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고 지도부를 완전 장악하며 10년 이상의 장기집권 기틀을 마련한 시진핑 3기에서 미중 기술 경쟁은 어떻게 진행될까? 반도체 등 핵심IT 산업에서 미중 경쟁의 영향권에 들어있는 한국에게도 중요한 문제다. 특히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가 확대되면서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공장이 있는 삼성전자와 우시에 D램 공장이 있는 SK하이닉스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시진핑 3기 미중 반도체 기술 경쟁이 어떻게 진행될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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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거세지는 미중 반도체 경쟁━
지난 16일 시 주석은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대회 개막식 '업무보고'에서 '중국식 현대화', '과학기술 자립·자강'을 내세웠다. 중국식 현대화를 통해서 신중국 수립 100주년인 2049년까지 중국을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으로 건설하겠다는 구상인데, 과학기술의 자립·자강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이룰 수 없는 목표다.
2018년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의 미중 무역전쟁과 2019년 화웨이에 대한 고강도 제재에 이어 일말의 희망을 가졌던 바이든 행정부까지 대중 제재를 계속 강화하자 이제 중국도 미국이 기술제재를 중단하리라는 희망을 완전히 버린 것 같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 역시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지난 8월 미국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BIS)은 3나노미터(㎚·10억분의 1m)이하 반도체 설계에 사용되는 전자설계자동화(EDA) 툴의 대중 수출을 금지했다.
중국 반도체 산업은 파운드리(반도체 제조)가 가장 약한 고리다. 팹리스(반도체 설계)는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한때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시장에서 퀄컴·미디어텍과 경쟁했을 정도로 기술력을 갖췄다. 다만, 중국 팹리스업체는 케이던스·시놉시스 등 미국업체가 개발한 EDA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여기를 틀어막아 버린 것이다.
삼성전자의 시안 낸드플래시 생산라인과 SK하이닉스의 우시 D램 공장, 다롄 낸드플래시 공장 등 외국기업의 반도체 생산시설은 개별 심사 대상이지만, 1년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당장 한국기업들도 다급해졌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공장이 D램 생산량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중국 생산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로 사실상 외국 반도체 업체들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라인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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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반도체 제재는 공급사슬 초기단계에 집중━
지난 23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반도체 공급사슬을 △1단계 반도체 디자인(반도체 디자인 소프트웨어(EDA), 로직 반도체 설계) △2단계 반도체 생산(반도체 장비, 로직 반도체 생산, 메모리칩 생산) △3단계 후공정(팩키징·테스트)으로 나눴다.
로직(시스템) 반도체 설계도 엔비디아, AMD, 인텔, 퀄컴 등 미국 업체 점유율이 67%로 절대적이다. 중국 업체 중에서는 하이실리콘이 2020년 상반기 전 세계 반도체 업체 10위권에 진입할 정도로 급성장했지만, 미국의 집중 제재로 인해 25위권 밖으로 멀찌감치 밀려났다.
EDA와 더불어 미국의 반도체 제재가 집중되는 분야가 바로 반도체 장비다. 반도체 장비시장에서 세계 1위 반도체 장비업체인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MAT), 램리서치, KLA 등 미국업체 점유율이 41%다. '슈퍼 을'로 불리며 유일하게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네덜란드의 ASML도 미국의 영향권 안에 있기 때문에 중국이 최첨단 반도체 장비를 손에 넣기 어렵다. 중국 반도체 장비업체의 점유율은 겨우 2%에 불과하다.
반면 로직 반도체 생산(파운드리)과 메모리 칩 생산능력을 보면 중국이 좀 더 우세하다. 반도체 생산은 반도체 업체의 국적이 아니라 생산라인 소재국이 기준이다.
로직(시스템) 반도체 생산은 인텔, 글로벌 파운드리 등이 보유한 미국 내 생산라인이 15%를 차지했으며 SMIC 등 중국 내 생산라인은 17%를 차지했다. 하지만 TSMC와 삼성전자 같은 선두업체가 미국의 대중 제재 조치를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국의 영향력은 훨씬 크다. 또한 SMIC는 2020년 14나노 공정을 상용화하는 등 선두업체 대비 3~4년 뒤진 상태다.
메모리 반도체 생산능력도 마이크론 등 미국 내 생산라인이 5%를 차지하는 데 그친 반면 YMTC, 창신메모리 등 중국 내 생산라인이 14%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의 시안 낸드 공장, SK하이닉스의 우시 D램공장 등 외국업체 공장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후공정(OSAT)은 중국 내 생산능력이 글로벌 생산 능력의 46%를 차지할 정도로 크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반도체 공급사슬의 초기 단계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 EDA, 반도체 장비 제재를 통해 중국의 파운드리,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확대를 틀어막고 있는 게 드러난다. 실제로 애플은 YMTC의 낸드플래시를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미국 정부의 수출통제 조치 발표 이후 YMTC 제품 사용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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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기술경쟁을 둘러싼 반도체 공급망 재편 언제까지 지속될까?━
이에 대해 반도체 전문가인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반도체 삼국지'에서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를 인용해 "중국을 반도체 생산기지로 볼 때는 이러한 제재가 통할 수 있지만, 최대 반도체 시장이자 최대 반도체 수입국으로서의 중국의 포지션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균형이 깨질 수 있고 이는 글로벌 산업 자체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미국 컨설팅회사 가트너가 예측한 것처럼 "미중 기술경쟁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승리하거나 패배하는 시나리오로 귀결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얘기다.
다시 시진핑의 업무보고로 돌아가보자. 72쪽에 달하는 업무보고에서 시진핑은 중국이 직면한 곤란한 문제로 고품질 발전 추진에 수많은 병목현상이 존재하며 과학기술 혁신 능력이 강하지 않다고 토로하는 대목이 나온다. 또 산업사슬·공급사슬의 안전성도 문제라고 덧붙였는데, 바로 반도체 공급망을 뜻한다.
이처럼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기술경쟁은 장기적으로는 균형점을 모색할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시진핑 3기 출범 이후 한층 더 격화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반도체 업체도 미중 반도체 경쟁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예의주시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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