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권 있어봤자 쓸 수가 없네"…골프덕후 울리는 '매크로 편법'

머니투데이 홍효진 기자 | 2022.11.12 07:45

'매크로 예약' 폭주에 골프장들 "이용 제한" 경고…택시 '콜 가려 받기'에도 악용

/사진=비에이비스타CC 홈페이지
#. 직장인 A씨(여·29)는 경기도의 한 골프장 회원이지만 최근 들어 예약이 버겁다. 주로 주말에 라운딩을 즐기는데 지난주에도 '예약 마감' 알림창에 한숨을 내쉬었다. A씨는 "회원권이 있어도 주말 예약은 3달 전부터 마감되는 게 부지기수"라며 "비교적 저렴한 퍼블릭 골프장은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예약을 선점하는 사례도 많다. 업무방해에다 소비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발끈했다.

공연 좌석, 골프장 등 선착순 경쟁이 치열한 예약 시스템에서 '매크로(Macro) 편법'이 늘고 있다. 반복 작업을 자동화한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선점하는 방식이다. 더욱이 매크로는 개인정보 도용 등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어 무분별한 이용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돌 공연도 골프 라운딩도…선착순 무색한 '매크로 암표상'


매크로는 하나의 명령으로 여러 개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주로 편법 예약 등에 활용된다. 초당 수십번까지 동일 명령을 반복해 시간을 단축하기 때문에 손으로 조작하는 이들보다 성공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지난달 31일 경기 이천의 회원제 골프장 '비에이비스타CC'는 "오는 14일부터 매크로를 통해 예약한 회원 계정은 인터넷 회원 강제 탈회 등 제한 조치된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포천과 춘천의 퍼블릭 골프장 '베어크리크CC'도 지난 4월 "매크로 예약 확인 계정은 강제 탈회 및 자격 제한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한 바 있다.

트위터 등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매크로'를 검색하면 뮤지컬·콘서트 등 티켓을 대신 구매해주겠다는 게시물이 나돈다. 이들은 대부분 매크로를 통해 시중 티켓을 대량 선점한 뒤 웃돈을 얹어 재판매하는 이른바 '매크로 암표상'이다. 단속을 위해 경찰청과 문화체육관광부는 2020년 1월부터 한국인터넷진흥원 홈페이지에 '온라인 암표 신고 게시판'을 개설해 운영 중이지만, 신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문체부에 따르면 운영 시점부터 지난달 말 기준 총 누적 신고 건수는 4980건에 달한다.

지난달 15일 부산에서 개최된 방탄소년단(BTS) 콘서트는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의 취지를 반영해 티켓값이 공짜였지만, 이마저도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는 수십만원에 판매됐다. 2019년 11월에는 아이돌 공연, 팬 미팅 표를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산 뒤 암표로 팔아넘겨 수억원을 챙긴 조직 2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경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일당은 돈을 주고 타인의 ID 2000여개를 빌려 티켓을 대량으로 구매한 뒤 되팔았다. 이들은 무려 9173장의 암표를 거래했고, 13만원짜리 티켓을 150만원에 팔기도 했다.

10일 오후 2시쯤 트위터에 대리 티케팅을 해주겠다며 직접 제작한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한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사진=트위터


"단거리는 뺄게요~" '택시콜'도 차단하는 매크로…개인정보 위험도


/사진='택시지지기' 페이스북 홈페이지
매크로 편법은 티켓 예매를 넘어 잔여 백신 예약과 택시 호출 등에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실제 국내 코로나19(COVID-19) 백신 접종이 본격 시작된 지난해 잔여 백신의 매크로 예약이 횡행했다. 질병관리청이 카카오·네이버(NAVER)를 통해 잔여 백신 예약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신청자가 몰리자, 온라인에서는 '매크로를 이용해 예약에 성공했다'는 후기가 쏟아졌다.

일부 택시 기사들도 이른바 '지지기'로 불리는 매크로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한다. 지지기는 카카오T 앱에서 택시 기사들이 원하는 목적지의 호출을 자동으로 잡아준다. 보통 택시 앱은 특정 지역 근처 기사들에게 동시에 콜이 뜨고 선착순으로 배정받는데, 지지기 등 매크로 앱을 이용하면 원하는 목적지 콜을 먼저 잡는 것은 물론 단거리나 원치 않는 특정 목적지 콜은 차단할 수 있다. SNS에서는 이러한 '자동콜잡이' 매크로 프로그램의 홍보 페이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매크로가 횡행하지만 이를 제재할 수단은 마땅치 않다. 올바르게 사용하면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인 만큼, 무턱대고 '불법' 딱지를 붙일 순 없어서다. 다만 매크로가 서버 운영을 방해하거나 개인정보 침해 등 범죄에 악용될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 이기혁 중앙대 융합보안학과 교수는 "매크로를 돌리는 과정에서 개인정보를 도용하고 그 데이터를 통해 다른 곳에서 수집한 데이터로 빅데이터가 형성되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배포할 때 정상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악성코드를 숨겨서 의도적으로 배포할 가능성도 있다"며 "매크로 프로그램이 가진 본래 목적을 위장해서 악성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경우다. 무분별한 매크로 이용은 보안상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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