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잘 지킬게요" 꾹꾹 눌러 쓴 편지…아이도 어른도 울었다

머니투데이 김도균 기자, 박상곤 기자, 김진석 기자 | 2022.11.01 13:57

"출근 시간 짬 내서 왔어요"... 전국 곳곳에서도 추모 물결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영등포구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전날 누군가 남겨놓고 간 노란 꽃다발이 제단 위 남겨진 모습./사진=김도균 기자

1일 오전 9시쯤. 하얀 국화송이가 늘어진 제단 위에 노란 들국화 한 다발이 놓여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영등포구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전날인 지난달 31일 누군가 두고 간 꽃이다.

노란 꽃다발 반대쪽에는 캐리어에 담긴 채로 종이컵 두 잔이 함께 서 있다. 따뜻한 음료수가 담겨있었을 이 잔은 이미 차갑게 식었다.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 이날로 4일째. 전날 서울광장, 녹사평역에 설치된 합동분향소 이외에도 이날 기준 전국 지자체에 총 59개의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 영등포구청 역시 이 중 하나다.

영등포구청 분향소에는 전날에만 836명의 조문객이 찾았다. 이중 전날 정오부터 1시 사이 이곳을 찾은 이는 100여명이다. 인근 관공서, 병원 등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이곳을 찾은 것으로 풀이된다.

분향소에 마련된 제단 위에는 고사리손으로 꾹꾹 눌러쓴 쪽지 15장이 액자에 담겨있다.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남기고 간 이 액자에는 "그곳에선 행복하게 지내시고 저희는 질서를 잘 지키는 어린이가 될게요", "질서가 너무 엉망이고 사람들이 배려를 안 하고 그래서 아무 죄없이 돌아가셔서 슬프고 눈물이 나네요" 등의 글귀가 적혀있다.

정갈한 글씨로 보내는 이를 '너의 친구'라고 적은 편지 한 장도 놓여있다. 이 편지를 쓴 이는 "너희들이 느낀 고통과 두려움을 헤아릴 수 없어서 미안한 마음뿐이야"라고 전했다.

이날 적지 않은 직장인들이 아침 출근 시간대 이곳을 찾았다. 이날 오전 8~10시 사이 72명의 사람이 이곳에 들렀다. 일부는 출근길에, 일부는 출근 이후 짬을 내서 이곳을 찾았다.

오전 9시30분쯤 출근길에 이곳 분향소를 찾은 황보영씨(36)는 "제가 열 살만 어렸어도 저기 함께 있었을 텐데…"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어 황씨는 "그냥 하루 재미있게 놀고 싶은 마음이었을 텐데 너무 허망하다"며 "모두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했다.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20대 여성 A씨는 남자친구와 함께 이날 오전 조문을 위해 들렀다. A씨는 "희생자들과 나이대도 비슷하고 가까운 곳에서 벌어진 일이라 내 이야기가 됐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왔다"고 밝혔다.

출근하고 이곳에 잠시 들른 60대 B씨는 "30대 자녀를 두고 있어 더욱 마음이 아프다"며 "(참사가) 기성세대의 잘못 같고 꽃도 못 피워본 젊음이 안타까워서 왔다"고 말했다.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영등포구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남긴 쪽지, 누군가 남겨놓은 음료수 두 잔, 손편지가 제단 위 놓여있는 모습./사진=김도균 기자



전국 곳곳 59개 합동분향소 마련…이어지는 추모 행렬


사고가 발생한 녹사평역 인근, 서울광장 등을 포함해 전국 시·도 단위에 17개, 기초지자체 단위에 42개 총 59개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다. 대구 달서구 안병근올림픽기념유도관에 별도 합동분향소를 설치한 대구시청을 제외하면 전국의 광역시·도청에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

녹사평역 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한 용산구를 포함해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는 구청 또는 구내 광장·공원 등에 모두 분향소 설치를 완료했다. 경기도 등 다른 지역에서도 일부 기초지자체는 분향소 설치를 마쳤다. 추가로 설치 중인 지자체가 있어 전체 분향소 숫자는 늘어날 수 있다.
24시간 운영되는 서울광장·녹사평역광장 분향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분향소가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조문객을 받는다.

분향소가 처음 마련된 전날 적지 않은 이들이 직장 또는 거주지 근처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도봉구에 거주하는 이명인씨(28)는 전날 직장 근처인 성북구청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이명인씨는 "참사 당일 몇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잤는데 새벽에 일어나보니 150명대로 늘어서 충격적이었다"며 "너무 안타까워서 퇴근길에 잠깐 들러 조문했다"고 밝혔다.

둘째 날인 이날도 조문 행렬은 전국 곳곳에서 이어질 전망이다. 인천에 사는 이정희씨(47)는 이날 저녁 인천시청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을 예정이다. 이정희씨는 "10대부터 2~30대까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희생됐는데 어른으로서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커서 오늘 꼭 조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태원 참사로 인한 희생자는 이날 오전 기준 사망 156명(외국인 26명), 부상 151명(중상 29명, 경상 122명)으로 집계됐다. '핼러윈 파티'가 열린 지난 29일 밤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인근 좁은 골목에 대규모 인파가 몰리면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정부는 지난 30일부터 오는 5일까지를 국가 애도 기간으로 지정했다.

1일 오전 9시50분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영등포구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남자친구와 함께 온 20대 A씨가 조문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사진=김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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