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시간제에 발목 잡히는 車부품업계…"유연한 노동정책 필요"

머니투데이 정한결 기자 | 2022.12.09 05:22

['52시간'에 갇힌 대한민국]5·끝-④이제 좀 회복되는데 물량 늘어나도 걱정

편집자주 | 대한민국 산업현장이 기술혁신과 디지털혁명 등으로 급변하고 있다. 또 일하는 방식과 노동 구조의 변화, 해외 인력 수급, 고령화에 따라 노동시장이 대변혁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주 52시간제'로 정해진 근로시간제도는 여전히 과거 패러다임에 머물고 있다. 기업들은 이 틀에선 새로운 산업환경에 대응하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근로시간제도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머니투데이가 실제 산업현장의 현실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지금은 물량이 없어서 괜찮습니다. 그런데 정상화되면..."

국내 한 자동차부품업계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글로벌 자동차업계에 닥친 반도체 공급난이 진정되면서 부품업계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지만 걸림돌도 남았다. 주52시간제가 대표적으로, 업계에서는 지나친 노동 규제가 사업 정상화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9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부품업계는 일반적으로 완성차업체의 주문에 따라 사업장을 가동해 근무시간이 타업종보다 불규칙하다. 주문이 들어와 공장을 가동하는 주에는 80시간도 부족하지만, 없는 주에는 52시간을 채우기도 버겁다.

업계 관계자는 "(정상화로) 갑자기 주문이 몰려 사람을 써야하는 상황에서 52시간제에 걸려 공장을 가동하지 못하면 납품을 못한다"며 "납품을 못하면 (고객사로부터) 페널티를 받고 타격을 받는다"고 밝혔다.

그동안 코로나 확산과 반도체난으로 부품 생산 자체가 차질을 빚어 이같은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다. 반도체난이 최근 진정되기 시작하면서 주52시간제가 향후 사업 정상화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자동차부품업계는 지난 3년간 혹독한 시기를 보냈다. 한국자동차연구원(한자연)이 자동차 부품 외부감사대상 법인기업 1296개를 분석한 결과, 코로나 확산으로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이 급감한 2020년 부품기업들의 매출은 마이너스(-2.8%)로 진입했다.

회복세를 보였던 지난해에는 매출은 올랐지만 원자재값이 급등하면서 수익률은 줄었다. 매출증가율보다 원가상승률이 더 높은 기업은 전체의 약 35%에 달했다. 특히 중소기업의 피해가 컸다. 철·알루미늄·구리·니켈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전년보다 100% 이상 급등했고, 이를 중소기업이 고스란히 부담하면서 영업이익률은 1.6%에 그쳤다. 한자연은 "사실상 영업활동을 통해 창출하는 이익이 거의 없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노동 규제가 부품업계의 미래차 전환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품업계는 이미 수익률 하락으로 미래차에 투자할 여유가 줄어든 상황이다. 지난해 자동차 부품 총 설비투자액은 3조7840억원으로 전년보다 9% 감소했다. 같은 기간 자동차와 엔진 설비투자액이 12.3% 증가한 것과 대조되는 수치다.

노동 규제로 생산 차질이 장기화돼 수익성이 담보되지 못하면 전환 시점이 더욱 늦어질 수 있다. 한자연 설문 결과 부품기업의 72.6%가 미래차 전환에 대한 계획이 없다고 밝혔으며, 그 이유로 자금 부족(42.25%)이 1순위로 언급됐다.

부품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주52시간제 등의 노동 규제 유연화를 촉구하는 이유다. 강남훈 자동차산업연합회 회장은 지난 7일 제31회 자동차산업발전포럼에서 "주 단위 근로시간 제한, 불법파견 판결 등 우리 노동 규제는 여전히 경직적"이라며 "국내에 경쟁력 있고 지속 가능한 미래차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협력적이고 유연한 노동시장 구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완성차업계도 52시간제로 생산 차질을 빚기는 매한가지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노조와의 임금단체협상에서 일요일 특근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반도체 공급난으로 지나치게 길어진 자동차 출고 일정을 특근을 통해 해소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노조 측에서 "임금보다 건강권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반발하면서 결국 무산됐고, 지금까지도 일요일 특근 확대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항구 한자연 연구위원은 "52시간을 현재처럼 주 단위가 아니라 월 단위로 바꾸는 등의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며 "많은 업계 종사자들도 연장근무 등을 통한 추가 수익을 원하지만, 주52시간제로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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