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무엇을 위한 '희생자 명단' 공개인가

머니투데이 서진욱 기자 | 2022.11.16 03:28

[the300]

지난달 29일 이태원 거리에서 158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가 발생한 지 18일이 지났다.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압사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추모가 이어지는 가운데 충격적인 일이 터졌다. 자칭 시민언론이라는 '민들레'와 '더탐사'가 유가족 동의 없이 희생자 명단을 공개했다. 이들 매체는 유가족들에게 이름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면 이메일로 연락을 달라고 했다. 명단 공개를 정당화하려는 자기 논리만 내세운 채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볼 수 있는 피해는 고려하지 않은 참담한 행태다.

이들 매체의 일방적인 희생자 명단 공개는 한국기자협회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만든 '재난보도준칙'에 위반된다. 준칙 제18조는 '취재 보도 과정에서 사망자와 부상자 등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나 희망사항을 존중하고, 그들의 명예나 사생활, 심리적 안정 등을 침해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19조에서는 '상세한 신상 공개는 인격권이나 초상권, 사생활 침해 등 우려가 있으므로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며 신상 보도 시 주의를 요한다. 이들 매체는 유가족들에게 연락해 명단 공개에 대한 동의를 구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언론을 자처하면서 취재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았다.

민들레는 정부의 명단 비공개에 파장 축소 의도가 담겼다며 재난의 정치화이자 정치공학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정쟁이 심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장한 건 일방적인 명단 공개다. 추모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고 진상 규명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수사 결과보다 정치적 주장에 더 힘이 실릴 수 있는 여건 조성에 힘을 보탰기 때문이다. 민들레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15일 사이트 정식 개통과 매체 창간을 알리는 팝업창이 뜬다. 과연 무엇을 위한 명단 공개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명단 공개를 논의한 정황이 노출됐고, 당 지도부는 유가족 반대가 없다는 전제를 달아 희생자 이름과 영정 공개를 요구해왔다. 민주당의 명단 공개 요구가 이번 사태를 조장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유가족 뜻을 반영해 희생자 명단을 담은 온라인 추모 공간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침묵을 제멋대로 악용하는 일이 다시 벌어져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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