌 새로운 관점에서 자유를 이해해야 합니다. 기존까진 자유란 '장벽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죠. 예를 들면 나를 가로막는 장벽이 없으니 나는 어디든 걸어서 여행할 자유가 있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스웨덴까지 걸어서 여행한다고 할 때, 과연 거기까지 걸어갈 수는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묻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유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한 것입니다. 과거에 비해 문제가 더 복잡하고, 민주사회에 대한 도전이 많은 요즘에는 무언가를 할 때 그것을 막는 장벽의 유무보다는 실제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의 관점에서 자유를 생각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유를 유의미하게 확장할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 철학은 현대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자유주의는 인간의 권리를 격상시켜 세상을 바꿨습니다.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자유주의 사상은 우리의 사고에 계속 영향을 미치는, 놀라울 정도로 젊은 정치철학입니다. 그것은 수백년 동안 많은 것을 성취했습니다. 자유, 평등, 민주주의를 비롯해 우리가 살아가고 일하는데 있어서의 권리에 대한 목소리는 오늘날에도 크게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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