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무너지면 다음은 韓"...'슈퍼 엔저', 한국에 악재인 이유

머니투데이 세종=안재용 기자, 유효송 기자 | 2022.10.13 16:54
(도쿄 로이터=뉴스1) 김성식 기자 = 4일 북한이 발사한 중거리 탄도미사일이 일본 영공을 통과하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도쿄 관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국 달러화 대비 일본 엔화 가치가 1998년 8월 이후 2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환율 효과로 올해 한국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일본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한국으로선 엔저가 반갑지만은 않다.

'슈퍼 엔저' 현상이 장기화되면 한국산 제품의 상대적인 가격 경쟁력이 약화돼 이미 적자로 돌아선 경상수지에 추가로 부담이 된다. 엔화 가치 하락이 아시아 시장 전반에 대한 불안심리를 키워 우리나라의 외환·금융시장 변동성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13일 도쿄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지난 12일 전일대비 0.47% 오른(엔화 가치 하락) 146.253엔에 마감됐다. 엔/달러 환율은 전일 장중 146.3엔을 넘어서기도 했다. 1998년 8월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은 이날 오후 3시34분 기준 146.81엔을 기록하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의 세계경제전망(WEO)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1인당 명목 GDP 전망치는 4267만1062원, 일본의 올해 1인당 명목 GDP 전망치는 441만2287엔으로 추산됐다. 100엔당 973원인 이날 오후 환율을 적용하면 올해 일본의 1인당 GDP 전망치는 약 4293만1557원으로, 한국의 1인당 GDP 전망치와 불과 26만원밖에 차이가 안 난다.

현 수준에서 원화 대비 엔화 가치가 0.6% 이상 떨어져 100엔당 967원 아래로 내려가면 한국의 올해 1인당 GDP가 일본을 앞지를 가능성도 있다.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는 연초 대비 약 26.6% 절하됐다.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같은 기간 19.5% 하락했다. 달러화 가치만 상승하는 '킹달러' 현상에 양국 통화 가치 모두 크게 하락했으나 엔화 가치 하락 폭이 더 컸다.


환율 효과로 올해 한국의 1인당 GDP가 일본을 제치더라도 현실적으론 반갈 일이 아니다. 엔저 현상이 장기화되면 한국 제품의 상대적인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엔화 가치가 원화 가치보다 더 크게 하락하면 달러화 기준 일본 제품의 가격이 한국 제품에 비해 저렴해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무역협회가 12일 발표한 '대미 수출, 중국·일본 부진 속 한국·베트남·대만 부상-미국 수입시장에서의 주요국 수출경합관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수입시장에서 한국과 일본간 수출유사성 지수(수출경합도)는 지난 2021년 기준 0.475를 기록했다. 지난 2017년(0.514)와 비교하면 0.039포인트 감소했으나 여전히 중국(0.246), 대만(0.373), 베트남(0.189)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다. 수출유사성 지수(ESI)란 수출상품 구조의 유사성을 수치화해 특정 시장에서 양국간 경쟁 정도를 지수화한 것이다. 1에 가까울수록 경쟁이 치열함을 뜻한다.


이종윤 전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은 "에너지와 식량 등 외부요인이 크지만 무역수지가 적자인 상황에서 떨어진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가장 1차적인 목표가 돼야 하는 상황"이라며 "일본이 엔저가 되면 수출 경쟁력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데 지금 원화가치가 상승하면 현 상황에서는 무역수지 적자가 더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엔/달러 환율이 추가로 상승하는 경우 아시아 외환시장 전반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엔화와 위안화의 가치 급락이 아시아 국가의 금융시장 변동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만약 일본과 중국의 통화가치가 급락한다면 글로벌 펀드들이 아시아 지역 전체에서 자금을 뺄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1400원대인 원/달러 환율 역시 추가로 뛸 수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엔화 가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들이 일본을 목표로 움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일본의 부채비율이 높아 통화정책을 통해 대응할 여력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지평 한국외국어대학교 특임교수는 "미국으로 자금이 빨려들어가는 게 심해지면서 엔저도 나타나고 원화도 약세가 됐는데 만약 아시아 중 취약국가가 위기국면을 보이면 그 영향이 한국이나 일본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엔화 가치 하락이 이어지며 일본 외환당국이 추가로 개입에 나설지도 주목된다. 일본 당국은 엔/달러 환율이 145엔대 후반을 기록했던 지난달 22일 약 24년 만에 달러화 매도 개입에 나선 바 있다. 당시 일본 재무성은 외환 개입에 2조8382억엔(약 28조원)을 투입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긴축 정책에 발 맞춰 기준금리를 올리는 주요국들과 달리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여전히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하고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는 0% 내외로 유도하기 위해 장기 국채를 매입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GDP 대비 230%가 넘는 국가부채를 고려할 때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1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로서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임기를 단축할 생각이 없다"며 최근 일본은행의 정책을 지지하는 뜻을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기업들이 임금 수준을 올릴 때까지 일본은행이 통화완화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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