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노모 생일을 축하하려 시골집에 모였던 일가족 5명은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일산화탄소는 공기처럼 '무색무취'인데 주택에 경보기가 설치돼 있지 않아 참변을 막지 못했다.
전북 무주경찰서는 11일 머니투데이와 통화에서 "최근 일가족 5명이 숨진 사고 원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결론 내렸다"며 "단독주택에 일산화탄소 경보기는 없었다"고 밝혔다.
한글날이었던 지난 9일 전북 무주군 무풍면의 한 단독주택에서 집주인 A씨(84, 여성)와 큰 사위(64), 작은 사위(49), 작은 딸(42), 손녀(33) 등 일가족 5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함께 있던 큰 딸(57)은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병원에 옮겨졌다.
경찰은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A씨 아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쓰러져 있는 이들을 발견했다. 경찰이 도착했을 당시 집의 문과 창문 모두 닫혀있었고 집 안에는 가스 냄새가 심했다고 한다.
경찰은 숨진 일가족 5명에 대한 간이 검사를 한 결과 '일산화탄소 중독'이 사고 원인이라 결론 내렸다. 사망자 5명 혈액이 모두 일산화탄소 양성 반응을 보였고 전날(10일)에도 사망자들 코와 입에서 일산화탄소가 검출됐다.
경찰이 현장 감식을 해보니 일가족은 '등유 보일러'로 난방을 하고 있었다. 보일러는 정상 작동했지만 연통 배기구 일부분이 이물질에 막혀 있었다. 경찰은 일산화탄소 일부가 배기구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집 안에 유입됐다고 보고 있다.
일산화탄소는 들이마시면 혈액 속 헤모글로빈과 결합해 사람이 질식하거나 심한 경우 숨질 수 있다. 헤모글로빈은 혈액 속 산소를 운반한다.
일산화탄소 질식사고는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2018년 12월 강원도 강릉시의 한 펜션에서 고등학생 10명이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3명이 숨지고 7명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펜션 보일러 배기관과 연통이 어긋나서 일산화탄소가 새어 나와 사고가 났다.
이에 일산화탄소 누출을 기계적으로 감지할 '경보기' 설치 의무화 필요성이 제기됐고, 2020년 2월 가스 안전 주무관청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관련 법을 개정해 숙박업소는 일산화탄소 경보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했다.
문제는 이번에 일가족 5명이 숨진 '가정집'은 경보기 의무 설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관련 법상 (가정주택에) 보일러를 신규 설치할 때 제조업체가 경보기를 함께 설치할 의무는 있다"면서도 "기존에 설치된 보일러에 경보기만 따로 설치할 의무는 없다"고 했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산화탄소가 무색무취이라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감지할 수 없는 만큼 경보기 등 기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2017년 가정집에 단독형 화재 경보기를 보급해 화재 위험을 낮춘 것처럼 일산화탄소 난방을 하는 가정집에 경보기를 보급해 중독 사고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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