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금융위기로 치닫나…중앙은행 잇단 대책도 소용없는 이유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 2022.10.12 10:41

영국 채권시장이 좀처럼 안정을 되찾지 못하면서 살얼음판을 걷는 듯 불안한 양상이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이 장기 국채수익률 급등을 막고자 이틀 연속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등 지원책을 발표했으나 투자자들의 동요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영국 금융시장은 정부의 감세안 발표로 국채 금리가 급등하자 레버리지 투자를 해온 연금펀드들이 증거금을 대거 높여야 하는 상황에 몰리면서 위기에 빠진 상태다.

이에 BOE는 국채 매입을 발표하고 정부는 감세안을 철회했으나 금융시장 불안은 지속되고 있다.

BOE는 11일(현지시간) "채권시장의 불능 상태와 채권 할인 매도가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영국의 금융 안정성에 실질적인 리스크가 되고 있다"며 채권 매입 대상에 물가연동국채를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전날 하루 채권 매입 규모를 늘리고 연금펀드를 대상으로 대출 프로그램을 가동한다고 발표했음에도 채권시장 혼란이 계속되자 추가 지원책을 내놓은 것이다.

BOE는 전날 장기 국채를 중심으로 금리 급등세가 이어지자 하루 채권 매입 한도를 당초 발표했던 50억파운드에서 100억파운드로 늘렸다.

또 연금펀드가 대출받을 때 제공할 수 있는 담보물을 지수연동국채 등으로 확대하고 은행을 대상으로 하는 레포(환매조건부 매매) 대출을 연금펀드에도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같은 발표에도 영국의 3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7일 4.380%에서 전날(10일) 4.735%로 급등했다.



채권 매입 최소화하려는 영란은행


BOE의 계속된 지원책에도 채권시장 불안이 계속되는 이유는 3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BOE가 발표한 만큼 채권을 사지 않았다는 점이다.

BOE는 지난 9월28일 국채를 하루 50억파운드 한도로 10월14일까지 총 650억파운드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BOE는 이후 9월30일까지 3일간 하루에 10억파운드 이상을 국채시장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채권시장이 안정되자 지난 3일에는 국채 매입 규모를 2200만파운드로 줄였고 4~5일에는 국채 매입을 중단했다.

전날(10일)만 해도 하루에 100억파운드까지 국채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하고 실제로 매입한 규모는 8억5300만파운드에 그쳤다.

RBC 캐피탈마켓의 매크로 전략가인 피터 섀프릭은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하루에 고작 8억파운드를 매입했는데 (채권 매입 프로그램이 끝나는 오는 14일까지) 매일 이 정도 규모로 사들인다면 별 의미가 없다"며 "이 정도로는 시장을 지지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BOE가 대규모 채권 매입을 발표하고도 실제로는 과감하게 채권을 사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채권시장은 안정시켜야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연율 1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채권 매입은 시중에 유동성을 확대하는 양적 완화(QE)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더욱 자극하게 된다.



국채는 팔기 싫은 연금펀드


둘째는 채권 매입 대상이 너무 좁았기 때문이다.

연금펀드들은 금리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금리는 연금펀드들의 연금부채(향후 지급해야 할 연금액-보유 자산)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예를들어 30년물 국채 금리가 3%라면 30년물 국채를 보유할 경우 30년간 원금의 3%만큼의 이자는 확보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30년물 국채 금리가 2%로 떨어지면 3%일 때에 비해 1%포인트의 이자만큼 연금액을 더 마련해야 한다.

이처럼 국채 금리에 따라 연금부채가 변하기 때문에 연금펀드들은 국채 보유로 이러한 금리 리스크를 최소화하려 한다.


이는 연금펀드들이 지금 국채를 BOE에 매도해도 언젠가 다시 사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지금은 금리가 치솟아 국채를 싸게 팔아야 하는데 시장이 안정돼 국채 금리가 하락하면 비싼 가격에 국채를 되사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연금펀드들은 BOE에 물가연동국채를 매입해 달라고 요구해왔고 영란은행은 이날 이를 받아들였다.

연금펀드들이 일반 국채보다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물가연동국채를 팔려고 시도하면서 영국의 30년물 물가연동국채 금리는 지난 7일 0.851%에서 이번주들어 1.5%로 치솟았다. 30년물 물가연동국채 금리는 수주일 전만해도 마이너스였다.

이날 BOE가 물가연동국채까지 매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금리는 추가 상승을 멈췄다. 하지만 크게 내려가지도 않았다. BOE가 이날 하루 동안 사들인 물가연동국채는 20억파운드에 달했다.



채권 매도할 시간이 촉박하다


영국 채권시장이 안정을 찾지 못하는 세번째 이유는 BOE의 채권 매입이 오는 14일에 종료되기 때문이다.

연금펀드들은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최소한 이달말까지로 연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BOE는 요지부동이다.

앤드류 베일리 BOE 총재는 이날 연금펀드들에 "채권 매입은 앞으로 3일 남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연금펀드들에 14일까지 3일간 필요한 현금을 마련하기 위한 국채 및 물가연동국채의 매도를 마무리하라는 의미다.

베일리 총재는 또 이날 국제통화기금(IMF) 연례회의와 관련한 행사에서 연금펀드들이 "대규모 마진콜(증거금 증액 요구)"에 대처하기 위해 자산을 매도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지금 열려 있다고 말해 곧 닫힐 것임을 시사했다.

이 발언이 전해지면서 영국 파운드 가치는 이날 달러 대비 0.9% 하락하며 1.09달러를 나타냈다.

연금펀드들은 지급해야 할 연금액에 맞춰 자산을 운영하는 LDI(부채연계투자) 전략을 활용하고 있는데 LDI에는 투자액의 6~7배에 달하는 레버리지가 포함된다.

레버리지를 활용하면 현재 자산과 향후 지급해야 할 연금액 사이의 불일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버리지인 만큼 증거금을 내야 하는데 이 증거금은 금리가 결정한다. 연금펀드들은 지난달 말부터 영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대규모 증거금 증액 요구에 직면했고 이에 따라 자산을 매도해야 했다.

로열 런던 자산관리의 금리 및 현금팀장인 크레이그 잉체스는 BOE의 채권 매입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WSJ에 "BOE의 시장 개입 방식은 사람들이 BOE에 매입을 요청하는 자산만 사는 방식인데 아무도 BOE에 매입을 제안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연금펀드들이 회사채나 다른 자산을 팔면서 BOE에 국채 및 물가연동국채 매입은 최소한으로 요청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금리 리스크의 헤지를 위해 국채 매도를 꺼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십년간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연금펀드의 특성상 결정이 느리고 신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BOE는 연금펀드들에 대규모 자산 매도를 단 몇주일 안에 결정하라고 종용해온 셈이다.

연금펀드가 어떤 투자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연금을 맡은 신탁회사와 투자자문사, 펀드매니저, 연금펀드의 주문을 받아 채권을 사고 파는 은행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의논해야 한다.

연금펀드들이 채권 매입을 최소한 이달 말까지 연장해달라는 것도 투자 결정을 내릴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아울러 이달말이면 쿼지 콰텡 영국 재무장관이 향후 수년간에 걸쳐 예산 마련을 위한 국채 발행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연금펀드들은 이를 확인한 뒤 자산 매도를 결정하기를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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