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기다리니 여름 다 갔다…에어컨 AS 대란 뒤에도 주52시간

머니투데이 민동훈 기자 | 2022.12.09 05:15

['52시간'에 갇힌 대한민국]5·끝-③여름철 일 몰리는 가전 서비스 업계...피해는 소비자에게

편집자주 | 대한민국 산업현장이 기술혁신과 디지털혁명 등으로 급변하고 있다. 또 일하는 방식과 노동 구조의 변화, 해외 인력 수급, 고령화에 따라 노동시장이 대변혁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주 52시간제'로 정해진 근로시간제도는 여전히 과거 패러다임에 머물고 있다. 기업들은 이 틀에선 새로운 산업환경에 대응하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근로시간제도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머니투데이가 실제 산업현장의 현실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자료사진=뉴시스


#"고객님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국내 한 가전회사 AS(사후관리) 부서에서 일하는 A씨는 지난 여름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온다. 특히 여름이면 에어컨 수리 요청이 몰려들기에 AS기사들의 업무부담이 극심해지는 시기다. 애써 힘들게 수리를 해주고도 "수고했다"는 따뜻한 말보단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는 불평이 더 많았다. 고객들이야 지나가는 말로 불평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고객만족평가를 받아야 하는 기사 입장에선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법으로 주 52시간 이상 근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사람을 더 뽑지 않으면 감당이 되지 않는다는 걸 회사도, 직원도 안다. 회사에 인력충원을 거듭 요청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A씨는 "여름엔 일이 몰리고 겨울엔 한가한 업종의 특성을 우리 근로기준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면서 "탄력적인 주 52시간제 운영은 회사나 종업원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더 중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2019년 주52시간제 도입 이후 국내 가전업계에선 매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와 LG전자 등 국내 주요 가전기업들이 서비스센터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AS 대란은 더욱 심해졌다. 아무리 고객 요청이 밀려있어도 주52시간을 넘는 초과근무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보면 몰려드는 AS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가전기업들이 인력을 운용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가전 AS 경우 다른 업종과 달리 업무량이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통상 AS센터 직원들은 가전제품 전반의 1차적인 수리를 담당한다. 냉장고, 세탁기 등 일반 가전의 경우 1년 내내 사용하는 제품인 만큼 AS 수요도 일정하다. 하지만 계절가전인 에어컨의 경우 5월부터 8월까지 일이 몰린다. 겨우내 꺼놨던 에어컨을 다시 틀기에 그만큼 AS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에어컨 AS 수요에 맞춰 인력을 늘리면 가을과 겨울엔 인력이 남아도는 일이 벌어진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사람을 뽑을 수도 없는 구조라는게 기업들의 설명이다.


그나마 삼성전자서비스, LG전자 등 대기업의 사정은 상대적으로 낫다. 대기업의 경우 자금력도 있고 인력풀도 충분한 만큼 여름철 한시적으로 인력을 충원해 감당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난 여름 에어컨 AS를 받기 위해선 최소 2주에서 최대 한달이상 기다려야 했다. 중소가전업체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기업들이 여름철 인력을 싹쓸어가는 까닭에 사람을 구할 수가 없다. 결국 민간 수리업체로 고객들을 유도하지만 서비스 품질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는 결국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B사 서비스센터 직원은 "비정규직으로 일할때는 초과수당을 받는 방식으로 초과근무를 할 수 있어서 급하면 야간에도 업무를 처리할 수 었었다"며 "하지만 올해부터는 초과근무 자체가 안되는 상황이어서 AS를 받기 위해 하루라도 더 기다려야 하는 고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렌털업체의 사정도 비슷하다. 수리 기사가 야간에 출장을 나가면 주 52시간제에 위배될 수 있어 초과근무를 하지 않는다. 이는 결국 AS의 전반적인 만족도 하락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렌털업계의 하소연이다. B사 관계자는 "렌털의 경우 제때 AS를 하지 못하면 해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AS가 몰리는 여름철이면 비상이 걸릴 수 밖에 없다"면서 "탄력적으로 인력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탄력근로제, 선택근로제, 재량근로제 등 유연근로제도도 가전AS와 같은 업종에선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대 6개월 정산기간에 1주 평균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하는 탄력근로제는 한 주 최대 근로시간을 64시간(1주 추가 연장근로시간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총 근로시간만 정해놓는 선택근로제는 정산기간이 3개월에 그친다. 1년 단위로 업황이 달라지는 만큼 정산기간을 늘리거나 예외를 허용해 줘야 해결이 가능하다.

업계에선 주 52시간제도의 경직된 운용의 문제는 일부 기업의 브랜드 가치나 경쟁력 하락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가전 AS만해도 직접적인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당장 폭염을 앞두고 에어컨 수리를 제때 받지 못한 피해는 그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모든 영역에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근로시간 규제 방식 자체가 문제"라면서 "제도의 유연한 적용을 허용하되 의무휴식제와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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