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비오는 광장에서 함께 뛴 90분…"졌지만 잘싸웠다"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유예림 기자 | 2022.11.29 01:03

[카타르2022]

"졌지만 잘 싸웠다"
28일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대한민국과 가나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거리 응원에 나선 붉은 악마들은 울고 웃었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끝까지 광화문 광장을 지킨 시민들은 경기가 끝난 후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아쉬운 듯 자꾸 스크린을 돌아봤다.



광장과 호프에서 "대한민국"...4000명 붉은악마 함께 뛰었다


붉은악마와 시민들이 28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022 카타르 월드컵 H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를 응원하며 후반 2대3으로 끌려가자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뉴스1
붉은 악마는 저녁 7시쯤부터 광장을 채웠다. 주최 측은 혹시 모를 인파 사고를 우려해 광장에 약 100m씩 구간을 나누고 구간당 약 1000명 인원이 차면 진입을 막았다. 전반전이 시작할 즈음 광장 3개 구역이 응원단으로 가득 찼다.

이날 서울에는 시간당 5~10mm 비가 왔다. 하지만 궂은 날씨에도 전국에서 응원단이 몰려들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 거리에서 완구점을 운영하는 송동호씨(66)는 '대한민국'이라 적힌 흰 목도리를 집에서 갖고 왔다. 4년마다 월드컵 때마다 집에서 갖고 나온 목도리다. 그는 "16강 진출을 넘어 4강까지 가면 좋겠다"며 "비가 오지만 꼭 이겼으면 해 응원하러 왔다"고 했다.


붉은 악마는 대표팀과 함께 호흡했다. 화면 속 현지 응원단 소리에 맞춰 광장에 붉은악마도 '대~한민국' 외쳤다. 전반 초반 쇄도하는 가나 공격진 공을 대표팀 수비수가 걷어내자 '잘한다'라며 환호하는 응원단도 있었다.

환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침묵으로 바뀌었다. 대표팀은 전반 24분과 34분 연달아 실점했다. 붉은악마는 한순간 조용해졌다. 이날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다는 20대 남성은 "(수비가) 조금 불안했다"고 했다.

대표팀은 밤 10시50분쯤 전반전을 2대0으로 마무리했다. 전반전 경기 결과가 아쉬운 듯 일부 시민들은 자리를 떠났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은 "우리 대표팀은 강팀에 강하고 약팀에 약한 것 같다"고 했다. 경기 전 가나 대표팀은 상대적 약체로 꼽혔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 시민은 광화문광장을 지켰다. 오히려 더 많은 시민이 거리로 몰려나오며 후반전이 시작한 시점에 광화문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5000여명(주최 측 추산)까지 늘었다. 전반전 동안 스크린 앞 1, 2구역만 채웠던 응원단은 3구역도 일부 채웠다.

이날 저녁 7시쯤부터 광장에 나온 박해선씨(36)는 열렬한 국내 축구 팬이고 16세 아들은 유소년 선수이다. 박씨는 "지고 있지만 경기 자체는 재밌었다"며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붉은악마와 시민들이 28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022 카타르 월드컵 H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를 보며 후반 조규성의 동점골이 터지자 환호하고 있다. /사진=뉴스1

대표팀은 자리를 지켜준 응원단에 '골로' 보답했다. 후반 13분, 16분 대표팀 조규성 선수가 연달아 골을 넣었다.

8세 아들 목말을 태우던 김창종씨(42)는 두번째 골이 들어간 순간 번쩍 뛰었다. 아들도 기분 좋은 듯 "와" 소리 질렀다. 김씨는 "아들에게 이런 경험을 시켜주고 싶어 대전에서 오후 1시쯤 올라왔다"며 "2점 뒤질 때는 속 상했는데 확실히 벤투 감독의 전략이 빛을 발한 것 같다"고 했다.

2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주점에서 손님들이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를 보며 응원하고 있다./사진=유예림 기자

같은 시각 광화문 인근 주점에서도 환호가 터져 나왔다. 득점의 순간 서울 종로구의 한 주점 손님 30여명은 '번쩍' 뛰었다. 이들은 주점 측이 나눠준 빨간 막대 풍선을 두드렸고 자축하듯 맥주잔을 부딪쳤다. 직장인 박미정씨(47)는 이 주점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다는 얘기를 듣고 퇴근 후 친구들과 주점을 찾았다. 박씨는 "마치 2002년 월드컵 때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했다.


직장인 김태우씨(46)도 "실망하고 있다가 동점이 돼 깜짝 놀랐다"며 "손흥민 선수가 한골을 넣어서 3대2로 역전승하면 좋겠다"고 했다.


"졌지만 잘 싸웠다" 경기 져도 홀가분...청소도 깔끔히


붉은악마와 시민들이 28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022 카타르 월드컵 H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 응원을 마치고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사진=뉴스1
동점이 된 후 응원단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대표팀 김민재 선수가 헤딩으로 공을 걷어내면 다 같이 손뼉을 쳤다. 이강인 선수의 프리킥이 골키퍼에 가로막힐 때는 골인줄 알고 번쩍 뛰었다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후반 23분 대표팀이 다시 실점하자 뜨겁게 달아올랐던 광화문광장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스크린에 실점 장면이 다시 재생되는 동안 시민들은 할 말을 잃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득점 순간 번쩍 뛰었던 김창종씨는 달래려는 듯 옆에 선 아들을 토닥였다.

경기는 3대2로 마무리됐다. 응원단은 가까운 광화문역으로 향하면서도 아쉬운 듯 이따금 뒤돌아 스크린을 바라봤다.

임나경씨(20)는 "오늘 아쉬운 장면이 너무 많았다"면서도 "그래도 잘 해줬다."고 했다. 김유성씨(33)도 "졌지만 잘 싸웠다"며 "포르투갈 경기 때 전술적으로 잘 준비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응원단은 각자 가져온 쓰레기를 도로 가져갔다. 광화문 광장 곳곳과 광화문 역에 놓인 쓰레기통에 우비 등을 버렸다. 경기가 끝나고 30분쯤 지난 오전 0시30분 광화문 광장에는 한창 정리 중인 펜스 외에는 쓰레기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이날 경기는 '이태원 참사'가 난 후 두번째 거리 응원이었다. 경찰은 광화문광장에 기동대 12개 부대, 특공대 20명 등 경찰 900여명을 투입해 혹시 모를 인파 사고를 방지했다. 주최 측도 펜스 주위로 10m 간격마다 안전요원을 배치해 인파를 통제했다.

이날 밤 서울 기온 14.7도였다. 하지만 비가 내려 체감온도는 더 떨어졌다. 서울시는 저체온증 등의 환자가 발생할 경우 대처할 수 있도록 난로가 설치된 '임시대피소'를 마련했다. 주최 측도 임시대피소에 핫팩을 구비해뒀다.

이날 지하철 1·2·3·5호선을 자정부터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상·하선 2회씩 총 16회 증회 운행했다. 막차 시간은 종착역 도착기준 다음날 오전 1시로 평소와 같다. 광화문 경유 46개 시내버스 노선 막차 시간은 광화문 출발 기준 오전 0시30분으로 연장한다.저녁 7시부터 경기가 끝나는 시간까지 버스도 세종문화회관 정류장은 무정차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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