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예상대로 '빅스텝'(기준금리 한 번에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14년 만에 대출금리 8%, 예금금리 5% 시대가 현실화할 전망이다. 한은이 다음달 세 번째 '빅스텝' 가능성을 열어둔 상황이어서 다중채무자,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과 한계기업이 절벽에 내몰리고, 자산가격 하락과 원리금 상환 부담 증가의 이중고에 처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빚투(빚으로 투자)족의 고통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이후 기준금리가 2.50%p 인상돼 전체 가계와 기업이 부담하는 이자만 약 61조원 불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2.50%에서 3.00%로 0.50%p 인상한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가계와 기업을 합해 이자 부담이 12조2000억원 가량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단순 계산으로 지난해 8월 이후 기준금리 전체 인상분(2.50%p)을 반영하면 1년 2개월 만에 가계와 기업이 추가로 내는 이자는 61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가파르게 상승하는 대출금리 오름폭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날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고정형(혼합형·5년 고정금리 후 변동금리 적용)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4.89~7.082%로 상단금리가 7%를 넘는다. 변동형 주담대는 상단금리가 6.793%로 7%를 넘나들고 있다. 신용대출(1등급·1년)과 전세대출도 상단금리가 각각 6.94%, 6.545%에 달한다.
한은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은 시장금리를 끌어올려 대출금리가 연내 8%대로 진입할 전망이다. 이 총재는 이날 금리 인상 사이클에서 기준금리가 연 3.50% 수준까지 오를 것이라는 시장 전망에 대해 "다수 위원이 말한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올해 마지막 금통위가 열리는 11월에도 '빅스텝'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기준금리가 3.50%에 도달하면 금리인상 사이클에서 가계와 기업이 부담하는 이자는 모두 73조2000억원 규모로 는다.
초저금리 기간 빚을 내 집을 산 '영끌족'은 원리금 상환 부담이 50% 이상 불어난다. A시중은행의 대출 차주 사례 분석을 보면 B씨는 꼭 2년 전인 2020년 10월 주담대 4억6600만원과 신용대출 1억원 등 5억6600만원을 대출받아 서울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 24평형(전용면적 59.96㎡)을 14억3000만원에 매입했다. 당시 대출금리는 주담대가 2.91%, 신용대출 3.66%였으나 이달 현재 금리 수준이 각각 5.07%, 6.67%로 급등했다. B씨의 원리금 상환액은 월 224만7000원에서 304만8000원으로 36% 늘었다. 기준금리가 3.50%에 도달할 경우 B씨의 월 상환액은 340만4000원으로 대출 당시보다 51.5% 불어난다. 한은은 기준금리 2.50%p 인상으로 대출자 1인당 연간 이자 부담이 164만원 가량 증가한 것으로 추산했다.
회사채 금리가 크게 올라 은행 대출로 연명하는 기업들도 버티기 힘들긴 마찬가지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기준금리 0.50%p 인상으로 기업대출 금리는 0.52%p 오르고 기업들이 더 내야 하는 이자는 6조125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8월 이후 기준금리 2.50%p 인상으로 늘어난 기업들의 이자부담액이 30조원을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은은 지난달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기업 신용(빚)의 높은 증가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외 경기 둔화, 대출금리 인상, 환율·원자재 가격 상승 등 경영 여건이 나빠질 경우 기업 전반의 이자 상환 능력이 약해져 올해 한계기업 비중은 전년보다 상당폭 상승할 것"이라고 했다.
은행 예금금리(1년 만기 기준)도 5% 돌파가 목전이다. 우리은행은13일부터 19개 정기예금과 27개 적금 상품의 금리를 최대 1.00%p 인상한다. 비대면 전용인 '우리 첫거래 우대 정기예금'의 최고금리는 연 3.80%에서 연 4.80%로 오른다. NH농협은행도 14일부터 예금 금리는 0.50%p, 적금 금리는 0.50∼0.70%p 각각 인상해 반영한다.
가파른 금리 상승과 집값 하락이 가속화하면서 가계대출 한파가 계속되고 시중자금이 은행 예적금으로 몰리는 역머니무브 현상이 더욱 또렷해질 전망이다. 5대 시중은행 정기 예적금 잔액은 지난달 말 현재 799조8141억원으로 불어나 사상 처음으로 800조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말(690조366억원)과 견줘 올 들어 110조 가까이 뭉칫돈이 몰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금리가 최고 8%까지 오르고 정기예금 금리가 5%를 넘어선 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월이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예금금리 인상은 빚이 적고 현금 자산이 많은 고소득자에 버팀목이 되지만 대출금리 인상으로 취약계층은 더 어려워지는 양극화가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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