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수험생만큼 간절했다…새벽 4시, 절·교회서 두 손 모은 엄마

머니투데이 정세진 기자, 최지은 기자, 원동민 기자 | 2022.11.17 08:23
17일 오전4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순복음 교회 '2022 가정과 자녀 축복 및 추수감사 특별새벽기도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예배를 앞두고 기도하고 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는 이날 수능 시간표에 맞춰 수험생을 위한 기도회가 진행될 예정이다./사진=최지은 기자
"오늘 수능을 보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부처님의 자비로 불도를 떠나 모든 수험생들이 시험을 잘 보길…"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7일 이른 오전부터 서울 시내 예배당과 사찰에는 신도들이 모여들었다. 평소 '새벽예불', '새벽예배'에 참여하는 신도에 더불어 이날은 수능을 보는 아들, 딸, 손자, 손녀를 위해 기도하러 나온 신도들이 더해졌다. 대다수 사찰과 교회에서 수능 시간표에 맞춰 오전 8시40분부터 본격적인 '수능기도'를 시작하지만, 간절한 마음이 더해진 학부모들은 새벽 4시부터 절과 교회를 찾았다.


'새벽 4시', 예배당 가득 메운 성도들 "솔로몬의 지혜가…은혜 속에서 시험보길"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순복음 교회 '2022 가정과 자녀 축복 및 추수감사 특별새벽기도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예배를 앞두고 기도하고 있다./사진=최지은 기자
새벽 4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순복음 교회 앞은 새벽 예배를 드리러 온 성도들로 북적댔다. 아직 어두운 이른 아침, 서울과 수도권에서 지역별로 사람들을 태운 버스들이 교회 정문에 도착하자 성도들이 나와 예배당안으로 들어갔다.

예배 시작은 새벽 5시지만 성도들은 일찌감치 도착해 입으로 소리 내 기도하며 예배를 기다렸다. 몸을 앞뒤로 흔들거나 양손을 위로 향하게 드는 등 기도하는 모습은 저마다 달랐지만 간절함은 매한가지였다.

예배 시작 전 출입문 앞에서 만난 박복임씨(78세) 손녀는 오늘 수능을 친다. 박씨는 2주 전에 코로나19(COVID-19)를 앓아 아직 몸 상태를 회복하지 못한 손녀가 눈에 밟힌다. 박씨는 "언제나 사랑하는 할머니가 항시 기도하는 걸 힘입어 담대히 나가길 바란다"라며 손녀를 응원했다.

새벽 4시 30분 예배가 시작하기 전 순복음교회 대예배당이 신도들로 가득찼다. 교회 관계자에 따르면 이 곳엔 1만6000여명의 신도가 들어가야 가득찬다고 한다. 예배당 곳곳에서는 수능을 위한 기도가 울려 퍼졌다.

기도자로 나선 민명목 장로는 "시험에 임하는 모든 자녀에게 동행해 주셔서 원하는 결과를 얻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했다. 사방에서 학부모들은 '아멘'이라며 응답했다. 이영훈 여의도 순복음 교회 담임 목사도 설교가 끝난 후 "오늘 수능을 보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지어다"라고 기도했다.

아들이 재수를 한다는 정경희씨(54세)는 오늘 아들에게 솔로몬의 지혜가 임하도록 기도했다. 어제 아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엄마 너무 떨려"라는 말을 반복했다. 정씨는 아들의 수험 생활을 돌이켜 보며 "지나고 보니 공부만 하라 한 게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기도를 마친 정씨는 이화여자대학교 부속 고등학교에서 시험 볼 아들을 위한 아침밥을 차려 주기 위해 바삐 걸음을 옮겼다.

김선옥씨(74세)는 손녀가 오늘 시험을 본다. 어렸을 때부터 직접 돌본 살갑고 예쁜 손녀다. 김씨는 "오늘 은혜 속에 시험 잘 보고 원하는 목표를 이뤘으면 좋겠다"고 했다. 손녀를 위한 응원의 말을 생각하다 감정이 북받쳐 오른 김씨의 목소리가 잔잔히 떨렸다. 김씨는 오늘 내내 교회에 머무르며 손녀를 기도로 지원할 생각이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는 오늘 수능 시간표에 맞춰 수험생을 위한 기도회가 진행한다.



"모든 수험생에게 부처님의 자비가…"


17일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을 가득 채운 수능 응원 메시지들, /사진=원동민 기자
서울 종로구 조계사 '새벽예불'에도 40여명의 신도가 대웅전을 가득 채웠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지만 예불 시작 전부터 대웅전 앞에서 신도들은 촛불을 밝혀 공양하고 탑을 돌기도 했다.

대웅전에 들어가지 못한 할머니, 할어버지 신도들은 들려오는 불경 외우는 소리에 맞춰 간절히 기도했다.

'수능대박'이라 적힌 촛불을 공양하고 합장을 한 할머니는 "손주가 이제 몸 건강히 저 하고 싶은 거 하면 된다. 달리 할 말이 뭐가 있겠느냐"고 했다.

작년에도 손녀 대학 진학을 기원하며 조계사에 나와 기도했다는 정 할머니(68)는 "손주 대학 시험 합격해서 가고 싶은 대학 갔으면 좋겠다"며 "답이 안 나와도 답 좀 잘 찍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다"고 말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수험생도 새벽부터 조계사를 찾아 떨리는 마음을 달랬다. 이날 오전 5시에 조계사 대웅전 앞 의자에 앉은 경복고 학생 정원영군(18)은 "전날 밤 10시에 잠들었다가 오늘 오전 2시에 깼다"며 "계속 잠을 청해도 잠이 안 와서 부처님 뵙고 가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서대문에 거주하는 박영현씨(74)도 오전 5시부터 한 시간가량 대웅전에서 절과 기도를 올리며 손주의 수능 대박을 기원했다. 외손주가 딱 하나라는 박 할아버지의 손자는 송파구 인근 고등학교에서 수능에 응시할 예정이다. 박씨는 "건강하고 컨디션 잘 유지하고 좋은 점수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하려 왔다"고 말했다.
수능 대박 기원 촛불을 밝히는 시민들. 종로구 대웅전 앞. 17일 오전 7시30분 현재 50여 개의 촛불이 밝혀져 있다. /사진=원동민 기자
서울 강남구 개봉동에 거주하는 이정순씨(73)도 손주들의 수능 대박을 기원하러 이른 아침부터 조계사를 방문했다. 친손주 둘을 13년 동안 직접 길렀다는 이 할머니는 "큰 손주가 의대 2학년인데 그때도 조계사에 와서 기도했다"며 "작은 손주도 건강하게 욕심 부리지 말고 오늘 시험을 잘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벽예불이 끝나고 오전 7시 30분부터 조계사 총무원장 진우스님과 실장 스님들이 대웅전에 모여 108배를 하며 수능 기도를 올렸다.

조계사 대웅전 앞에는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장소가 따로 차려졌다. 수백 개에 달하는 응원 메시지 옆에는 불을 켠 초를 공양하는 장소도 마련돼 있다. 이날 새벽 예불이 끝날 즘엔 50여 개의 촛불이 밝혀져 있다. 야외에는 200여 개의 의자가 준비돼 수능 시작 이후 절을 찾을 학부모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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