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 이게 뭐야…끄윽 싫다.'
나도 모르게 잡았던 걸 홱 놓았다. 묵은 악취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불쾌했다. 그 기분을 추스를 새도 없었다. 다른 플라스틱 쓰레기가 빠르게 밀려오고 있었다. 나갔던 정신이 0.5초 만에 돌아왔다. 달아나려던 다른 플라스틱 용기를 또 붙잡았다.
방금 만졌던 음식물 탓에 장갑이 미끌미끌했다. 가뜩이나 빠른 컨베이어 벨트 위 쓰레기를 잡기가 힘들었는데, 꽤 곤란해졌다. 더 집중했다. 플라스틱 쓰레기 하나를 잡는 동안 두 개가 오른쪽에서 몰려왔다. 재빨리 집었던 걸 놓고, 두 개를 오른쪽으로 다시 밀고, 그걸 빠르게 잡았다.
쓰레기 폭격에 맞서 도와준 건, 앞에서 함께하던 작업자 분 뿐이었다. 그는 내가 놓친 플라스틱 쓰레기를 톡 하고 내쪽으로 밀어주었다. 나 역시, 그가 집고 있던 캔 쓰레기가 보이면 톡, 하고 그쪽으로 건넸다. 쓰레기를 버린 건 사람이었고, 끝없이 재촉하며 옮기는 건 컨베이어 벨트였지만. 그걸 처리하는 것도, 거기서 오롯이 서로 의지할 이도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매주 목요일, 재활용 분리수거장에 버려버리면 끝났었던 쓰레기를 그리 빠짐없이 다시 마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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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분리수거 했는데…왜 55%만 살아남을까 싶어서━
이날 체험엔 정주희 기후캐스터가 함께했다. 그는 평소 환경과 기후위기에 관심이 많아 목소리를 부단히 내고 있다. 텀블러와 다회용기를 챙겨 다니며 지구를 위한 작은 일을 하고, 그걸 부지런히 SNS 피드에 올린다. 다함께 하자는 거다. 재활용 센터도 직접 와서 보고 싶어했다. "일하는 분들의 고충을 직접 들어보고, 뭘 할 수 있는지 알리고 싶다"며.
여기 오는 이 많은 쓰레기 중 얼마나 다시 쓸 수 있는 걸까. 서울시 재활용 쓰레기의 선별률은 고작 55%(2018년 기준). 재활용할 수 없는 건 불에 태우거나 땅에 묻는다. 전국적으로 따져도 수치는 비슷했다. 지난해 환경부 통계를 보니, 재활용률이 59.5%(2020년 기준)에 불과했다.
궁금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분리수거를 한다고 했는데, 왜 그것밖에 안 되는지. 직접 해보면 알 일이었다. 정 기후캐스터와 작업 조끼를 입고 안전모를 쓰고 장갑을 낀 뒤, 선별 작업을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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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쓰레기가, 마구 뒤섞여서 밀려왔다━
거기선 이미 서너 명의 노련한 작업자들이, 서서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내게 주어진 첫 임무는 '비닐 골라내기' 였다.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온 복잡하고 많은 쓰레기 중, 비닐만 쏙쏙 빼내면 되는 거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할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큰 오산이었다. 비닐만 빼는 것조차 쉽잖을 만큼, 재활용 쓰레기는 마구잡이였다. 큰 비닐이라고 생각해서 잡았더니, 그 안에 플라스틱과 스티로폼과 종이가 마구 들어가 있어 당황했다. 그걸 빼려고 비닐을 잡고 흔들었더니, 꽉 틀어박혀 잘 빠지지도 않았다. 비닐만 분리해내는 것도 그리 힘들었다.
진땀 흘리며 숨이 턱턱 차오를 만큼 비닐 쓰레기만 열심히 골라내었다. 손이 4개여도 모자랄 정도였다. 집고 또 집어도 못 집은 비닐 쓰레기는 '어쩔 수 없지' 하며 흘려보냈으나, 그러는 마음은 무거웠다. 다시 쓸 수 있는데, 내 한계로 지구에 잘못하는 기분이어서.
비닐을 골라 아래로 내려보내야 하는데, 비닐이 너무 많아 중간에 막히기까지 했다. 쇠 막대기로 꾹꾹 누르고 또 눌러, 겨우 아래로 내려보냈다. 지구도 이쯤 되면 쓰레기에 체한 게 아닐까 싶었다. 목구멍까지 차올랐을지도.
