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예상대로 '빅스텝'(기준금리 한 번에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14년 만에 대출금리 8%, 예금금리 5% 시대가 연내 현실화할 전망이다. 금리 인상은 고소득자나 부유층에는 현금 자산을 불릴 기회가 되지만 빚 갚을 능력이 떨어지는 취약차주와 중소기업·자영업자들은 상환 부담에 부실 절벽에 내몰리는 양극화로 나타난다.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된 지난해 8월 이후 전체 가계와 기업이 부담하는 이자만 약 64조원 가량 불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한은 금융통위원회는 12일 기준금리를 2.50%에서 3.00%로 0.50%p 인상했다고 발표했다. 한은의 빅스텝은 지난 7월 이후 두 번째다.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소비자물가와 환율 급등세, 미국과의 금리 격차 등을 감안한 것이다. 기준금리가 3%에 진입한 건 2012년 10월 이후 꼭 10년 만이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 오름폭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날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고정형(혼합형·5년 고정금리 후 변동금리 적용)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4.89~7.082%로 상단금리가 7%를 넘는다. 변동형 주담대는 상단금리가 6.793%로 7%를 넘나들고 있다. 신용대출(1등급·1년)과 전세대출도 상단금리가 각각 6.94%, 6.545%에 달한다.
한은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은 시장금리를 끌어올려 대출금리가 연내 8%대로 진입하고, 예금금리도 조만간 5%를 넘어설 전망이다. 당장 기준금리가 0.50% 오르면 가계 이자부담은 약 6조90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6월 말 현재 가계대출 잔액(1757조9000억원)에 예금은행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비중(8월말 78.5%), 대출금리 인상 추정치(0.50%p)를 대입한 결과다. 차주(대출자) 1인이 부담하는 연간 이자도 32만1000원 가량 늘어난다.
지난해 8월 이후 이달까지 기준금리가 2.50% 수직상승(0.50→3.00%)하면서 증가한 가계 연간 이자부담액은 34조5000억원(차주 1인당 약 161만원)에 이른다. 한은이 11월에도 추가 금리인상(0.25%p)을 단행하면 가계가 지난 15개월 동안 부담해야 하는 추가 이자액은 38조원 가량으로 불어난다.
한은은 최근 국정감사 제출 자료에서 금융부채를 가진 약 38만 가구가 소득의 40% 이상을 원리금 상환에 쏟아붓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들 고위험가구는 유사시 집을 비롯한 보유 자산을 다 팔아도 대출을 완전히 갚을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험 가구가 보유한 금융부채는 전체 금융부채의 6.2%인 69조4000억원에 이른다.
회사채 금리가 크게 올라 은행 대출로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들도 버티기 힘들긴 마찬가지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기준금리 0.50%p 인상으로 기업대출 금리가 0.52%p 오른다고 가정하면, 기업들이 더 내야 하는 이자는 6조125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8월 이후 기준금리 2.50%p 인상으로 늘어난 기업들의 이자부담액은 30조원을 훌쩍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미 4% 후반대로 진입한 은행 예금금리도 5% 시대가 눈앞이다. 은행 예금금리는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연 3%대 초반이었으나 최근 최고 연 4.65%까지 뛰었다. 우리은행의 비대면 전용 정기예금인 '원(WON)플러스 예금' 1년제 금리가 연 4.65%로 가장 높고, 케이뱅크 '코드K정기예금과 신한은행 '쏠편한 정기예금' 1년제 금리도 각각 4.60%, 4.50%까지 올라왔다. 5대 시중은행 정기 예적금 잔액은 지난달 말 현재 799조8141억원으로 불어나 곧 사상 처음으로 80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지난해 말(690조366억원)과 견줘 올 들어 110조 가까이 뭉칫돈이 몰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금리가 최고 8%까지 오르고 정기예금 금리가 5%를 넘어선 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월이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예금금리 인상은 빚이 적고 현금 자산이 많은 고소득자에 버팀목이 되지만 대출금리 인상으로 취약계층은 더 어려워지는 양극화가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했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