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뒤 더 큰 재해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10월29일 핼러윈을 즐기러 온 이태원 인파에서 초유의 압사 참사가 발생해 156명이 생명을 잃었다. 사망자 중에는 어린 중·고생이 6명, 젊은 교사도 3명이었고 20대 여성이 가장 많았다. 미국 하원의원의 조카, 한류가 좋아 한국에 유학 온 일본 여대생, 여행 온 호주인,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 4세 등 외국인도 14개국 26명이었다. 국적별로는 미국, 중국, 이란, 우즈베키스탄, 노르웨이 등 다양해 말 그대로 글로벌 참사였다. 팬데믹 이후 노마스크로 모인 대규모 축제라 10만 명 이상이 운집하리라는 예상을 했음에도 대형 사고에 대비한 사전 대응체계가 미흡했음은 물론이고 거듭된 112신고에도 현장 조치는 부실했으며 사후보고 체계도 난맥상을 보여줬다. 정부가 1조원을 들여 구축한 재난통신망은 작동조차 하지 않았다. 총체적 부실로 인한 인재(人災)임이 분명한데도 사건 초기 책임이 큰 고위공직자는 면피성 발언, 실언, 변명 등으로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다 112신고가 공개된 후에야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책임소재를 따질 필요도 없이 시민의 생명, 안전에 대한 책임이 정부, 지자체, 경찰이 아니면 누구에게 있겠는가.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고 분명히 국가의 의무를 명시했다. 1인당 GDP가 3만달러 넘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사회의 규모와 복잡성이 커지고 모든 게 연결되는 초연결 사회에서는 위험과 불확실성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홍수, 태풍, 지진 등 천재지변, 인파가 몰려 일어날 수 있는 참사 등 재해의 유형은 다양하고 게다가 이제는 네트워크망 마비, 해킹 등 IT 재해의 위험까지 상존한다. 수학여행, 대도시 도심, 데이터센터 등 평범한 시공간이 언제든지 공포가 될 수 있는 이른바 일상적 위험사회다. 재해는 대면, 비대면,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일어날 수 있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첨단과학과 디지털 기술 덕분에 재해위험도 어느 정도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세상이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은 이상징후를 사전에 발견하거나 사후피해를 최소화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스마트폰 위치 데이터나 교통데이터 등 빅데이터를 이용하면 실시간 재난위험 알림서비스 제공도 가능할 것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과학방역, 디지털 플랫폼 정부, 디지털 기반의 재난통신망 구축, 실시간 위험알림 서비스 등 이번 재해가 국가에 부여한 숙제는 산적하다. 재난이 일어나는 걸 아예 막을 순 없겠지만 위험을 예측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 사후수습과 대응보다 사전예측과 대비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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