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100명 학생과 100개 성공모델

머니투데이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 2022.10.28 02:03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위기를 극복하려면 진단이 정확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다스리는 처방을 하면 위기는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 문제의 원인이 여럿이면 처방도 복합적이어야 한다. 하나를 해결해도 또다른 문제가 잠복해 있으면 병은 완전히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대학이 처한 현실이 그렇다. 정부와 대학은 위기의 원인을 2가지로 규정한다. 하나는 학생 수에 비해 대학이 많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0년 넘는 등록금 동결로 대학 재정이 고갈상태라는 것이다. 정책처방도 이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둔다. 부실대학을 정리하는 구조개혁과 초·중등교육 예산을 나눠 쓰는 식이다.

타당한 진단이고 적절한 대응이다.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다. 하지만 위기를 불러온 또하나의 문제를 놓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대학이 교육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다. 대학이 오랜 타성과 지적 우월감에 젖어 시대의 빠른 변화를 읽지 못하고 사회의 요구에 둔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애리조나주립대 교수에게 미국의 사정을 물었다.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대학교육의 가치와 효용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교육이 비싼 등록금만큼 '가성비'가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뼈 아픈 지적이다.

그래서인지 대학의 책무에 대한 성찰도 나온다. 2006년 하버드대 해리 루이스 전 학장은 그의 저서 '영혼 없는 수월성'에서 대학이 교육기관으로서 부여받은 책임을 망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논문 생산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학생을 더 훌륭한 사회구성원으로 키워내는 교육적 사명은 소홀했다는 것이다. 2019년 세계적 컨설팅회사 '맥킨지'(McKinsey)도 의미심장한 보고서를 냈다. 대학이 재정위기를 극복하려면 당장 비용을 줄이고 아껴 쓰는 것이 필요하지만 더 근본적인 대응은 학생의 성과를 높이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대학이 살아남으려면 '학생의 성공'(student success)이라는 기본사명을 다하라는 처방은 한국 대학에도 통할 것이다.

우선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의 가치와 역할을 정립하고 구성원과 공유해서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다. 졸업 후 맞닥뜨릴 직업세계와 역동적 삶을 준비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전공 공부에 매몰되지 않고 동아리, 학습공동체, 인턴, 지역사회 봉사, 글로벌 참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자 책임이다.


둘째, 맞춤형 개별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학생마다 다른 꿈과 끼, 흥미와 진로, 학습속도와 스타일을 외면하는 획일적인 교육을 했다. 이제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시대다. 들쭉날쭉한 관심, 꿈과 진로, 학습역량과 경험을 살피고, 각자의 잠재력을 꽃 피우는 맞춤형 학습과 진로지도가 필요하다. 교육자의 역할도 맞춤형 경험을 큐레이팅하는 것으로 변해야 한다. 100명의 학생에겐 100개의 성공모델이 있다.

셋째, 사회정서 역량과 자기주도성을 길러줘야 한다. 입시에 지친 학생들에겐 친밀한 인간관계와 따뜻한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는 활동이 중요하다. 거친 삶을 헤쳐나갈 마음의 근육이 단단해질 것이다. 평생 함께 갈 친구를 만드는 것은 대학이 걱정하는 중도탈락을 예방하는 특효약이다. 직업이 서너 번 바뀌는 시대에 하나만 가르치는 것도 시대착오다. 어느 환경이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본역량과 자기 삶을 설계하고 이뤄가는 개척정신을 길러주는 것이 미래 세대를 위한 최고의 투자다.

한때 정부는 학부교육 우수대학을 지원했다. 연구 못지않게 잘 가르치는 교수가 대접받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평가, 정부지원, 교수업적 평가시스템을 혁신할 때다. 대학이 보유한 최고의 자산이 학생임을 알고 그들의 성공을 끌어내는 것이 책무임을 깨닫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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