10여 분도 안 돼, 목과 어깨, 허리까지 욱신거리기 시작해 '빨리 쉬고 싶다'는 맘이 절로 들었다. 그때 새삼 깨달았다. 이 모든 게, 실은 다 사람이 하는 일이었단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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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배달 용기 지옥'…컨베이어 벨트를 멈추고 싶었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 손이 가야만 하는 일투성이였다. 예를 들면, 빛을 쏴서 반사도에 따라 쓰레기를 선별하는 자동화 공정이 있다. 하지만 검은색 플라스틱 쓰레기는 빛에 반사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계가 골라낼 수 없단다. 이런 건 일일이 사람이 골라내야 한다.
검은색 플라스틱 쓰레기를 선별하는, 또 다른 작업대 앞에 섰다. '검은 것만 고르면 되니까', 그리 쉽게 생각했다. 또다시, 큰 오산이었다. 비닐 쓰레기를 고르는 것보다 더 벅찬 일이 쏟아졌다.
컨베이어 벨트 속도가 빠른데, 플라스틱 쓰레기를 고르는 속도가 못 쫓아갔다. 부피가 큰 것도 많아, 집다가 놓치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할까,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으나, 엄습하는 플라스틱 더미를 감당할 재간이 도저히 없었다. 20분 정도 쉴 틈 없이 그러고 있으니, 오장육부에서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가장 많았던 건 플라스틱 배달 용기. 큰 것, 중간 것, 작은 것, 동그란 것, 네모난 것, 뭐라 할 것 없이 온갖 모양의 배달 플라스틱 쓰레기가 정말 많았다. 계속 서서 일하고 있으니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눈도 쑤시고 죽을 맛이었다. '잠깐이라도 허리 좀 펴게, 쓰레기 좀 그만, 제발'이라며 속으로 계속 외쳤다. 컨베이어 벨트를 멈추고 싶을 지경이었다.
1시간 정도 지나니 파김치가 됐다.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내 앞에서 일하며, 그 시간을 함께 견딘 작업자가 이리 말했다. "제발 쓰레기 좀 잘 버렸으면 좋겠어요. 음식물도 씻고요. 그것만 되어도 참 좋겠습니다." 지쳐 있던 그의 입에서 나온, 너무나도 상식적인 이야기. 글에 꼭 잘 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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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 위험하니, '유리 선별 체험'은 안 된다고━
여기, 도봉구 재활용 선별장도 한 번 불탔었다. 추정 원인은 '부탄가스' 쓰레기라고 했다. 잔여 가스가 남은 부탄가스 쓰레기를 재활용에 누군가 버렸고, 그걸 선별한 뒤 압축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한 거란다. 다행히 인명 피해가 없었으나, 하마터면 작업자들 생명도 위험할 뻔했다. "위험한 부탄가스 쓰레기는 꼭 가스를 빼고 버려달라"고, 도봉구청 자원순환과 관계자가 극히 상식적인 당부를 했다.
또 부서지거나 깨진 유리를 섞어서 재활용 쓰레기에 버린단다. 그 때문인지, '유리 선별' 체험도 하고 싶다고 했으나 허락해주지 않았다. 유리 조각에 찔려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괜한 걱정과 폐를 끼칠까 싶어, "알겠다"며 포기했으나, 맘이 좋지 않았다. 그 위험한 매일의 노동을, 어느 작업자는 하는 거니까.
유리는 아니지만, 깨진 플라스틱엔 나도 이날 체험하며 찔렸다. 정신없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골라내느라, 파편이 날카롭단 생각을 못 하고 순식간에 확 잡았다. 장갑을 꼈고, 살짝 잡았기에 다행히 다치진 않았다. 이걸 버린 사람은, 이 쓰레기를 누군가 손으로 또 잡을 수 있단 생각을 했을지.
날카로운 물건은 세심하게 버려야 한다. 깨진 유리, 칼 등 크기가 작은 건 신문지나 두꺼운 상자로 안전하게 감싼다. 그걸 테이프로 단단히 붙이고, 종량제 봉투에 버린다. 깨진 거울, 화분 등은 불연성 쓰레기 전용 봉투에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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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에 꽂는 '그거'는, 어떻게 버릴까?━
- 기본 수칙 4가지 : 1. 내용물을 비운다. 2. 이물질을 헹군다. 3. 라벨, 테이프 등 다른 재질은 분리한다. 4. 종류별로 구분하여 배출, 섞지 않는다.
- 택배 상자 : 테이프나 운송장 스티커 등은 뜯는다(다른 재질 분리). 상자는 잘 펴고 쌓아서 배출한다.
- 종이컵 : 내용물을 비우고 물로 씻는다. 포개어 배출한다. 오염된 경우엔 일반 쓰레기.
