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3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네옴시티 관련 수소·원전·건설 분야의 양국 협력이 속속 결실을 거두는 가운데 전기차·배터리 관련 파트너십이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빈 살만 왕세자는 중동지역에서 전기차·배터리 등에 높은 관심을 보여온 대표적인 지도자다. 본인이 이사회 의장으로 있는 사우디 국부펀드(PIF)를 통해 미국의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과 루시드모터스 등에 투자했다. PIF는 올 초 SK온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 참여를 타진했다. 최소 1조원 규모의 투자를 계획했으나 국제 경기가 위축되면서 투자를 유예한 것으로 전해진다.
루시드모터스는 빈 살만 왕세자의 관심과 PIF 투자에 힘입어 사우디 신도시인 '킹 압둘라 이코노믹 시티(KAEC)'에 전기차 제조 허브를 짓고 있다. 중동 최초의 전기차 공장이다. 사우디 정부의 노력도 적극적이다. 2030년까지 전체 차량의 30% 이상을 전기차로 대체할 계획이며, 내년 5월을 목표로 '전기차 자유구역(EV FREE ZONE)'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토요타에 이어 사우디 완성차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수혜도 예상된다. 지난해 현대차·기아의 사우디 수출물량은 각각 6만3070대, 2만3497대 등이다. 코로나19 등으로 최근 5년 새 가장 적은 판매고를 올렸음에도 점유율 2위를 기록했다. 현대차는 아람코(Aramco)에 수소차 넥쏘 2와 수소버스 일렉시티 2대를 판매한 것 외에는 내연차만을 판매했지만, 현지 정부의 정책적 변환에 힘입어 친환경차 수출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업계도 마찬가지다. 태양광·풍력발전 확대에 따른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가 급증한다. 중국기업들이 값싼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무기로 ESS 수주에 적극적이지만, 사우디 입장에서는 한국과의 파트너십이 요구되는 게 사실이다. 현지에서 전기차 공장을 짓고 있는 루시드모터스도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으며, 슈퍼카를 비롯한 주요 프리미엄 전기차 배터리 공급을 국내 3사가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동에서는 전기차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부호들을 중심으로 테슬라를 비롯한 프리미엄 전기차 수요가 최근 높아지고 있다. 중동지역 공략을 위해 테슬라가 한정판 모델을 선보일 정도다. 관심 제고에는 높아진 기름값도 한몫했다. 2000년 이후 사우디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리얄(약 320원) 안팎이었으나, 최근에는 2.5리얄(약 700원) 안팎으로 올랐다. 국내보다 여전히 싼 값에 거래되지만, 현지에서는 2배가 오른 셈이어서 부담이 크다.
빈 살만 왕세자는 17일 한국에 입국한 뒤 숙소인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등과 차담회를 갖는다. 업계는 추진 중인 사업들보다 전기차·배터리와 같이 새로운 협업이 모색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룰 것으로 봤다. 공교롭게도 이날 참석자들은 국내 주요 전기차·배터리 업체를 이끄는 수장들이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자유구역 추진 비용도 PIF가 부담하고 있으며, PIF는 대만 폭스콘과 '시어(Ceer)'라는 전기차 위탁사업 합작사(JV)를 설립했다"면서 "산유국인 사우디가 전기차·배터리 관련 투자를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던 배경에는 PIF를 움직이는 빈 살만 왕세자가 높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사우디를 포함한 중동은 미국·유럽·중국 등에 비해 전기차·배터리 시장 규모가 작지만, 사우디가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전체 무슬림 문화권의 중심지라는 점에서 매력적인 것"이라면서 "인공지능(AI)·자율주행·UAM 등으로의 협력 확대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번 차담회가 양국 모빌리티 협력의 물꼬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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