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시장 글로벌 1위를 노리는 삼성전자 목표에 빨간불이 켜졌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대만 TSMC가 미국에 대규모 추가 반도체 투자를 결정하면서 경쟁이 한층 더 가열되는 양상이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선 기업 경쟁력에 더해 한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7일 반도체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TSMC가 6일(현지시간) 애리조나주 피닉스 공장 장비 반입행사에서 미국 내 반도체 투자 규모를 기존보다 3배 이상 늘리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TSMC는 기존 피닉스 공장 투자액(120억달러)의 3배 이상인 400억달러(약 52조8400억원)를 들여 추가 생산공장을 설립한단 계획이다.
글로벌 파운드리 점유율 2위 삼성전자로선 반가울 리 없는 소식이다. 업계는 TSMC가 대만의 지정학적 리스크 탈피뿐만 아니라 추격자인 삼성전자를 따돌리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고 보고 있다. 수주 기반인 파운드리 산업에선 생산규모 확대가 곧 점유율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리사 수 AMD CEO는 이날 행사에 참석해 TSMC 애리조나 생산 반도체 칩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애플과 AMD는 엔비디아, 퀄컴과 함께 파운드리 주요 고객사다.
고객사들이 TSMC로 몰려가면 이미 50%가 넘는 점유율을 확보한 TSMC와 삼성전자간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 삼성전자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기존 공장 외에 현재 테일러시에 170억달러를 들여 파운드리 제 2공장을 짓고 있지만 TSMC가 이날 발표한 규모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KIET) 전문연구원은 "공장을 늘리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진다. 또 (TSMC가) 생산량이 늘어나면 규모의 경제 달성이 쉬워진다"며 "삼성전자로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그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의미니 좋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TSMC의 생산능력(CAPA, 캐파) 확대에 맞서 삼성전자가 기술 경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봤다. 업력 차이에 따른 캐파 차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만큼 기술력에 앞서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파운드리 최선단 기술인 3나노미터(㎚, 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을 TSMC보다 앞서 양산하며 기술 경쟁력을 입증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의 기술경쟁이 치열해지면서 TSMC가 이번 투자를 발빠르게 발표한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선두 경쟁은 결국 기술력에 의해 좌우된다"며 "삼성전자의 3나노 양산이 수월하게 되면 고객사들도 기술력있는 곳으로 몰리기 때문에 TSMC도 공격적 투자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업계는 TSMC의 대규모 투자가 미국의 반도체산업 지원법 제정 후에 이뤄졌다는 점을 꼬집으며 결국 한국 기업이 글로벌 반도체 경쟁의 승기를 잡으려면 한국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삼성전자와 TSMC 모두 본토에서 첨단 기술을 먼저 개발, 제조한 후 미국 공장으로 옮겨간다. 삼성전자는 평택을 첨단공정 거점으로 두고 3나노 공정을 평택에서 양산하고 있다. 이번 신규 투자를 발표한 TSMC 역시 대만 거점 원칙은 유지하고 있다. TSMC는 미국 공장에서 2024년과 2026년 각각 4나노, 3나노 반도체 칩을 생산하기로 했는데, 대만에선 올해부터 3나노를 생산하고 2025년엔 2나노를 생산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사들이 파운드리 기업을 선택하는 조건이 되는게 기술경쟁 아니냐"며 "기술경쟁은 본토에서 먼저 시작돼 시차를 두고 해외로 나간다. 결국 국내 투자가 중요한만큼 국회 특별법 통과 등 정부 지원이 해결돼야 기업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팽 연구원은 "고객사들로선 파운드리가 미국에 있든 한국에 있든 큰 차이가 없다"며 "미국 정부가 주는 세제 혜택과 인프라 지원 그 이상으로 한국 정부가 지원해 삼성전자가 우리나라에서 기술 개발, 공장 확장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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