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 대비 일본 엔화 가치가 3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하면서 역대급 엔화 약세가 우리나라 경제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수출 경쟁 구도가 치열한 편으로 엔저 현상이 이어지면 상대적인 가격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고 이미 적자로 돌아선 경상수지에 추가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NHK 등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은 지난 21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 환율은 달러당 151엔 후반까지 올랐다가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약 두 시간 만에 144엔대 중반까지 7엔 가량이 갑자기 하락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일본 정부의 달러 매도와 엔화 매입 등 시장 개입이 있었을 것으로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 20일 장 중 심리적 저항선이었던 150엔선을 돌파한 이후 이틀 연속 150엔을 상회했다. 엔/달러 환율이 150엔을 넘어선 건 1990년 8월 이후 32년 만이다.
엔/달러 환율 상승(엔화 가치 하락)은 우리나라 경제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엔저 현상이 이어진다면 우리나라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일본 제품보다 떨어져 수출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자동차, 반도체, 컴퓨터 등 대(對)미 수출 품목이 유사한 편이다.
무역협회가 지난 12일 발표한 '미국 수입시장에서의 주요국 수출경합관계 분석보고서' 에 따르면 미국 수입시장에서 한국과 일본 간 수출 유사성 지수(수출경합도)는 지난해 기준 0.475로 집계됐다. 2020년(0.485)보다는 0.01포인트 낮아졌지만, 중국(0.246)이나 대만(0.373), 베트남(0.189) 등과 비교하면 높다. 수출유사성 지수는 수출상품 구조의 유사성을 수치화해 특정 시장에서 양국 간 경쟁 정도를 지수화한 것으로, 1에 가까울수록 경쟁이 치열하다.
이종윤 전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은 "엔저 현상은 당연히 수출의 가격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책을 미리 세워야지 '엔저 현상'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며 "엔저 현상이 우리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수출제품 가격 등을 포함해 제도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엔저는 수출 측면에서 우리나라 제품의 가격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미국 시장에서 고전할 우려가 있다"며 "일본과는 자동차 등 경쟁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엔화가 약세가 되면 원화도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어 수입 물가 상승 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엔화 가치 하락이 아시아 시장 전반에 대한 불안 심리를 키워 우리나라의 외환·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최근에는 엔화뿐 아니라 위안화 약세도 이어지고 있어 아시아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상황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는 물가상승률이 낮다 보니 저금리를 유지하고 미국과 금리차가 벌어지면서 엔화 가치가 급속하게 절하된 것"이라며 "절하 속도가 빠르다 보니 국제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우리나라 외환·금융시장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수출 경쟁력 측면에서도 일본 물건값이 싸지니까 우리나라 입장에서 일본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지만, 세계 경기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환율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은 있다"고 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미국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통화 긴축 정책으로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하는 것과 달리 여전히 기준금리를 -0.1%로 동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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