[종이류 ② : 두루마리 휴지나 티슈로 재활용합니다]
- 종이팩 : 우유, 두유, 소주, 쥬스팩 등. 빨대나 비닐 등은 뗀다. 내용물을 비우고 물로 헹군다. 일반 종이류와 섞이지 않게, 종이팩 전용 수거함에 배출한다. 전용 수거함이 없는 경우, 가급적 끈으로 묶어 배출한다.
[플라스틱 용기류 : 건축용 자재 등으로 재활용합니다]
- 플라스틱 용기류 : 용기에 PVC, PE, PP, PS, PET, PSP라 쓰여 있거나, 색깔이 있는 페트병. 내용물은 비우고, 물로 씻어서 배출한다. 플라스틱 옷걸이, 칫솔, 낚싯대, 유모차 등은 해당 안 되므로, 종량제봉투 혹은 대형폐기물로 배출한다.
[투명 페트병 : 의류, 신발, 가방 등으로 재활용합니다]
- 투명 페트병 : 생수나 음료 페트병. 내용물을 비우고 이물질을 제거해 배출. 비닐 라벨을 떼고, 용기를 누른 뒤, 뚜껑을 닫아 별도로 배출한다. 투명 페트병만 별도 배출하는 이유는, 이게 고품질 재생원료여서다. 그러나 다른 플라스틱과 섞여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으므로, 분리해 배출하는 거다.
[이건 재활용이 안 되니, '종량제봉투'에 버립시다]
- 광고지나 전단지 같은 코팅 종이, 음식물이 묻은 비닐, 고무장갑, 기름종이, 영수증, 기저귀, 스티커(운송장), 알약포장재, 나무젓가락, 칫솔, 보온 또는 보냉팩, 종이테이프, 멀티탭, CD나 DVD, 고무대야, 돗자리, 장판 등.
- 피자 : 박스는 찢어보고 코팅지가 아니면 종이에 버린다. 스파게티가 담겨 있던 용기는 씻어서 캔으로 배출한다. 소스가 묻은 비닐은 헹궈서 '비닐'에 분리 배출한다. 피자에 꽂는 삼발이처럼 생긴 '그것(피자 세이버)'은, 소재를 알기 어려우므로 종량제봉투에 버린다.
※ 기사가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그 외 재활용 배출 정보는 <내손안의 분리배출> 앱을 내려 받으면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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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 배달하니, 다회용기에 담겨왔다━
재활용 선별 체험이 그리 다 끝난 뒤, 정주희 기후캐스터가 남긴 말에 크게 공감했다. 기획할 땐, '고생스럽지 않게, 재활용률 높일 수 있게 잘 버리자'에 초점을 맞췄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애초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거였다.
캐서린 캘로그 작가도 그의 책 <1일 1쓰레기 1제로>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활용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3R(감량, 재사용, 재활용)에서, 재활용(Recycle)이 제일 마지막에 있는 이유"라고.
기다리니 배달이 왔다. 공원 출입구서 받았다. 배달 기사님이 검은색 천 가방을 건네줬다. 열어보니, 스테인레스로 된 다회용기에, 매콤 크림 파스타가 따끈따끈하게 담겨 있었다. 다회용기가 보온을 더 잘해줘서인지 김이 모락모락 날만큼 따뜻했다. 노른자를 터트린 뒤 섞어서, 맛있게 다 먹었다. 그걸 검은색 가방에 넣어 '반납 신청'을 했다. QR코드가 안내하는 링크로 들어가 반납 장소를 선택, 놓아두면 알아서 회수해 가는 거였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선택을 하자."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목요일이 됐다. 문득, 궁금해 다시 꺼냈다. 바닥에 펼쳤다. 하나씩 생각해봤다.
'이 쓰레기는 꼭 나올 수밖에 없는 거였을까.'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알맹상점'에 갔다. 여긴 말 그대로 '알맹이'만 판다. 예를 들면 샴푸 통과 샴푸를 파는 게 아니라, 샴푸만 판다. 가져간 용기에 쭉쭉 눌러 담은 뒤, 무게를 재서 계산하는 방식이다.
뒤로 멘 가방 안엔 가져간 '용기'가 있었다. 쭈뼛거리며 이를 꺼내었다. 클렌저 200g을 쭉쭉 짜서 담았다. 그걸 가져가서 계산했다. 그리 처음으로, (마음의) 용기를 내어 (플라스틱) 용기를 냈다(그린피스 캠페인). 기분 좋았다.
또 문득 알게 됐다. 실은 내게 필요한 건 '알맹이' 뿐이었는데, 늘 '담는 쓰레기'까지 함께 사 왔단 걸.
▼▼▼ 재활용 쓰레기를 직접 선별한, <남기자의 체헐리즘> 영상도 많이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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