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1세대), 덩샤오핑(2세대) 이어 중국의 3세대 지도자인 장 전 주석은 퇴임 이후에도 후진타오 시대까지 중국 정치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다 2018년 시진핑 1인 체제가 굳어진 이후부터는 전직 국가원수 예우만 받아왔다.
1926년 장쑤성 양저우에서 태어난 장 전 주석은 공산당 간부 자제인 태자당 출신으로 분류됐다. 그러다 1985년 상하이 시장이 된 이후 출세 길을 밟기 시작했다. 공산당 내 최대 계파였던 상하이방 기반이 만들어진 때이기도 하다. 특히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덩 전 주석의 눈에 들며 중국공산당 내 실세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중국 정부의 무력 진압을 지지하고 사태를 진압한 공로를 인정받아 당 총서기 자리에 앉은 데 이어 당시 덩 전 주석이 맡고 있던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도 물려받으면서 명실상부한 '차기 후계자'로 지명됐다.
장 전 주석은 중국을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 미국·유럽 등 서방과의 외교관계 유지 큰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또 1997~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극복,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 유치 성공 등 중국이 미국 다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기도 했다. 2000년엔 "새 시대의 중국공산당은 선진 생산력의 발전 요구와 선진 문화발전 방향을 대표해 광범위한 인민의 근본 이익을 대표해야 한다"는 이른바 '3대 대표론'을 발표하고, 2년 뒤 이를 공산당 당헌으로 넣기도 했다.
중국공산당의 3대 정파 중 하나인 상하이방을 탄생시켰다. 그는 덩 전 주석이 1997년 2월 세상을 뜨자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 상하이 출신 인사들은 대거 발탁했다. 경제발전을 중시하고 개방정책을 따르는 상하이방은 장 전 주석과 함께 중국 정계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장 전 주석은 2003년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에 자리를 내준 이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지만,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시 주석의 등장과 함께 힘을 잃었다. 시 주석의 반부패 전쟁 타깃에 장 전 주석의 옛 측근들을 비롯해 두 아들까지 포함되면서 그의 영향력도 자연스레 약화했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